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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난”이란 표현이 본질을 왜곡한다
“왕자의 난”이란 표현이 본질을 왜곡한다
[김창룡의 미디어창] 재벌 롯데의 진흙탕 싸움… 전근대적 제왕적 경영, 언론 보도에 드러난 무언의 동의

재벌의 경영권 다툼을 ‘왕자의 난’이라고 부르는 언론은 문제가 없나. 언론에 따라 ‘형제의 난’이라고 헤드라인을 다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롯데 왕자의 난’이라고 부르는 곳도 다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형제의 난’으로 표기하는 언론은 검색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롯데 형제의 난’ (한겨레), ‘롯데 부자간 전면전’(연합뉴스), ‘저신뢰사회 본색 보여준 롯데 ‘형제의 난’(동아일보) 등.

‘왕자의 난’으로 검색된 언론, 포털, 블로그 등은 수적으로 훨씬 더 많았다. ‘롯데가(家) ‘왕자의 난’ 혼미 속으로‘ (에너지경제), ’롯데 '왕자의 난'..15년전 현대와 결과도 같을까?‘ (미디어 다음, 헤럴드 경제) 등이다. 뉴시스, 뉴스1 등 뉴스통신사, 한국경제, 국민일보 등도 ’왕자의 난‘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재벌가의 자식들이 재산분할이나 경영권 분쟁 등 집안싸움이 시작되면 그 사건의 본질과 문제의 심각성 등을 분석하기도 전에 ‘왕자의 난’이라는 식으로 제목을 붙이는데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적어도 세가지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왕자의 난’이란 표현은 시대착오적이며 저널리즘의 정확한 언어사용 원칙에도 맞지않다.

   
▲ (왼쪽부터)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 노컷뉴스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다. 재벌의 자식들은 물론 왕손도 아니며 재벌의 대주주 자식일 뿐이다. 왕조시대의 언어가 적절하게 사용되지않는 정도라면 무시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왕자의 난’이란 표현속에는 대다수 국민은 ‘왕자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무지랭이 백성 정도로 낮추는 상대적 개념때문이다. 이는 정서적으로 ‘왕자들’이라는 우월적 위치에서 권력다툼을 바라만 봐야했던 국민을 항의 한번 못하게 하는 무능력한 지위로 격하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현대 사회에서 법과 제도는 재벌가의 탐욕과 불법을 얼마든지 제제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 ‘왕자의 난’이라고 부르는 언론은 재벌의 재산다툼을 미화하며 상대적으로 현대 국민을 무시하는 퇴행적 표현을 일삼고 있는 셈이다.

둘째, ‘왕자의 난’이란 표현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며 사건 자체를 축소하기 때문이다.

현대, 두산, SK, 롯데 등 재벌가의 형제나 부자간의 다툼은 단순히 집안싸움으로 축소시키면 안된다. 롯데라는 주식회사의 사기업에는 주주, 종업원, 거래업체, 소비자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조화시킬 수 있을 때 그 소유권이 존중받을 수 있다. 재벌가 형제, 아버지 등이 회사를 멋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왕자의난’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주주들의 목소리,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경영에 반영하고, 존중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영권은 재벌집안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처럼 특권, 돈, 불법이 지배하는 재벌사회에서나 가능한 소리다. 언론마저 여기에 무언의 동의를 보내서는 안된다. 언어는 사고체계의 표현이며 이는 사건을 규정하게 된다.

셋째, 경제민주화, 투명경영을 실천할 계기로 삼아야 할 사건을 ‘왕자의 난’이라고 명명하면 사건이 왜곡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들의 비자금 조성, 불법 탈법 경영 등이 이번에도 반복되는 듯 하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롯데그룹의 밀실 경영과 복잡한 지배구조가 투명하게 혁신돼야 할 계기를 맞았다. 거대 기업이 가족 간의 밀실 폭로전이나 감정 다툼에 의해 휘청거리는 전근대적 경영 형태는 그동안 언론이 비판해 왔던 단골사안이다. 롯데의 하청업체 문제, 밀실의사 결정구조 등 소위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이런 사건에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왕자의 난’ 정도로 의미를 축소하며 흥밋거리로 삼는 것은 곤란하다.

‘권력은 측근이 원수고 재벌은 핏줄이 원수’라고 했다. 세습을 탓하면서 핏줄이라고 무능력자에게 회사를 맡기려는 재벌들의 어리석은 다툼을 보며 인간의 한계를 목격한다. 재벌가의 자식들이 부모의 기대와 달리 자살하고 감방에 가는 행렬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문제를 다루는 언론이 더 이상 시대착오적인 용어나 국민을 무지랭이 취급하는 ‘왕자’ 운운하는 표현을 제목으로까지 내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언론이 천박해지면 그 나라의 정신이 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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