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사태는 미군 혹은 국정원의 작품일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인터넷 소설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 조치할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4일 열린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다음 아고라 사이트에 ‘한국 메르스는 미군의 실험일 수 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게시글에 대해 제재조치를 결정하기 위한 당사자 의견진술을 듣기로 했다.

‘느티나무집’이라는 필명의 한 누리꾼은 다음 아고라 경제 토론방에서 ‘한국 메르스는 미국 네오콘의 지시에 의한 미군의 실험 또는 백신 장사용 사전포석 일 수 있다’, ‘만약 자본이 개입한 백신 장사가 아니라면 국내에 산적한 정치적 부담을 희석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사태를 조성한 국정원의 충격 상쇄 요법일 가능성도 의심할 수 있다’, ‘충격 상쇄 아이템이 필요한 국정원과 백신 장사용 설레발이 필요한 프리메이슨 보헤미안 그룹의 합작일 수도 있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이상 아고라 신춘무예(문예) 입산(입상) 소설”이라며 “내 소설은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금방 삭제 당한다. 지워지기 전에 스크랩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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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심의위원 다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상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임을 인정해 삭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만 심의규정에 따라 긴급히 삭제 처분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일단 당사자의 의견 진술을 듣고 제재 조치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심의위원들은 소설을 표방한 글일지라도 심각한 허위사실을 담고 있으므로 심각성과 긴급성을 인정해 즉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심의위 사무처 소속의 변호인은 “원칙적으로 당사자에게 의견 진술 기회를 줘야 하고 예외적으로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해 긴급히 시정요구를 할 수는 있지만, 법원에선 이 부분을 매우 엄격히 해석하고 있다”며 “시정요구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 측면에서도 의견진술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안했다. 

해당 게시글을 즉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조영기 위원은 “이 글을 소설이라고 한 것은 자기가 빠져나가기 위한 면피용에 불과하고 안 그래도 국민이 메르스로 불안한데 국가기관이 했다고 소설을 쓴 동기 자체가 순수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며 “국가의 혼란을 부추기고 국민의 정확한 판단을 힘들게 만들기에 우리가 차단하는 게 맞고, 이런 글이 올라오지 않도록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남신 위원은 “가상 소설이라고 해서 면책한다면 특정인과 특정 기관·업체를 지칭한 유언비어성 글이 난무할 소지가 있고, 이 글은 건전한 상식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도를 넘었다”면서도 “메르스 사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유형의 글로 사회적 혼란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네티즌의 의식 수준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여 화급하게 다룰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윤훈열 위원은 다소 유해하고 유언비어성 내용이 포함됐을지라도 소설 형식의 글을 제재하는 것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위원은 “글쓴이가 소설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메르스 공포가 난무한 상황에서 유해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소설과 상상력에 대한 부분까지 재단하기 시작하면 유사한 사례에 대해 너무 획일화된 심의가 이뤄질 수 있다”며 “심의가 단순히 다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형식적 절차를 안 지키면 안 되고, 굉장히 추상적이고 상상의 소설 같은 내용이므로 정말 긴급을 요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결국 해당 게시글 제재조치에 관한 건은 일주일 뒤로 예정된 다음 회의에서 당사자의 의견진술을 듣고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지난 4월 방통심의위는 ‘세월호 국정원 개입설’을 주장한 인터넷 게시글을 ‘사회적 혼란 야기’를 이유로 삭제 의결한 바 있다. (관련기사 : “‘세월호 국정원 개입설’ 게시글 삭제는 위헌”)

이에 대해 (사)오픈넷은 성명에서 “행정기관이 국민의 공적 사안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표현을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우려’라는 추상적 기준으로 함부로 규제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여론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통신심의제도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서 위헌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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