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년이 넘도록 거리에서 눈물을 쏟아낸 세월호 유족들은 삭발과 단식으로 세상의 외면과 냉대에 맞서고 있다. 박근혜 정권 3년차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한 극단에서 새로운 질문을 맞닥뜨리고 있다. 반성은커녕 유체이탈 화법으로 천연덕스런 변명만 늘어놓는 대통령, 권력과 결탁하는 걸 넘어 스스로 권력화한 언론, 민중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피폐해졌고 열패감과 무력감에 빠진 한국 사회의 전망도 불투명하다.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을 맞아 국민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명진스님과 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대표신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김영주 총무목사를 만나는 연속 대담을 마련했다.>

① 명진 스님 “야만의 시대… 박근혜는 아픔도 연민도 모르는 벽창호”
② 김인국 신부 “이명박근혜는 ‘자본독재’의 마름, 저항은 성서적인 것”

‘국정원 선거 개입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개신교 목회자 1000인 시국선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촛불기도회’, ‘전교조 탄압 중단, 표현의 자유 침해 규탄’,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 촉구 밀양 주민들 상경 매일 투쟁’ 등 이명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유린당했던 시대와 현장엔 언제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있었다. 이처럼 한국 기독교가 절망의 시대에 예언자적 사명을 다할 수 있었던 건 “누군가 지뢰를 밟지 않을까 겁먹고 있을 때 종교인들이 그 지뢰를 밟더라도 용감히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국 교회를 이끌었던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주 목사는 NCCK 인권위원회 사무국장과 평화통일희년준비위원회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며 일생을 인권과 통일운동에 앞장서 왔다. 지난 2013년 겨울, 187명의 해고노동자들이 복직 투쟁을 벌이던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을 방문했고, 지난해 11월 NCCK 총무로 연임된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 옥외 광고판에서 노숙 농성 중인 씨앤앰(C&M)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 위로했다. 그 무슨 절박함이 김 목사를 교회 밖 지뢰밭 길로 나서게 했는지, 미디어오늘이 지난 8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그를 만나 물었다.  

   
▲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목사. 사진=최창호 ‘Way’ PD
 

- 지금 한국사회는 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절차적 내용의 민주주의마저 대폭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떤 점에선 상당수 국민이 70년대 유신시대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고도 말한다. 이런 인식에 동의하시는지?
“상당 부분 동의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로 옛날처럼 폭압·노골적 통치는 없는 것은 사실인 듯하나 현실은 더 교묘해졌다. 법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수단임에도 법이란 이름으로,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법에 의한 폭력이다. 대륙법은 특히 가진 자들이 백성들 다스리고 억압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원리, 곧 법에 의한 지배로 알고 있다. 법은 최고 단계에서 작동해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법은 국가가 자기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다. 정부와 국가가 국민에게 비판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만용이자 폭력이다. 법이 힘없는 사람을 보호해주는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힘 가진 자들이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는 체제가 된다면 그런 법은 깨야 한다. 늘 정권은 법을 지키라고 하고 기득권은 악법도 법이라고 주창하지만, 난 거기엔 동의 못 한다.” 

- 최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재판 결과를 보고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사실을 밝히고 그 사실이 법적 제재를 받는지 안 받는지 정의로운 판결 과정이 있다면 누구든지 문제가 생기면 재판이라는 제도를 통해 유무죄를 밝히면 될 것이다. 하지만 재판이라는 사법적 절차가 소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장치가 되면 굉장히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교육부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교육의 자율성이 침해되고 교육이 국가·군국주의적 시각에서 국민을 교육한다고 비판할 정도로 지금껏 우리의 교육은 일방적으로 이뤄져 왔다. 이에 약간의 교육 자치를 취득해서 초·중·고등학교만이라도 자치적으로 해보자고 겨우 교육감을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 기회에 의해 어렵게 선택된 교육감을 재판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들어내려는 것은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 우리는 조희연 교육감 개인을 지켜내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진일보된 제도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육감 사태를 다뤄야 한다.”

- 박근혜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국가의 의무와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현 정권은 등장 처음부터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음에도 어물쩍 넘어갔다. 그러니 세월호 문제에서도 누구 하나 주체적으로 ‘내 잘못이다. 내 업이다’고 얘기하는 사람 없이 다들 비켜가고 있다. 성완종 사건이 터졌을 때도 사건의 본말을 파헤쳐 정말 우리 사회에 어떤 부패 구조가 작동했는지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면 얘기로 물타기를 하고 있다. 나는 국가의 선거개입 문제와 세월호 문제, 성완종 문제, 또 소수자의 권리 문제에 대해 정부와 여야를 막론하고 마땅히 해야 할 자기 책무를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23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 1심 선고공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특히 세월호 참사 후 유가족들을 대하는 박 대통령이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한마디로 국가는 자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가는 국민이 모자라든 부족하든 그들을 교육해주고 보호해주고 지켜주고 행복을 추구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99명의 국민을 위해 1명을 희생하는 일을 국가는 해선 안 된다. 99명이 행복하고 한 사람이 불행하면 그 한 사람의 불행을 어떻게 국가가 보호해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걸어가는데 혹시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걸어가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그들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건널목에 파란불이 켜졌을 때 일반 사람들의 걸음 속도를 생각해서 파란불이 들어와야 하는 게 아니라 힘이 없고 어려운 사람들이 건너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들어와야 한다. 그게 좋은 국가다. 그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데도 뭐가 그리 급해선지 이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만남) 계획이 돼 있든 아니든 걸음걸이를 멈추고 당신의 억울함이 뭔지, 당신의 요구에 이해를 구한다든지, 혹은 당신들의 요구가 너무 과하다며 전체 공동체를 위해 설득을 한다든지, 그게 대통령 의무가 아닐까.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방기했다면 큰일이고, 몰랐다면 더 큰일이다.

