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정치 중립’이라는 유령입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킬 필요도 이유도 없는 이들이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정치적 중립 앞에 엄격해야 하는 이들은 중립을 지키지 않습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화제가 됐습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지난 20일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의 현수막 등을 직접 철거했기 때문입니다. 축제에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한다는 이유입니다. 논란이 된 것은 철거 사실보다 총학생회의 입장이었습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현수막 철거 사실을 알리며 “학교와 노조 그 어느 측에도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서랑제(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총학생회가 ‘중립’을 선언한 셈입니다. 21일 서울여대 졸업생 143명이 총학생회와 학교당국을 비판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 일로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자기네 축제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학생들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서울여대 총학생회의 ‘중립 선언’이 놀랄 만한 일은 아닙니다.

   
▲ 서울여대 행정관 입구에 걸린 청소노동자들 현수막. ⓒ민중의소리
 

기자가 대학에 다니던 때에도 대학 총학생회는 ‘정치조직’이냐 아니면 학생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복지 조직’이냐는 갈림길에 놓여 있었습니다. 전자를 주장하며 정치활동을 하는 총학생회를 흔히 ‘운동권’이라 부르고 후자를 주장하며 정치활동보다는 복지에 초점을 맞추는 총학생회를 ‘비(운동)권’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과연 정치활동을 배제한 학내 고유의 문제, 학생 복지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총학생회가 단지 ‘복지 제공자’의 역할만 한다면 학생회는 해체되어도 상관없습니다. 학생복지위원회나 학생처가 총학생회의 역할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학생은 학생이기 이전에 시민입니다. 시민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법과 제도에 영향을 받습니다. 법과 제도는 누군가의 권익을 침해할 수도, 신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권익이 침해받는다면 우리는 이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하며 우리의 대표자들은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라고 우리는 국회의원을 뽑고, 총학생회 역시 학생들의 대표자이기에 이런 의무를 지닙니다.

비싼 등록금과 전월세비는 대학생들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즉 권익을 침해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단지 ‘복지’ 문제일까요? 법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데 학생회가 무슨 돈과 힘이 있어서 학생들의 복지에 주력할 수 있을까요. 대학은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섬나라가 아닙니다. 등록금을 낮추려면 국가의 정책, 법, 제도를 바꿔야하고 이를 위한 정치 활동은 필수적입니다.

또한 정치활동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한 총학생회는 중립이 아니라 이미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지금이 좋다는 ‘보수적인’ 입장인 셈이죠. 

   
▲ 서울여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갈무리
 

다시 서울여대 총학생회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학교와 노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 말이 얼마나 모순적인 말인지 금방 드러납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겠다며 노조가 내건 현수막을 철거해버렸습니다. 노조가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널리 알리고 싶었고,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방해했으니 사실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길 바라는 측’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결국 ‘정치적 중립’이란 지금의 질서를 지키겠다는 선언에 불과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도 정치적 중립에 대한 요구가 넘쳐납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누군가 “정치적 중립을 위해 노란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말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순 없다” 

세월호 유가족이 집회를 하거나 청와대로 간다는 기사가 뜨면 그 아래에 ‘유가족은 반정부 선동을 하지 마라. 정치 중립을 지켜라’라는 댓글이 수십 개가 달립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가정보원인가요, 아니면 군 사이버사령부라도 되나요, 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하죠?

1년이 넘었는데 세월호 인양은 시작도 못했고 특별조사위원회는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정치투쟁은 필수적이고, 당연히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정부에 반대하는 반정부 투쟁도 할 수 있습니다. 1년 전 세월호 승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그들의 유가족까지 옥죄고 있습니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지난해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고 있다. 사진=교황방한위원회 제공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헐리웃 영화 <아바타>에는 중립과 관련된 상징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지구인들이 나비족을 공격하려고 보낸 전투기들이 온갖 생물들의 습격에 의해 박살나는 장면입니다. 원래 대자연은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자애로운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대자연은 전쟁의 순간 나비족의 편을 들며 침략자 지구인들을 공격합니다. 대자연이 중립을 지켰다면 나비족은 몰살 당했을 것이고 나비족이 살고 있는 대자연까지 파괴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언론 역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요구를 받곤 합니다. 그래야 공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정성과 ‘중립’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방송법 제6조(공정성과 공익성) 5항은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 객관성과 공정성이 중요한 방송에 왜 소수나 이익추구에 불리한 이들의 입장을 반영하라고 규정했을까요? 

언론이 중립을 지키면 소수자이자 약자인 이들의 말을 사회에서 아예 묻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현재 질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편’을 드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편에 서지도 않겠다던 총학생회,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중립을 지키라는 이들이 새겨 들어야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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