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 전단지에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된 내용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시민을 구속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성수(41)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전단지를 제작하고 뜻에 맞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배포해왔다. 이에 경찰은 박씨의 자택은 물론 전단지 배포처로 이용했던 우체국까지 압수수색했다. 박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최고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공권력이 과잉 행사되고 있다며 경찰서에 개사료를 보냈다. 

결국 과잉 공권력 행사를 조롱하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해왔던 박씨는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박씨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전단지 수사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도중 '멍멍'이라고 외치다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당일 날 명예훼손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대구수성경찰서로 이송됐고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국가기관이 명예훼손 대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논쟁을 수면위로 끄집어냈다. 공인의 명예와 관련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라는 해묵은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박씨는 무혐의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다. 수사당국은 전단지 내용 중 '정모씨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라는 대목을 문제 삼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시한 것은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명예훼손 구성요건은 명예를 훼손당한 이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거나 명예를 훼손하려는 고의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국가기관의 명예훼손 혐의는 더욱 엄격히 적용되는 추세다.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명예훼손 피해자로서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이자 공적인물이면서 국민에게 국가기관으로 통한다. 더구나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인 의사표시를 할 경우 처벌을 하지 못하는 반의사 불벌죄에 해당한다. 

대법원 판례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진실한 경우 또는 진실 증명이 없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위법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도 지난 2011년 "모든 가입국은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해야 하며 가장 심대한 사안에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박씨가 만든 전단지 중 '정모씨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라는 내용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련의 조치를 비판하기 위한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 특히 박씨는 공인이라기 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억압을 앞서 주장해왔고 표현 당사자인 자신을 신분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명예훼손 소송에서 모멸적인 상대방 비방에 그치고 은폐하려는 목적성을 띨 때 처벌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했을 때 박 대통령을 언급하긴 했지만 과잉 공권력 행사에 대한 비판, 즉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박씨의 혐의점은 처벌 가능성이 낮다.

박씨가 과잉 공권력 행사를 비판했듯이 국가기관의 업무처리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무혐의가 된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009년 언론과 인터뷰에서 시민사회단체 사업이 정부와 계약 중 해약 통보를 받았는데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국정원은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박 시장의 주장이 현실적인 악의에 기인한 공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류로 박 시장의 손을 들어준 것을 꼽을 수 있다.

   
▲ 박성수씨 페이스북 사진
 

 

지난 2010년 당시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를 인천공항에서 맞이했지만 김연아 선수가 이를 피하는 듯한 장면을 편집한 화면이 인터넷에 화제가 됐는데 유 장관은 동영상을 올린 차모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소송을 취하한 적도 있다.  

참여정부에서도 박씨와 같이 한 개인의 표현을 두고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한 전례가 있다. 지난 2004년 영등포경찰서 이모 경사는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국민의 소리'에 노무현 대통령을 '김정일의 2중대'라고 표현한 비방글을 올렸다. 누리꾼들은 이모 경사의 IP를 추적했고 언론사에 제보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어 수사당국은 사이버수사대까지 투입 이 경사를 검거했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이 경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비방글의 내용이 구체적 사실을 적시했다기보다 자신의 추상적 의견을 표시했다고 본 것이다. 당시 수사당국의 조치에 여론은 악화됐다. 보수언론까지도 과잉 수사라며 이모 경사의 구속영장 청구를 비판했다. 세계일보는 "당초 구속사유가 못 되는 사안임에도 검찰이 청와대를 의식, 무리하게 이 경찰을 구속하려 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고, 동아일보도 "일선 경찰관들과 누리꾼들은 과잉 반응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반인은 인터넷 게시물로 유명인사의 명예를 훼손했을 때 불구속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지난 2007년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립군을 탄압한 특설부대에 근무했다는 내용의 책 출판사 대표 유씨가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역사적 공적 인물로서 친일 행적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중략)...박 전 대통령의 특설부대 근무설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지난 2005년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이모씨를 구속했다. 이씨는 박정희 비자금 진상을 밝히라는 내용과 함께 박근혜 후보가 남로당 군사총책의 딸이라는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박 대표 측은 관련 글의 출처에 대해 수사의뢰를 했고 이씨가 IP 추적을 피하기 위해 사이트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고 아이디를 바꾸는 등 비방글 작성 주체임을 은폐하려고 시도한 점을 들어 구속시켰다. 