- 국민의 맨 앞에 서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할 사람이 대통령인데 왜 그렇게 안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그러니까 심지어 대통령의 7시간과 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지 국민이 의심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화두가 되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의 상(像)과 현실 대통령이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나. 대통령에게 우리가 막강한 권한을 줬다. 국가의 군사권과 검·경찰권을 가진 국가 전체의 통수권자는 그 권력을 사용하는 데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권력은 맘대로 휘두르는 게 아니다. 나는 박 대통령이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지나치게 기업가들,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세금을 낮춰주고 없는 사람들의 세금은 많이 거둬가려고 한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정책은 없고 억울한 사람들의 시름을 들어주지도 않고 있다. 나는 이제 대통령이 국민의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가 너무 심한 규제를 해서 풀어야 한다고도 하고 규제를 풀면 문제가 생긴다는 사람도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규제 푸는 데에만 꽂혀서 결국 서민들의 삶의 질 저하를 가져오게 됐다. 이런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데 박 대통령은 자기 성찰이 전혀 없는 사람 같다. 대통령으로 마땅히 감당해야할 몫을 감당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 

- 세월호 진상규명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독일의 국가원수들은 틈만 나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서 ‘다시는 우리가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 정말 죄송하다’고 얘기하듯이 우리도 ‘다시금 국가를 이렇게 하지 않겠다. 다시는 내가 이렇게 하지 않겠다. 정말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어야 그게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누구도 거기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 다들 객관적 조력자, 평가자만 되려고 한다. 그런 부분에서 여당이나 야당에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세월호 문제를 결코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한 회개.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우리의 약속까지도 세월호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를 다시 세우라고 하는 준엄한 명령이라고 본다. 내가 세월호 배지를 차고 다니면 어떤 사람들은 ‘이제 그만 하지’ 그러는데, 한 게 있어야지. 1년 동안 뭐 했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만하자는 경우가 어딨나? 10년, 20년이 걸려도 반드시 해야 한다.”

- 많은 국민이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며 헌화하고 철저한 진상규명 후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춰 다시는 그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 내지만, 국가는 오히려 이런 이들을 잡아가고 구속하고 벌금을 물리니까 국민이 더 위축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종교계 지도자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나는 국민이 위축돼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70~80년대를 살아오며 분출하는 민중의 힘을 봤다. 우리 국민이 위기 때마다 지혜를 모아 난관을 극복하는 용기도 봤다. 우리 민족사에 면면히 흐르는 저항정신과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뜻있는 이들의 용기를 믿는다. 그래서 잠시 권력을 쥔 사람들과 힘 있는 이들이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라 본다. 너무 제도화·시스템화된 폭압 장치들이 촘촘히 지뢰밭처럼 깔려 있어서 자칫 재수 없는 사람이 지뢰를 밟지 않을까 생각할 때, 종교인들이 지뢰밭을 밟더라도 용감히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래서 내가 NCCK에 있는 한 역사의 전면에 교회가 필요하다면 그 부름에 우리는 응답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꾸 수치와 물리적 규모만 보고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NCCK가 이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한다면 기꺼이 그 일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다.” 

   
지난해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의 구호를 외면하고 국회 본청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사실 한국사회 시민들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과정에서도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오히려 권력자의 편에 섰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중에서 선택을 하라면 주저 없이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고상한 말도 했는데, 요즘 언론을 보면 그런 고상한 말을 붙일 만한 가치가 있는 집단은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국민의 알권리를 이렇게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왜곡하는 언론의 시대를 보면서 걱정이 많다. 차라리 옛날에는 행간의 비밀을 찾아 언론의 진실을 찾으려고 했던 우리의 소박하고 진지한 노력들이 있었다. 독재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고 주무르려 했을 때도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기자들이 쓴 사회면 귀퉁이의 1단 기사를 보며 감격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없는 것 같다.”

