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숨지기 전날에도 1인 시위를 하러 나섰다. 이지(EG)그룹 본사 체육대회에서 ‘노조탄압 중단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서 있겠다고 했다. 그는 이지그룹 계열사인 이지테크에서 일했다. 이지테크에 노조 조합원은 그 혼자였다. 혼자가 된 지 햇수로 6년째다. 이지그룹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회장으로 있다. 

그는 늘 가족들에게 말했다. 잘 되어가고 있다고. 회사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자기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라고. 그는 사람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아빠가 갈수록 자신감을 잃어가는 게 느껴졌어요. 예전에는 다 할 수 있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검정 상복을 입은 딸이 울면서 말했다. 

본사 체육대회에 간 날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또 서울에 시위하러 갔겠거니”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7시 41분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미안하네 나 먼저 가네” 아내는 아파트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남편이 혼자 술을 마시던 곳이다. 없었다. 차를 타고 인근 공원으로 갔다. 역시 남편이 자주 가던 곳이다. 나무에 목을 맨 남편이 보였다. 이지테크 분회장 양우권(50)씨 이야기다. 

 

   
▲ 고 양우권 분회장이 아내와 주고 받은 문자. 사진=이하늬 기자
 

“차라리 노조 간부였다면 덜 억울할텐데”

그는 1998년 2월부터 숨지기 전까지, 17년간 이지테크에서 일했다. 현장에서 산화철 폐기물 포장업무를 담당했다. 아내 하현희(48)씨는 “남편은 현장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 정규직와 비정규직의 차별은 컸다. 정규직 노동자의 대우가 10이라면 비정규직은 4정도라고 동료들은 입을 모았다. 이런 불만이 쌓여 지난 2006년 12월, 이지테크에도 노조가 만들어졌다.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이지테크 분회다. 

당시 양 분회장은 일반 조합원에 불과했다. “차라리 자기가 앞장서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면 모르겠는데. 우권이형은 노조 핵심 세력도 아니었어요. 노조 간부 교육도 못 받아봤던 사람이었어요. 노조를 만들고 교섭위원을 하던 사람들은 다 도망가버리고 혼자 남았으니 분회장 직책을 맡게 된거지요. 그렇게 모욕을 당하면서 혼자 몇 년을 버텼어요.” 동료 김정기씨의 말이다. 

노조가 무너지기까지는 채 4년이 걸리지 않았다. 50명에 이르던 조합원이 모두 탈퇴하고 고인 을 비롯한 3명만 남자 회사는 월급으로 압박했다. 월급이 40만 원가량 차이나는 업무로 바꿔버린 것이다. 끝까지 버티던 나머지 두 명도 노조를 탈퇴했다. 노조를 탈퇴하자 회사는 이들을 기존 업무로 복귀시켰다. 월급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혼자 남은 고인은 2010년 5월 자동으로 분회장이 됐다. 회사의 회유와 압박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는 당시의 일을 일기에 꾸준히 기록했다. 2010년 10월부터 시작된 일기는 2011년 2월까지 이어진다. 일기를 보면 그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 회사는 현장직이던 그를 사무실로 ‘작업 표준서’ 작업을 시키다가 나중에는 아예 업무를 주지 않는다. 직원들과 대화도 못하게 한다. 2달쯤 지나자 그의 일기에서 ‘머리가 아프다’라는 말이 부쩍 많이 보였다. 

 

   
▲ 고 양우권 분회장의 일기 일부. 사진=이하늬 기자
 

“오늘도 아무런 업무지시를 받지 못했다”는 일기

2010년 10월 29일
아침에 출근하니 현장에 나가지 말고 테이블에 앉아서 작업 표준서 학습하라고 지시 받았음. 운전실 상주 근무자 4명, 교대 근무자 2명.

2010년 12월 17일 
하OO 과장이 여기서는 들락날락 거리면서 관리하기 힘드니 행정팀으로 보내던지 또 직원들에게 나와 대화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리든지 해야겠다고 이야기 했다고 하였다. 

2011년 1월 3일 
오늘도 앞전과 동일하게 아무런 작업 지시도 내리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게 했다. 몇일 전부터 이상하게 직원들이 나와의 대화 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

2011년 1월 7일 
15:40분경 우OO 노무팀장 왔었다. 권OO 분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4억에 합의하고 퇴사하는 걸로. 내가 일하고 싶으니까 제발 현장으로 돌려보내 주라고 하니 그렇게 해주면 조끼 벗을 거냐고 하길래 어차피 현장근무 하면 조끼가 더렵혀지니 당연히 벗어야 되지 않겠냐고 하니 조끼와 같이 다른 것도(조합탈퇴) 벗을 수 있냐고 하였다. 오늘도 아무런 업무를 주지 않았다. 테이블 앞에 하루종일 앉아 있었다.

