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가 확산되면서 병원 내 시설 부족 문제가 떠오른 가운데 고질적인 베껴쓰기 언론보도로 잘못된 개념이 알려지고 있다. 

언론은 메르스 감염의 위험성을 낮추는 시설로 음압병상이 필수적인데 증가하는 메르스 확진자수를 따라가지 못해 시설 확충이 불가피하다고 보도했다. 

대한감염학회는 메르스 진료 지침으로 확진자를 음압병실 1인실로 배치해야 한다고 했는데 전국 국가지정 입원치료 병원의 음압병상을 1인실로 배치할 경우 50명도 채 되지 않은 확진자만 수용할 수 있어 시설 부족 문제가 논란이 됐다.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중앙 정부에 시설 확충과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언론이 음압병상을 터무니없는 개념으로 정의를 내리고 계속해서 베끼기식 보도를 내놓으면서 독자를 혼동케 하고 있다. 음압병상 개념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과거 잘못된 언론 보도를 검증 없이 따라 보도한 현상으로 보인다. 

음압병상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병실 안 기압을 낮게 유지해 공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서 바이러스가 병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시설이다.  

하지만 많은 언론들이 메르스 사태를 보도하면서 음압병상을 "음파로 공기를 항상 병실 안에서만 흐르도록 유도하는 특수 병상"이라고 소개했다. 

음압병상은 소리를 뜻하는 음(音)과 전혀 상관없는 압력(기압)을 이용한 시설인데 엉뚱하게 '음파'라는 말을 쓰면서 마치 음(音)과 관련한 시설이라는 오해를 주고 있다.

한 포털에서 '음압병상'과 '음파'를 묶어 키워드 검색을 해보면 40건에 이르는 기사가 뜨는데 하나같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음압병상이란 음파로 공기를 병실 안에서만 흐르도록 유도하는 특수 병상으로 감염된 환자를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12일 보도된 세계일보의 경우 "음파에 유도된 환자 호흡으로 배출된 오염 바이러스가 섞인 공기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천장 정화시설로 흐르도록 설개돼 있다"며 "병실 내부 기압을 인위적으로 떨어틀린 격리 병상인 응압병실은 병실 내부의 병균, 바이러스가 병실 밖으로 퍼져나가는 걸 방지하는 곳"이라고 설명했지만 앞말은 틀렸고 뒷말은 맞는 설명이다. 

인터넷 매체와 지방신문, 지상파 방송, 주요일간지 닷컴 매체, 경제지, 그리고 통신사까지 음압병상을 "음파로 공기를 항상 병실 안에서만 흐르도록 유도하는" 시설로 보도했다. 

언론이 글자 수까지 똑같은 잘못된 설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에볼라 사태 때 한 통신사의 보도를 따라 쓰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포털에서 '음압병상'과 '음파'를 묶어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음압병상을 음파와 관련된 시설로 소개한 언론보도를 추적한 결과 지난해 11월 뉴스1의 <에볼라 환자 입원하는 국립의료원 음압병상 둘러보니>라는 기사가 최초인 것으로 나온다. 

뉴스1은 "국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발생하면 국가지정격리병상을 운영하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한다"며 국립의료원을 직접 둘러보고 이를 독자에 소개하는 보도를 내놨다.

음압 병실을 찾아 묘사한 대목을 보면 "문이 닫히면 삐하는 소리와 함께 음압이 걸린다. 병상 천장에 설치된 장비가 오염물질을 빨아들이는 음압을 시작한 것이다. 음압은 음파에 의해 생긴 압력 변화량을 말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음압이 걸리면 공기 흐름이 항상 병실 안쪽으로만 흐르고 내부 공기가 병실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포털의 국어사전에서 음압(音壓)은 "소리가 매질(媒質) 속에 있을 때 매질 압력의 변화량"이라고 나와 있고 음압(陰壓)은 "물체의 내부 압력이 외부 압력보다 낮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정의돼 있다. 뉴스1 기자가 두 단어의 정의를 혼용해 쓰면서 음압병상 개념을 잘못 보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메르스 사태가 터지자 많은 언론들이 과거 기사를 검증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따라 스면서 결국 오보가 오보를 만들어내고 음압병상이 잘못된 개념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의 보도를 보다 못한 과학매체 '동아사이언스'는 "음압 병상은 ‘음악을 들으면서 치료받는 곳’, ‘음파로 치료하는 특수 병상’이 아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올바른 정의를 알고 있지만, 메르스 이슈 초기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분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며 "일부 언론에서도 음악이나 음파로 설명을 하곤 했으니까요. 소음 측정에 쓰이는 음압(sound pressure)이라는 말과 혼동한 걸로 보입니다만, 음압 병상에서 ‘음’은 소리 음(音)이 아니라 네거티브(-)를 뜻하는 음(陰)이다"라고 바로 잡기도 했다.

한 의사는 "음압병상이 음파하고는 전혀 상관없는데도 한번 언론이 잘못 보도해 계속 받아쓰는 경향을 보여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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