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 기록이 경신되길 바라지 않았다. 고공농성의 기록이다. 지난 달 31일 까지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309일이었다. 그 기록을 4월 1일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 대표가 깼다. 차 대표의 굴뚝 고공농성은 5일 현재 314일째를 맞았다. 지난 3일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에 있는 차 대표를 전화로 인터뷰 했다. 

그가 있는 굴뚝의 지름은 6m 정도에 굴뚝 중심부터 원 바깥쪽까지 폭은 1m 정도다. 굴뚝을 한 바퀴 도는데 26걸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높이는 45m다. 바람이 불 때면 ‘멀미가 날 정도로’ 굴뚝이 휘청거린다. 그래서 그는 겨울보다 여름이 더 무섭다. 태풍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는 천막이 찢어졌고 묶어놓지 않은 물건은 다 날아갔다. “무섭죠. 저도 사람이에요.” 차 대표가 말했다.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한다. 제자리 뛰기, 팔 굽혀펴기, 108배, 빨리 걷기, 줄 없는 줄넘기 등이다. 좁은 공간에 오래 있게 되면 근육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공농성자에게 근육약화와 두통, 소화불량 등은 기본 질병이다. 나중에는 허리디스크 등에 걸리는 경우도 잦다. 고공농성 ‘선배들’에 따르면 이런 증상은 땅을 밟은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운동을 많이 한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죽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하지만 더 큰 고비는 마음에서 온다. 농성이 80일쯤에 들어섰을 때였다. 장모님이 암 판정을 받았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내려갈 수 없었다. 지난 달에는 차 대표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갈비뼈가 장기를 건드려서 출혈이 생겼다고 했다. 차 대표는 “부모님이 ‘보고싶다. 그렇게 안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말할 때는 먹먹하다”고 말했다. 역시 내려갈 수 없었다. 

   
▲ 차광호 대표가 굴뚝을 찾은 사람들에게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사진= 차광호 페이스북
 

“부모님의 교통사고, 그래도 내려갈 수 없었다”

차 대표가 농성을 시작한 지난 해 5월과 지금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해고문제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타케미칼의 전신인 한국합섬이 파산 위기에 놓인 2006년부터 노동자들은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그러다 2010년 한국합섬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이다. 그는 당시 시가로 700억이 넘는 공장을 399억에 인수했다. 회사 이름은 스타케미칼이 됐다. 

새로운 사장은 노동자들과도 약속을 했다. 104명의 고용을 승계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조와 회사가 체결한 단체협상 내용 역시 그대로 승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3승계'다. 한국합섬 5년 싸움이 그렇게 정리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약속은 채 2년을 가지 못 했다. 회사는 19개월 만에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폐업을 발표했다. 2년 연속 적자(2011년 156억원, 2012년 160억원) 가 그 이유였다. 

“회사가 적자를 보면 폐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노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섬유사업 특성상 쉬던 공장을 재가동하게 되면 5년 정도는 적자가 나는 게 당연하며 인수 과정에서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후 회사가 보여주는 행보는 ‘먹튀’에 가깝다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스타케미칼은 폐업을 발표한 이후 공장을 분할매각 하고 있다. 땅, 설비 등을 각각 파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회사가 막대한 수익을 남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장 부지만 3만 2000평인데 2년 전 시가로 계산해도 땅값만 400억에 가깝다는 것이다. 차 대표는 “여기는 모든 설비를 갖춰놓고 사람이 관리만 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기계와 시설들이 엄청나다”며 “회사는 공장 가동이 아니라 설비를 팔아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들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과 3승계를 약속했지만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 차광호 대표가 농성 중인 스타케미칼 굴뚝. 사진=노동과 세계
 
   
차광호 대표가 농성 중인 스타케미칼 굴뚝. 사진=노동과 세계
 

“공장 재가동하면 부른다던 거짓말”

회사는 폐업을 발표하며 노동자들에게 권고사직을 제안했다. 사정이 조금 나아지면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공장을 재가동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중에 비정규직으로나마 일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한국합섬 파산 이후 일자리 없이 지내 본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를 받아들였다. 168명 중 29명을 제외한 이들이 권고사직을 썼다. 29명은 해고됐다. 

하지만 공장은 재가동되지 않았다. 회사는 지난 해 5월 노조와 ‘청산, 매각합의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합의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합의서 체결과 동시에 노조는 공장을 떠난다” “해고자 1000만원, 희망퇴직자 52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철거나 매각 등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는다” “관여했을시 당사자가 모든 책임을 진다” “앞으로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각이 시작됐다. 

차 대표는 "억울하지 않나. 회사는 일방적으로 공장을 멈추고 위로금 몇 푼 주고 노동자들 쫓아보내고. 그런 잘못된 부분을 알고 있으니까 아직은 땅으로 내려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해고자 29명 중 지금까지 남아 싸우는 이는 11명이다. 이들은 차 대표가 농성 중인 굴뚝 아래에서 함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달까지는 금속노조에서 지원되는 6개월 생계지원금을 받았지만 이번 달부터는 그마저도 없이 농성을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스타케미칼의 이 같은 사정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이유도 있고 구미라는 지역에 있는 탓이기도 하다. “사실 굴뚝에 올라오기 전에는 굴뚝에 올라가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암울하다는 것만 갈수록 명확해진다. 기자들과 우리 사회에 회의감이 들 정도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아예 버리지는 않았다”고 말미에 덧붙였다. 구미까지 찾아오는 이들 덕분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3일에는 쌍용차 해고들이 구미를 찾았다. 그 날 차 대표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굴뚝 아래에서 족구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족구하고 싶어 굴뚝에서 발길질을 해보지만 어둔하다. 동지들의 어우러진 모습이 너무나 좋다. 매일 오늘만 같아라.” 구미 스타케미칼, 그곳에 세계 최장기 ‘굴뚝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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