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 거취와 관련해 해외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16일 낮 12시경 이병기 비서실장을 통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만남을 요청했고 오후 3시부터 40분 동안 김 대표와 단독 회동을 가졌다.

해외 순방을 떠나기 직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배석자 없이 단독으로 만났다는 것은 이완구 국무총리 거취 문제를 포함해 성완종 리스트 의혹과 관련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특히 새누리당 내부에서 새어나오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퇴 목소리에 대해 당 대표 입장을 직접 들어보겠다는 의중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회동을 갖고 오후 5시경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 대통령과의 회동 내용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께서는 이 시기에 장기간 출국을 앞두고 여러 현안에 대해서 당 대표 의견을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하셨다"며 "저는 당 내외 분출되는 여러 의견들을 가감 없이 대통령께 말씀 드렸다"고 말했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과 이완구 총리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거취 문제를 포함한 의견을 대통령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그에 대해서 대통령은 잘 알겠다.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말씀을 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특히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떠한 조치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고, 특검 도입이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부정 부패를 확실하게 뿌리 뽑는 정치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 하셨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완구 총리의 거취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고 나아가 이 국무총리를 향해 스스로 거취 문제를 고민하라는 압박의 메시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완구 총리의 사퇴를 대비해 새누리당 안에서도 준비 하라는 신호로도 풀이된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회동 결과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정권에 치명상이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을 방증한다.  

박 대통령이 불과 하루 전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점검회의 자리에서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보다 한발 더 나아가 ”어떠한 조치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은 국정운영에 치명상을 입힐 가능성이 있는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는 분석이다.  

   
▲ 박근혜 대통령
 

이에 따라 이완구 국무총리가 스스로 사퇴 의사를 밝힐지 이목이 집중된다. 이 국무총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친분이 깊지 않다고 했지만 23차례 만났다는 일지가 공개되고 특히 금품 수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날짜와 장소가 특정되고 연이어 만남을 봤다는 증언이 쏟아지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꿔왔다. 

그러면서도 이 총리는 사퇴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밝혔고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에도 안산 합동 분향소를 찾는 등 국무총리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김무성 대표와 회동을 갖고 의중을 밝히면서 이완구 총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놔야할 입장에 처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날 오전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이 국무총리,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수용할 뜻이 있다고 한 특검 도입 여부도 주목된다. 새누리당은 소장파를 중심으로 특검 도입을 요구한 상황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특검 도입에 긍정적이다. 

다만, 새정치민주연합은 후보추천위에서 선정하는 특별검사의 자격을 우려하며 야당이 추천하는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검 도입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가 흐지부지될 경우 증거가 인멸될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김철근 교수(동국대 정치외교)는 "이날 회동의 형식을 잘 봐야 한다. 해외 순방 직전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도 아닌 당 대표를 불러 독대를 한 것은 박 대통령이 공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김무성 대표를 통해 자기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이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어떠한 조치라도 하겠다는 것은 총리의 경질 또는 자진사퇴 유도를 포함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장기간 순방 일정으로 국내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에 따라 어떠한 상황이 올지 모른다. 특히 현직 총리가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상황까지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귀국하기 전 이런 상황까지 감안해 자진사퇴를 하던지 귀국해서 거취 문제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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