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공행상’논란을 빚으며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를 맡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참모이면서 실세였기에, 정권의 유지와 재창출을 위한 단기적 성과에 얽매여 국민들을 경제정책 실패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최경환호 출범 이후 가장 뚜렷하게 감지된 위험 신호는 바로 금융당국의 갈지자 행보였다. 

올 3월 물러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임명 전까지도 “LTV(부동산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는 경기진작 정책으로 쓰는 게 아니라, 금융안정 정책으로 써야 한다”며 “큰 틀에서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최 부총리가 내정된 후 “경기회복 대책이 LTV와 DTI보다 중요하다”고 말을 바꿨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고대 알렉산더 대왕의 말까지 인용하며 “앞으로 시장의 기대와 우려를 충분히 검토해 관계 기관과 ‘고르디우스 매듭’을 풀 수 있는 혜안을 찾아 보겠다”고 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알렉산더 대왕이 아무도 자르지 못한 얽히고 설킨 매듭을 단칼에 잘랐다는 데서 유래한, 대담한 방법으로만 풀 수 있는 난제라고 한다. 정권에 대한 코드 맞추기 논란을 의식한 듯한 과도한 표현이었다.

결국 지난해 8월 1일부터 LTV는 전금융권과 전지역에서 70%로, DTI는 전금융권과 수도권에서 60%로 완화됐는데, 그 결과는 가계대출 폭증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13조1천억원과 15조4천억원 증가했고, 올해 1분기에도 11조5천억원이 늘었다. 2013년 분기당 평균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3조5천억에 불과했으니, 4배의 증가 속도다. 지난해 1,089조원에 달한 전체 가계부채(보험사 등 기타금융기관 합계)는 그 양과 질 모두에서 위협적인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 2013년 1월 28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섰다. 최경환 호가 LTV, DTI를 완화하기 전에도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85.6%였고 이는 KDI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임계치로 잡은 85%를 초과한 것이었다. 

정부는 LTV, DTI를 상향조정함으로써 ‘대출 증가→수요 확대→부동산 가격 상승→내수 확대’라는 연쇄작용을 일으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규제완화가 가계부채 문제만 악화시킬 뿐 주택가격 상승이나 경기부양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은 당시에 나왔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도 LTV를 50%에서 60%로 10% 확대하면 가계대출 비율은 2%나 증가하는 데 반해, 주택가격은 0.7% 상승하는데 그친다고 앞서 발표한 바 있다. 

“금리인하 어렵지 않겠는가"→ 2.5%에서 1.75%로 3차례 기준금리 인하

“미국이 금리 올린다고 따라가야 되나" → “옐런이 금리인상 시사했으니 잘 지켜봐야"

갈지자 행보가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은행이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해 4월 취임때부터 여러차례 강력한 금리인상 시그널을 보이다가, 최경환 호 출범 직후부터 금리인하로 돌아섰고 최근에야 다시 방향을 선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4월 10일 첫 금통위를 주재한 직후, “수요부문에서 물가상승압력이 생겨 물가안정을 저해할 상황에 가까이 이르게 되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금리 인상 의지를 내비쳤고, 4월 30일엔 “금리 2%포인트 올라도 가계부채에 영향이 없다”는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국회에 내놓기도 했다. 이어 5월 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에선 “지금의 금리 수준을 감안할 때 방향 자체는 인하로 보기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못박은 바 있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부총리와의 짧은 신경전 끝에 이주열 총재는 6월 중순 “금리인상 시기를 염두에 둔 것은 정말 아니었는데 (시장에서는 인상시기가) 아마 가까이 왔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았다. 이후 한은은 7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하며 “성장경로상 하방리스크가 크다”며 기조를 선회했고 이후 기준금리를 2.5%에서 1.75%까지 3차례 인하했다. 지난 3월 이주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직후 “(향후)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다른 나라도 금리를 곧바로 따라 올려야 하는 건 아니다”며 “한국의 급격한 자본 유출을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두달여만에 한은 총재의 입장은 다시 선회했다. 26일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그는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지난주 연내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서 앞으로 국제금융시장의 움직임과 자금흐름을 잘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고, 한은은 보도자료를 통해 “(간담회)참석자들은 급증하는 가계부채가 거시경제 리스크로 전이할 가능성을 고려해 가계부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그동안 금리인하의 필요성으로 경기회복세가 더디다는 점을 내세워왔지만, 금리 인하 역시 LTV,DTI와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부동산 부양정책이다. 금리 하락으로 금융자산의 수익률이 하락하면 대체제 관계에 있는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게 되어 가격이 상승한다는 가정이다. 최경환호가 LTV,DTI를 먼저 풀고 곧바로 금리인하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리한 경기부양책, 그 후과를 걱정할 때

   
▲ 최경환호 출범 이후 가장 뚜렷하게 감지된 위험 신호는 바로 금융당국의 행보였다. ⓒ 연합뉴스
 

미국은 이미 테이퍼링(양적완화의 점진적 축소)을 마치고 연내 금리인상으로 잰걸음을 하고 있다. 이주열 총재의 26일 발언도 앞서 옐런 의장이 “올해 안 어느 시점에는 연방기금금리 목표치를 높이기 위한 초기 조치에 나서고 통화정책의 정상화 절차를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한 데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몇년간 미국의 국채 가격이 안정적이었고, 각국 중앙은행의 전례없는 제로금리 하에서도 지표상의 인플레율이 낮게 유지됐기 때문에 급격한 금리인상이나 인플레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내비쳐왔다. 그러나 이미 수년간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포함한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출구전략이 불러올 외환시장과 국제금리 환경의 급변동을 경고해왔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들은 국제금리 변동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옐런의 연준(Fed)이 금리인상 시점에서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을 택할지, 돌발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을 택할 지도 오로지 미국의 경제 상황에 따른 선택에 달려있다. 그래서 미국의 정책 기조가 확장에서 긴축으로 전환될 때마다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신흥국들에선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그런데 최경환호의 부동산 경기부양과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는 임계치를 넘어선 상황이고, 이것은 급격한 국제금리 인상과 맞물리면 제2의 금융, 외환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통화국들 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 수준에서만 외환시장의 유지가 가능한데, 급격한 금리 인상은 가계부채를 압박해 부동산 매물을 쏟아내고 가격급락과 함께 금융·외환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해석해보면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및 군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세월호 참사 등 연이은 악재에 처한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에 올인한 셈인데, 경기부양은 실패했고 지금부터는 그 후과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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