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사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 파문으로 사임한 이완구 총리에 대한 사과 요구에 대해 여권에서 성완종 사면 문제를 들고 나와 ‘물타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직접 사면 문제를 정면 제기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28일 김성우 홍보수석을 대독해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저는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사면은 예외적으로 특별하고 국가가 구제해 줄 필요가 있을 상황이 있을 때에만 행사해야 하고 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저는 그동안 극히 제한적으로 생계형 사면만 실시했다. 그런데 고 성완종 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오늘날같이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이전 정부의 사면에서부터 시작됐고, 원죄가 있다는 식이다. 불법 대선 자금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문제를 이전 정부의 책임론으로 희석시키는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이완구 총리의 사의에 대해서도 "이번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최근 사건의 진위여부는 엄정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고 검찰이 이번 기회에 반드시 국민들의 의혹 사항을 밝혀내기를 바란다"면서도 "어제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 늦출 수 없는 사안이라 안타깝지만 국무총리의 사의를 수용했다"는 단서를 달았다.

중남미 순방 중 이완구 총리의 사의 표명 소식을 듣고 "안타깝다"는 반응을 내놓은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발언이다. 

총리 사의를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국정최고 2인자가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진솔한 사과를 기대했던 여론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6일 "검찰 수사의 진행 과정 중에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 사과가 있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을 압박하는 발언을 하면서 4. 29 재보궐선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는데 선거를 하루 앞두고 대통령이 이에 화답한 모양새를 만든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성완종 리스트 의혹을 받았던 이완구 총리 사의를 밀어붙이고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메시지로 민심을 진정시키는 전략을 세웠고 최소한 박 대통령의 대국민메시지를 끌어내는데 성공했지만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형식 자체가 대독 형식이라는 점에서 사과의 메시지가 퇴색했다. 청와대는 순방으로 인한 대통령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안하니만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부패척결 문제에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여전히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어느 누가 이 순간에 사건에 연루됐던 간에 부패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용납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며 "이번에 반드시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를 부패척결을 해서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정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28일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 YTN캡쳐
 

또한 박 대통령은 "만연돼 있던 지연, 학연, 인맥 등의 우리 풍토를 새로운 정치 문화로 바뀌었던 부패구조를 청산하기 위해 금품의혹들이 과거부터 어떻게 만연해 왔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서 새로운 정치 개혁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포함된 8인은 2007년 대통령 경선과 2012년 대통령 선거 자금과 관련돼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박 대통령이 이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를 해야 하는 문제인데도 정치 전반의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원론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저는 진실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특검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이미 밝힌 바 있고 지금 검찰이 엄정히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특검은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지켜본 후에 국민적 의혹이 남아있다면 여야가 합의해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은 특별수사팀의 공정한 수사를 위해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사퇴시키는 조치를 요구했지만 사실상 이에 대한 요구를 거부하면서 미진한 수사는 국회 합의하에 특검에서 해결하면 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검찰 수사는 경남기업 관련자들을 구속시키는 등 성완종 전 회장 측에 집중돼 있고 리스트에 오른 인사에 대한 소환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무엇보다 수사가 공정하게 잘 진행이 되도록 관련된 인사들의 협조가 이뤄져서 진실이 밝혀지고 국민적 의혹이 풀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메시지에 여야는 극명히 대비되는 논평을 내놨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 대변인은 "그동안 잘못된 방향에서 실행되어 온 대통령특별사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특사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강조한 부분은 법치주의 확립을 위한 강한 의지로도 읽힌다"면서 "대통령께서는 국민적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는 특검도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다시 한번 밝혔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통령의 뜻에 공감하며, 새로운 정치문화와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은 "자신의 최측근들이 관여한 전대미문의 비리와 부정부패에 대해서 단 한 마디의 언급조차 없었다. 해외순방을 나갈 때 하셨던 말씀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수준"이라며 "검찰 수사의 불공정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야당의 요구는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또한 박 대통령의 특검 수용 입장에 대해서도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 있는 8명의 정치인 가운데 한명도 소환되지 않는 등 검찰 수사의 미진함에 대해서 침묵한 채 ‘선검찰수사 후특검’을 주장한 것은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당장 김성우 홍보수석을 대독하게 한 것을 두고 야권의 진정성이 없다는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선거를 하루 앞두고 어려운 몸 상태에서도 국정을 챙기고 있다는 메시지를 여권 지지층에 호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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