2011년 1월 17일
오늘도 전날과 똑같았다. 아무런 업무지시도 받지 못했다. 어제도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 일어났다. 머리가 너무 무겁고 아프다. 

2011년 1월 28일 
오늘도 하루종일 안전교육을 받았다. 현장에서 일을 해야 되는데 현장에 내보내주질 않는다. 정말 미치겠다. 어제는 병원에서 조제해준 약을 먹어서 약 기운데 쉽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 

2011년 2월 13일 
15시 30분경 집에 있는데 고OO 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아파트 앞에 와 있으니 또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둘이서 광명동 소재 광명상설시장으로 갔다. 술과 안주를 시켜서 소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는 도중 앞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노동조합을 탈퇴 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19:00경에 헤어져 집으로 왔다. 

 

   
▲ 고 양우권 분회장의 아내가 전라남도 광양시 동광양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아빠가 서서히 병들어갔다”

그는 서서히 병들어갔다. 고인와 함께 살던 딸 주원(25)씨는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나오면 늘 아빠가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어요. 힘들어서 밤에 잠을 못자겠다고 했고 머리가 아프다며 만져달라고 했어요. 밤에 잠들어도 악몽을 꾼대요. 누가 아빠를 잡으러 온다고 하고. 죽이러 온다고 하고. 감시하고 있다고 했어요. 낮에 조금조금씩 졸고”라고 말했다.
 
불면증과 수면제 탓인지 그는 점점 말라갔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는 일도 잦았다. 가끔은 혀가 마비돼 꼭 술 취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들 효성(30)씨는 “점점 살이 빠져서 나중에는 뼈밖에 없었어요” 라고 말했다. 2011년 1월에는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그는 회사에 조퇴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직접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이게 빌미가 됐다. 회사는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이유로 정직 2개월을 통보했다. 정직 기간이 시작되자 그는 회사로 출근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는 ‘정직기간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를 통보했다. “정직기간 중 출근은 할 수 있으나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책임과 권한은 행사할 수 없다”는 취업규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1심과 2심, 대법원을 이를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그는 3년의 싸움 끝에 2014년 5월 복직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법원 판결도 현실 앞에선 무력했다. 회사는 그를 제철소에서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시키고, CCTV로 감시했다. 업무를 지시하지 않았고 컴퓨터로는 인터넷도 못하게 했다. 해고되기 전의 ‘왕따’ 생활이 이때도 계속됐다. 밥 먹을 사람조차 없었던 그는 점심시간이면 집으로 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돌아갔다. 이 생활이 1년간 계속됐다. 

최근에 그는 정신과에 입원도 했다. “오죽하면 아빠는 병원에서 활력을 찾았어요. 아빠가 원래 주말이면 삼촌(회사 동료)들이랑 축구도 하고 주말이면 가족들끼리 모여서 여행도 가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완전히 왕따를 시키고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이 사람이랑은 말하지 마라'고 말했대요. 근데 병원에는  말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병원에 더 있고 싶어 했어요.”

 

   
▲ 고 양우권 분회장의 장남 양효성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제공
 

“이지테크 뒤에는 포스코의 무노조 정책이 있다”

동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비단 이지테크 대표이사, 노무팀장 등 관리자들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몇몇 관리자들의 폭언과 왕따 조장 등의 행위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포스코의 무노조 정책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포스코는 삼성과 마찬가지로 무노조 정책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유가족과 지회는 이지테크와 포스코 두 기업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지회에 따르면 포스코는 무노조 정책을 사내하청까지 강제하기 위해 계약시에 사내하청업체 핵심평가지표를 활용하는데, 이 지표에서 노사관계 비중이 20%를 차지한다. 노조가 있는 업체의 경우 이 점수가 확 떨어진다. 지난 2011년 한 사내하청업체에는 1)민주 노조 세력 축소 2)비노조 중심의 노사협의회 구성 3)제2노조 설립 4)민주노조 무력화 등의 내용이 담긴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를 괴롭혔던 사람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기가 찬 아내는 “여기 왜 왔냐. 사람 죽은 거 확인하러 왔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 관리자는 “인사만 좀 하고 갑시다”라고 말했다. 그때 친척 중 한명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회사는 지인들을 통해서도 접근해왔다고 했다. “너무 오래 끌면 안좋다, 고인 뜻 따라주는 건 좋은데 편하게 보내드리는 게 낫지 않나, 노조도 너무 믿으면 안된다 그런 식이죠”

아들 효성씨는 아빠의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돈을 억만금을 줘도 필요없어요. 아빠가 그 모욕을 당하고도 이 길을 걸어왔는데 가족들이 여기서 그만하면 안 되는거죠. 아빠가 우리 가족 잘 살자고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아빠가 잘하면 동료들이 잘 되는건데.” 가족들은 이지테크와 포스코에 공식사과뿐 아니라 △노동탄압 중단 및 재발 방지 약속 △불법파견 중단 및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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