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소녀, 하버드, 스탠퍼드 동시입학, 그녀만을 위한 특별교육프로그램 마련하다.” 한국언론이 흥분할만한 내용이 미주 중앙일보를 통해 알려지자 국내 언론은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첫보도가 나간 지 일주일이 지난 6월 10일 거의 모든 언론이 ‘가짜, 위조, 거짓말’ 등으로 스스로의 보도를 부정하고 있다.

손안에서 검색, 검증이 가능한 스마트폰 시대에 한국언론은 ‘천재, 하버드대’만 나오면 검증은 게으르고 주장이 앞서는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하버드대도 스탠퍼드대도 문제의 수학천재소녀를 입학시킨 적도 없고 앞으로 입학시킬 가능성도 없다고 경향신문이 확인보도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6월3일,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서 동시에 입학 허가를 받은 ‘천재 수학소녀’로 보도돼 화제가 된 미국 토머스제퍼슨 과학고 3학년 김정윤양. CBS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동시 입학을 주장하기도 했다.

김양은 지난 5일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 때문에 잠깐 특별한 케이스(동시입학)를 만들어 주신 거로 알고 있다"며 "졸업장은 제가 나중에 선택할 수 있고, 아마도 하버드 졸업장을 받을 것 같다"고 인터뷰했다.

국내주요 일간지와 인터넷도 그녀의 천재성과 특별한 성취를 뜨겁게 보도했다. 그런데 입학은 물론 자신을 위해 특별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두 대학은 입학 자체를 부정했다. 한 학생을 위해 그런 특별프로그램을 만든 적도 없다고 경향신문의 확인취재에 답했다.

국내 언론은 혼란에 빠졌다. 그렇게 대서특필했는데, 그 모든 것이 가짜, 위조, 거짓말이라니...이제부터 국내 언론은 수학천재소녀라며 찬양하던 입장에서 가혹한 비난의 기사를 쏟아내게 될 것이다.

학생이 거짓말을 했는지, 부모가 브로커에 속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과장과 위조, 거짓말로 점철된 일류병이 언론에 의해 확대재생산되는 구조가 바뀌지않고 있음을 여전히 확인하는 현실의 서글픔이다.

한국언론은 적어도 세가지 잘못을 범했다.

   

▲ YTN ‘하버드-스탠퍼드, '천재 소녀' 동시 합격 부인’ 보도 갈무리

 

 

첫째, 하버드, 스탠퍼드 등 특정학교라면 흥분부터 하는 고질병이다.

학교입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역경을 극복하며 성실하게 노력하는가 그 과정을 칭찬해야 할 것이다. 요즘은 서울대 입학 축하 플랜카드를 지역사회에서조차 걸지못하도록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이 유독 일류대, 일류병에 함몰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언론의 경박함은 학부모를 울리는 법이다.

둘째, 사실에 충실하지 않고 주장에 휘둘리고 있다.

김양이 두군데 동시입학 등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런 주장을 검증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몫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간단히 검증,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인 취재수칙조차 지키지않았다. 화려한 주장이 정직한 사실을 압도했다. 특히 두 대학교에서 한 학생을 위해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주장은 매우 새로운 것이라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 주장조차도 확인없이 천재성을 돋보이게 만드는 재료로 활용했다. 게으른 기자들의 무모한 보도행태다.

마지막으로 언론사간 언론윤리의 부재를 보는 안타까움이다.

두 대학을 중심으로 사실확인에 나선 것은 경향신문이었다. 10일 <경향신문>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애나 코웬호번 하버드대 공보팀장은 전날 이 신문과 전화통화에서 "김정윤양이 갖고 있는 하버드 합격증은 위조된 것"이라며 "김양은 하버드대에 합격한 사실이 없고, 앞으로도 하버드대에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주요 통신사, 주요 방송사 등 경향신문의 확인보도를 그대로 전하면서도 출처를 밝히지않는 반윤리적 보도태도를 보였다. 인터넷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타사의 보도를 인용할 수 있으나 그 출처를 밝히는 것은 언론윤리의 기본이다. 언론사간에 서로 서로 베끼기가 성행하다보니 이제 윤리의식마저도 둔감해졌다. 언론인 스스로 언론의 지위, 문화를 격하시키는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언론이 하늘처럼 받드는 천재,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등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런 보도가 자녀교육에 집착하는 한국 학부모들의 일류병을 더욱 고질화시킬 것이다. 천재소녀, 천재소년의 불행은 언론의 또 다른 먹잇감이 될 것이다. 한국 언론의 경박함과 윤리의식 부재의 민낯을 보는 부끄러운 날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