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이 사회동향연구소에 의뢰해 기자들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 현 정부 하에서 언론의 역할에 부정적인 답변이 나왔다.

현재 전반적인 언론의 보도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답변(60.7%)이 정부의 입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성격이 강하다(27.0%)는 답변보다 2배 넘게 많이 나왔다.

언론 본연의 역할인 정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 기자 집단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 권력의 언론 지배가 일상화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중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곧 권력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하지 못한데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현재 전반적인 언론보도가 정부의 입장을 감시 견제하는 성격이 강하냐 아니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격이 강하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기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소통능력에 대해서도 최저점을 줬다. 박근혜 정부가 언론과의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매우 잘함이라는 응답은 한명도 하지 않았고 대체로 잘함 0.8%, 대체로 못함 37.7%, 매우 못함은 56.6%로 나왔다. 94.3%가 박근혜 정부의 소통능력에 의문을 나타낸 것이다.

정부의 언론 소통 문제는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직접 피부로 와 닿는 문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례로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손을 꼽을 정도로 적었고 기자회견 형식 역시 질문 내용과 질문자를 미리 선정하고 추가 질문을 받지 않는 등 제한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어 기자들이 느끼기에 언론과 소통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또한 청와대 출입 기자들에 따르면 정국 운영의 배경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백브리핑이 사라지고 홍보수석이나 대변인 또한 기자의 질문을 받지 않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정부가 원하는 내용만 발표하고 언론이 그대로 반영하는 구조로 돼 있다. 주류 언론들은 이미 정권 편에 서 있어 청와대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소통을 안 해도 되고 홍보 전략만 세우면 이에 동조해주는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가 언론과의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2000년대 이후 언론의 자유가 가장 침해된 시기를 묻는 질문에도 45.9%가 박근혜 정부라고 답했다. 이어 36.9%가 이명박 정부, 6.6%가 노무현 정부라고 답했다. 보통 현 정권에서 언론과 갈등이 불거지기 때문에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한 체감 정도가 크기 마련인데 이명박 정부라고 답한 의견이 많은 것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언론 자유가 침해되는 시발점이 이명박 정부라고 느끼는 기자가 많다는 얘기인데 쇠고기 파동부터 시작해 언론 대파업, 그리고 미디어법 통과 등 굵직굵직한 언론 관련 이슈들이 터지면서 이에 대한 충격파가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영방송이 이명박 정부 이후 정부를 대변하는 기조로 급격히 변한데 따른 체감 정도가 해당 질문의 답변에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을 가장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SBS(40.2%)가 1위를 차지하고 MBC라고 응답한 기자가 한명도 없고 KBS는 8.2%에 그친 조사 결과에서도 공영방송의 현재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종합편성채널이 탄생한 이후 정권을 편드는 경향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언론 자유의 침해가 이명박 정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연장선상으로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 때는 그래도 언론인들 스스로 저항하고 내부적으로 맞설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데 이 문제가 공고화되면서 박근혜 정부에선 언론 자유 침해 문제를 일상적으로 느끼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최대 이슈로 꼽을 수 있는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기자들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성완종 리스트 논란에 대한 언론보도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리스트 의혹 확인이 잘 안되고 있다는 답변이 68.0%로 나왔고, 리스트 의혹 확인이 잘 되고 있다는 답변은 19.7%에 그쳤다. 잘 모르겠다/무응답은 12.3%로 나왔다.

이어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다루지 않고 홍준표 지사, 이완구 전 총리 수사에만 그치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검찰이 불법대선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를 전면화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현안 질문에도 기자 73.0%가 전면화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전면화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은 11.5%, 잘 모르겠다/무응답은 15.6%였다.

   
성완종 리스트 논란에 대한 언론보도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정치권 공방을 통한 특별 사면 논란이 제기되고 일각에서는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대한 물타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가운데 기자들도 이에 대한 문제 인식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리스트에 적시된 인사들의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언론이 제기한 특정 인사들의 자금 흐름 추적에만 머물러 불법대선자금 의혹 수사로까지 확대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 임직원을 포함하는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는데 기자들은 긍정적이라는 의견과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비슷하게 내놨다. 매우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12.3%,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32.0%로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44.3%가 나왔고,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40.2%, 매우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12.3%로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52.5%로 나왔다.

김영란법은 원안에 언론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원들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고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관련법이 통과되기 전 지난 2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68.4%가 언론종사자가 김영란법에 포함된 것에 찬성한 바 있는데 언론인들 스스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으로 나왔다.

인터넷종합신문 한 기자는 “언론인을 포함하는 문제는 정치권이 만들어낸 쟁점이었고 김영란법 적용대상이었던 정치권이 오히려 대상을 확대해 당초 법 추진 동력이었던 언론사마저 당사자로 만들어 언론의 역할을 위축시키고자 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게 했다”며 “공직사회를 겨냥했던 입법 취지와 맞지 않지만 ‘너희는 그럼 향응을 받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공적 역할을 하는 언론을 포함해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 연합뉴스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 질문에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라는 응답이 각각 13.1%로 나와 1위를 차지했고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 12.3%, 안철수 전 대표 1.6%,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1.6%, 김문수 전 경기지사 0.8%, 남경필 경기지사가 0.8%로 나왔다. 문항에 없던 기타 의견으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4.1%로 나왔다.

박재익 사회동향연구소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기자들 사이에 차기 대선 주자 후보가 잘 보이지 않지만 조사 대상 상당수가 20~30대 젊은 기자들이라는 점에서 야권 후보가 강세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진봉 교수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기자들도 개인적인 반성을 넘어 언론 환경에 대해 무기력증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며 "박근혜 정부의 언론 소통 문제라든지 언론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은 개인의 문제로 느끼기보다 언론 전체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느끼고 있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언론의 신뢰가 떨어지고 비난하는 것에 지괴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환경 자체가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매체 생존 문제가 걸려 있어 상업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이 기자 스스로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범위 종합일간지, 뉴스통신사, 방송사, 인터넷종합신문, 경제지 차장급 이상을 제외한 취재 기자들을 상대로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 동안 진행됐고 전화면접(CATI)과 모바일, 이메일 조사를 병행 실시해 380명 중 122명이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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