지난 2012년에는 민주노총 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국민의 원수', 박근혜 대선 후보를 '공천헌금 받아 처먹은'이라고 표현한 백모씨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됐고 "백씨의 발언이 허위의 사실로 판단되고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벌금형이 확정됐다. 

종합하면 공인에 대한 비판 중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고 진실로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을 기초로 한 내용은 명예훼손 가능성이 적고 국가기관의 명예훼손 혐의 적용 역시 엄격한다는 얘기다. 다만 비방성과 공공의 이익 부합 정도의 기준 자체가 애매모호해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있고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 공인과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적용이 엄격한 것을 알면서도 수사 당국이 박씨의 법적 처벌에 목을 메고 있는 것은 논란을 키워서라도 정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에 대한 위축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박씨의 구속영장 발부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수사당국이 최초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려다 전단지의 경우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없다는 지적에 따라 박씨가 전단지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두고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한 것은 어떻게든 박씨에 대한 처벌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단지 내용에 대한 위법성 검토에 그치지 않고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것은 전단지 제작과 배포에 대한 공포성 경고로 풀이된다. 

   
▲ 박성수씨 페이스북 사진
 

수사당국이 박씨로부터 전단지를 받고 뿌린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했지만 전국 곳곳에서 전단지 배포가 끊이지 않은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달 6일 대전에서 박 대통령 비방 전단이 발견됐다. 그리고 8일엔 경기도 일산 일대에 박 대통령 비방 전단을 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을 검거했다. 경찰은 이들을 모두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는데 박성수씨는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이를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규정하고 압수수색까지 하는 것은 공안탄압"이라며 정면으로 공권력을 비판해왔다. 

박씨의 구속사건은 박근혜 정부 들어 명예훼손 관련 사건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과도 무관치 않다. 

지난해 10월 검찰은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대책으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핫라인을 구축해 실시간 정보를 공유한 뒤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해 포털에 게시물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대책회의 문건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자료에는 "명예훼손 사범에 대해 약식기소를 자제하고 적극적으로 구공판(기소)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해당 자료는 박 대통령이 9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한 뒤 나온 것이어서 수사당국이 '박 대통령 명예 지키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지난 3월 서울경찰청은 일선 경찰서에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난하거나 희화화하는 전단지 살포 행위자 발견시 대응요령 문건을 내려보냈는데 적극 법적 처벌 내용을 담고 있다.

박성수씨의 구속 사건도 박근혜 정부 수사당국의 일련의 조치 속에 예견된 일이라는 얘기다. 명예훼손 수사는 특히 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위축 효과의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가 인터넷상 비판 게시물을 넘어 60~80년대 봤음직한 전단지로까지 대통령 비판 내용이 확산되고 화제를 모으자 이에 대한 본보기로 박씨를 옭아메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웅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박씨가 주장한 내용이 사실 적시에 해당될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하는데 박 대통령과 박씨가 특정 일짜와 장소에서 어떤 행위를 한 것이라고 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또한 정씨의 염문 문제는 박씨가 최초로 제기한 것도 아니어서 명예훼손 필요성이 있고 구속할만한 중대한 사안인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끽소리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누가 봐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사안이 아닌데 차라리 원수 모독죄나 불경죄를 신설해 법리적으로 떳떳하게 적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인권운동연대 등 2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4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비판과 각종 의혹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담은 전단지를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을 적용, 구속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는 대통령과 정부의 무책임, 무능력, 이중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민 전체의 권리가 구속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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