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대일항쟁조사위원회)’가 일본군 위안부 구술기록집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이하 들리나요)’의 일본어판 출판 작업을 돌연 중단시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들리나요’를 일본어로 번역한 일본 시민단체 ‘일본어 번역협력위원회’는 지난 18일 한국의 크라우드펀딩사이트 ‘와디즈’를 통해 “정부 당국이 감수비용 400만원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들리나요’ 일본판을 내고 있지 않으니, 400만원을 직접 모아 출판작업을 진행하자”며 소셜펀딩을 시작해 하루만인 19일 오전 목표금액을 달성했다. 와디즈에 따르면 285명의 한국 시민이 힘을 보탰다.

2013년 2월 발간된 ‘들리나요’는 정부 차원의 첫 위안부 구술집이다. 일본어판 출판작업은 발간된지 1년여 후인 2014년에 시작됐다. 2013년 12월 대일항쟁조사위원회 측이 일본어 번역협력위원회에 ‘들리나요’ 일본어 번역작업을 의뢰했고, 이양수 공동대표가 2014년 6월 번역을 마무리했다.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 한국어판 표지.
 

그러나 지난 1월 대일항쟁조사위원회가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출판작업 중단’을 통보하면서 제작이 중단된 상태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의 실무자가 지난 1월 12일 이양수 공동대표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 지난해 구술기록집(들리나요)의 감수를 부탁드렸는데, 예산(400만원)을 집행하지 못하고 마감돼 올해엔 사용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올해 위안부 구술기록집 일본판의 작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됐습니다….”

대일항쟁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우리 위원회는 한시 조직이라서 연장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감수비용 400만원이 예산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제주간지 ‘더스쿠프’에 따르면 대일항쟁조사위원회의 운영비는 연 76억원(2015년 기준·행자부 예산)이다. ‘들리나요’의 영문판 ‘Can you Hear Us? : The Untold Narrative of Comfort Women’은 올 1월 순조롭게 출판됐다. 영문판은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한인 사회적기업 ‘미디어 조아(Media Joha Ltd)’가 번역·출판했는데, 대일항쟁조사위원회는 ‘영문판 제목 공모전’을 개최할 정도로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조사위가 예산 400만원을 문제 삼아 일본어판 출판을 미루는 배경이 석연치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양수 공동대표는 ‘더스쿠프’와 인터뷰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이 담긴 ‘들리나요’의 일본 현지 발간의 의미는 대한민국 공식 위안부 피해 증언 문서가 최초로 일본에 배포된다는 것”이라며 “한국에서 진행된 소셜펀딩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된 만큼 일본에서도 ‘들리나요’ 일본어판의 출판을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더스쿠프' 이윤찬 팀장은 "누가 무슨 이유로 일본어판 출판을 막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어떤 이유에서든 감수비용 예산을 문제삼아 출판을 중단했는데 이제 비용이 마련됐으니 일본어판 출판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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