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메르스가 검역감염병으로 지정되면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국내의 검역, 감염, 역학 등 감염병 관련 권위자들과 두 차례의 자문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2014년 5월 22일(화상회의)에 자문위원으로 참석했던 전문가들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들은 이미 자문회의에서 모두 지적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현재의 메르스 확산 사태는 정부가 자문회의에서 지적된 문제점들마저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초래된 ‘인재’라는 것이다.

또한 이미 2013년 자문회의에서 전문가들은 사람 간 전파가 제한적일 때와, 사람 간 전파가 활발할 때의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이에 따른 방역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메르스의 전파 위험을 간과했고, 결국 두번째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현재의 메르스 확산 사태를 맞게 됐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해당 자문위원들은 ‘사실상 모든 시나리오와 그에 따른 대책들을 내놓았지만 정부가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자문위원들의 권고를 보건당국이 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해 자문회의 자체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대한병원협회 메르스대책 T/F위원장)은 “자문위원들이 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을 (정부는)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며 “마찬가지로 질병관리본부에서 주관하는 감염병위기관리대책전문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계속 예기를 했지만 회의 이후의 조치가 없었던 것” 이라고 지적했다. 

   
▲ 5월 31일 개최된 메르스 관련 보건의약단체 비공개 간담회. 사진제공=보건복지부.
 

이왕준 이사장은 “의견개진을 해서 개선된 건 두 가지 밖에 없다” 며 “사우디에서 메르스가 유행했던 지난해 5월에도 중동을 오가는 비행기에 ‘코션’(주의)도 없었다. 그리고 의료기관에 메르스에 대한 공지라도 해야 한다해서 이 두가지만 지난해 시행됐다” 고 말했다. 

이왕준 이사장은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왜냐면 그 때(2014년 5월)도 예측했던 게 중동에서 누가 메르스에 감염되어 왔어도 검역에서 걸리겠나. 잠복기가 있어 집에 가서 열이 나면 누가 메르스라고 상상이나 하겠냐. 동네 의원 갔다가 안 나으면 동네 병원에 입원하고 다시 큰 병원 갔다가 서울 병원으로 갈 거다. 보나마나 그 사이에 쭉 오염시키고 병원 자체도 전면적으로 노출될 거 아니야, 그러니 일선병원까지 교육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개선은 없었다” 고 말했다. 

실제 자문위원들은 보건복지부 쪽에 두 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방역대책 메뉴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두 가지 시나리오란 사람간 전파가 제한적으로만 일어나는 상황과 사람간 전파가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일어나는 두 가지 상황 전개를 말한다.  

2013년과 14년 두 차례의 자문회의에 모두 참석했던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1차 자문회의와 2차 회의의 자료를 잘 찾아보면 지금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내용들이 이미 1년전, 2년 전에 예기가 끝났던 거구나 알게 된다. 하다못해 시뮬레이션에 따라 사태가 어떤 색깔인가에 따라 준비하라고까지 권고할 정도였다” 고 밝혔다. 정용석 교수는 “자문회의에선 모든 걸 꼼꼼하게 (논의를)다 했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처럼 (메르스 사태가)안 터졌겠죠. 아이템 별로 얘기하면 (실행되지 않은 게)한이 없다” 고 지적했다. 

정용석 교수는 “전문가들이 조언한 걸 실제로 지킨 게 없잖나. 의료진 홍보부터 헤파필터, 공기감염 가능성까지 회의 내용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 면서 “몰라서 놓쳤다. 준비했는데 당했다 이런 건 면피이고 민망해서 하는 얘기일 뿐, 전문가들이 다 정리해 준 내용도 실행을 하지 않은 게 문제” 라고 말했다. 

정용석 교수 역시 메르스 환자들의 의료기관 방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권고를 무시한 것이 메르스 확산 사태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1차적으로 호흡기 환자나 폐렴 환자가 오면 메르스를 의심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게 평택에서 실패했잖나. 환자가 원해서 갔든 의사가 보내서 갔든 하스피털 트랜스퍼(hospital transfer, 병원 이동)가 됐다. 이게 횟수가 많아질수록 사건이 커지는 것” 이라며 “일선 의사들까지 (메르스를)의심하도록 홍보하고 교육한다, 그게 내용에 다 있었다” 고 말했다. 

최재필 서울시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비슷한 회의가 많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는 것을 전제로 “우리나라에 메르스가 유입하게 되면 병증이 일반적으로 일반병원으로부터 오게 된다. 일반병원엔 음압유지, 헤파필터 이런 게 전혀 없으니 부재로 인한 전파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대형 병원이 아닌 1차 의료 기관부터 준비 능력을 키워야 한다. 비말감염이지만 에어로졸 등 공기감염에 준하는 상황들이 의료기관에서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고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오간 내용들을 전했다.  

   
▲ 2014년 5월 보건복지부의 '메르스 국내 유입 대비 전문가 자문회의(5.22) 결과보고' 중 일부
 

더 근본적인 문제 지적도 있었다. 전문가 자문회의 특성상 정부가 이행하도록 하는 권한이 없고 자문회의에서 권고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커,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자문위원들은 정부가 부를 때 가서 얘기하는 게 전부다. 보건부를 복지부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자문 의견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고 이렇게 되면 방역이 훨씬 강화되고 메르스 사태도 지금 같지 않았겠지만, 어차피 안 될 것을 얘기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지적했다. 

2014년 5월 22일의 전문가자문회의에 참석했지만, 현재 민관합동대책팀 역학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보율 한양대 의과대학 교수는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질병관리본부 전략상황실 주관 화상회의(teleconference) 형식으로 진행된 ‘현 시점에서의 중동호흡기증후군 해외 감염사례 분석 등을 통한 감염 양상의 변화 및 향후 대응 방향 자문’ 회의엔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정책과 등 12명과 함께, 자문위원을 맡은 한양대 의과대학 최보율 교수,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성일 교수, 경희대 생물학과 정용석 교수, 대한병원협회 이왕준 이사장, 서울시의료원 감염내과 최재필 교수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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