- 그런 점에서 NCCK가 올해 ‘언론위원회’를 신설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언론이 독립된 고유의 영역에서 정부와 자본을 감시하고 견제하며 그만큼 일정한 특권을 누린다면 참 좋겠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게 다 결합해 권력집단화 돼 있다. 심지어 정권조차도 언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 공룡화된 것에 대해 우려가 많다. 지금 우리 언론위원회에 몇몇 사람이 모여 거대한 언론의 흐름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아무리 견고한 둑이라도 폭격으로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조그만 구멍에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고 그처럼 거대하게 막고 있는 둑에 작은 구멍을 내 보자는 게 언론위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거대 언론처럼 자본이나 정치권력, 시스템을 동원할 수는 없지만 언론인의 양심을 동원할 수는 있다. 언론인의 양심은 거대한 댐에 구멍을 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서 언론위의 활동을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 결국 세상의 큰 변화도 모든 작은 움직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마치 작은 힘들이 모여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물리학 법칙 같기도 하다.
“세상의 거대한 시스템에서 돌멩이 하나를 던진다고,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바위가 깨지겠나 하지만,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를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렸다. 그러나 우리 민주화 세력들이 어느 날 갑자기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이만하며 됐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피 흘리고 고통받고 했는데 다시금 불의한 세력들이 도전하겠나,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다시 불의한 세력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도전을 해 왔다. 응전(應戰)과 도전이라는 지난날을 되풀이해보면 우리는 조금 더 철저했어야 한다. 사람들이 볼 때에 왜 그렇게 비정하냐고 할 정도로 불의에 대해선 야무지게 대응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화 세력들이 힘을 합치는 것만큼 불의한 세력들이 더 큰 힘을 합쳐 오히려 나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우리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목사. 사진=최창호 ‘Way’ PD
 

- NCCK는 70~80년대 인권·통일운동에 앞장서며 반독재 투쟁의 중요한 물줄기를 바꿔왔다. 한국 사회에서 통일운동이 왜 중요하다고 보나.
“우리는 1980년 광주를 보면서 또 한 번의 충격에 빠졌다. 그때 우리는 일정 정도 민주주의가 이뤄지면 민주사회가 건강해지고, 건강한 사회가 통일문제까지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통일과 사상, 이념 문제는 복잡한 문제니까 민주주의를 먼저 하자는 ‘선민주 후통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 남한의 한복판에서 자국 군대에 의해 자국민이 총칼에 맞아죽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주의가 설 수 있다는 소위 ‘서울의 봄’의 시기에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우리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정권에선 ‘공산 폭도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기를 당하게 생겼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주를 진압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충격에서 사람들이 헤어나질 못했다. 그러면서 불의한 권력에 도전하는 길,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 시키는 길은 남북의 분단 문제를 두고는 불가능하다고 깨달았다. 민주주의 과제와 통일의 과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동시적 과제다. 기독교가 1980년대부터 통일위원회를 만들어 통일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 당시 민간이 통일문제에 대해 말 하는 것조차도 금기시돼 있던 상황이었다. 통일문제 대한 독점적 지위는 오직 국가만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북쪽에 악담을 퍼부을 강요된 자유만 있었지 북한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없었다.”

-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잘못돼서 남북관계가 진척이 안 되고 있다고 보는지, 아니면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있는데 반통일 세력의 눈치를 봐서 못 하고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통일문제에 대한 기본 상식만 있다면 통일대박론을 얘기하면 안 된다. 한국사회가 통일의 롤 모델로 제안하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을 향해 ‘통일’이라는 말을 한마디도 안 썼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통합’이라는 단어도 안 쓴 걸로 안다. 그것은 서독이 동독에 대해 그만큼 배려하고 동독 사람들이 서독과는 합쳐도 되겠다는 생각을 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을 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든답시고 위원 중 한 명이 ‘흡수통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런 표현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것 같다. 통일은 보수진영을 결속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제스처로 이용해선 절대 안 된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은 집권당이 바뀌어도 동독에 대한 정책이 일관됐던 것처럼 이 정권도 제발 당신들이 통일을 완성한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제발 어떡하면 우리가 통일을 위한 준비과정에서 징검다리 하나를 더 놓을 수 있을지 겸손했으면 좋겠다. 지난해 드레스덴 선언만 해도 결국 통일대박론의 연장이기도 하고 거기서 왜 그 이야기 했는지 판단력에 의문이 들고, 통일 철학이 빈곤한 것이 아닌지 생각된다. 그동안 통일문제를 다뤄왔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원칙들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지금 국민들이 많이 지쳐있고 힘들다. 지쳐있는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의 말이 있다면 해달라.
“자꾸만 우리 사회가 일방으로만 가니까 실망감 때문에 지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지치는 그 순간 세상의 악한 령들이 틈타므로 항상 깨어서 우리 스스로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한 번 더 용기와 지혜를 모으고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서로 손을 맞잡고 협력해 밤이 가장 깊을 때가 동틀 새벽을 맞이할 가장 절호의 찬스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함석헌 선생이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휘몰아치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밀한 터에서 꿈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나 혼자밖에 없다고 느낄 때 얼마든지 좋은 뜻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고 확신하고, 그동안 각자의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의견이 모이면 조그만 음성이지만 큰 폭풍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정말로 대한민국을 안전하고 사랑하고 행복을 느끼는 좋은 사회가 되게 만들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절망이 최고의 적이다.

대담=신학림 편집인. 정리=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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