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현지시간 5일 실시된 구제금융안 국민투표에서 반대 61.3%, 찬성 38.7%(한국시간 7시 현재)로 트로이카(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안에 대한 압도적 반대를 나타냈다. 

그리스는 앞서 트로이카가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6월 25일)를 통해 성안한 협상안을 수용할 지를 두고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그리스 시리자 정부는 현재의 높은 실업률과 빈곤의 악화를 가져올 긴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협상안에 대해 반대할 것을 독려해왔다. 

영국 인디펜던트에 의하면 국민투표가 그리스인들의 승리로 굳어지면서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엔 수천명의 인파가 깃발을 들고 몰려나왔다. 한 시민은 “나는 아픈 아이가 있고 그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지만, 잃어버린 자신감과 존엄을 되찾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기쁨과 환희를 느낀다”고 말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TV연설을 통해 국민투표 결과를 “매우 용감한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민주주의는 협박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어떤 유럽을 원하는 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연대(solidarity)의 유럽이다”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그리스의 국민투표 결과와 관련해 최대 채권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 올랜드 대통령이 긴급회동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최대 채권국인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도 입장차가 존재한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국민투표 실시 이전에 “지금이라도 합의를 해야 한다”며 “우리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머물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독일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의 국민투표 이전에 협상은 없다”면서 “그리스 문제는 근본적으로 세계에서 EU가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투표 결과와 관련해 독일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부총리는 “그리스는 유럽으로 가는 마지막 다리를 허물었다”며 “유로존의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수십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개적인 언사와 달리 협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채권단은 한발 양보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상황이나 유럽내 취약국가들의 연속적인 채무불이행이 가시화될 경우, 유럽과 미국계 금융자본들이 입게 될 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취약국가들의 연쇄적인 디폴트는 전세계적인 금융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 안팎의 여러 악재들 속에서 이뤄진 시리자 정부의 선택은 일단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으로서도 그리스의 탈퇴는 최악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그리스 국민투표가 유로존 잔류 여부에 관한 게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고 선을 그었다. IMF는 앞서 6월 26일 그리스의 채무에 대한 만기연장과 부채탕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스에 있어서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차악의 선택일 뿐, 유럽연합 내에서 그리스를 비롯한 취약국가들의 발언권을 높이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바람직한 해법인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 블록에서 탈퇴할 경우 그리스는 금융자본의 공격에 더욱 취약해짐으로써 급격한 평가절하에 이어지는 통화위기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은 그리스 경제 내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국제 금융자본과 부패세력의 결탁에 의한 국가채무 은폐, 유로연합 내 취약국가들에게 불리한 통화시스템 및 유로존 내 무역 불균형의 문제 등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 금융자본의 입장을 대표하는 채권단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제금융안을 거부한 그리스의 국민투표는 정당성을 갖는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그리스의 시리자 정부에 대한 그리스 국민들의 지지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난 2011년 당시의 집권 사회당은 현재와 유사한 국민투표안을 승부수로 던졌다가 유로존과 채권단의 압박에 밀려 철회한 바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