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도지사의 ‘마이웨이’ 행보가 주춤한 것일까. 무상급식 중단 이후 반대자들을 향해 이념공세를 쏟아내던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논리에 변화가 생겼다. ‘부채가 많아서’ 무상급식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주장에는 이념 논리가 가득했다. 홍 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첫 언급한 3월 11일 그는 페이스북에 “선별복지가 진보좌파정책에 부합한다”며 보편적 무상급식 주장을 “공부보다 급식에 매몰되어 있는 진보좌파 교육감들의 편향된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다.

홍준표 지사는 이후에도 무상급식 중단을 이념논쟁, 진영 간 대결로 해석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편적 복지는 진보좌파의 위선” “좌파의 선동논리에 밀려 국가재정능력을 고려치 않은 무상복지” 

   
▲ 홍준표 경남도지사. 사진=CBS 노컷뉴스
 

홍준표 지사가 해외출장을 떠날 때 비행기 비즈니스 석을 이용하고, 또 해외에서 골프를 친 사실까지 알려져 많은 비판을 받았다. 홍 지사는 이에 대해 페이스북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무상급식과 관련을 지어 비난을 하다 보니 일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반대 진영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좀 더 사려 깊게 처신하도록 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급기야 경남도청이 무상급식 중단을 반대하는 단체들을 ‘종북’으로 규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경남도는 30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종북세력을 포함한 반사회적 정치집단이 도를 상대로 정치투쟁을 하려는 일체의 행위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본부’를 “반국가적 종북 활동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간부 출신 등이 대표를 맡고 있는 종북좌파 정치집단”이라고 규정했다. 

경남도청은 성명서에서 “이것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경남도와 홍 지사야말로 무상급식 중단 논란을 이념 논쟁으로 만들어버렸다. 실제로 무상급식 중단 이후 강성보수층의 결집으로 홍 지사의 대선후보 지지율은 상승했다. (관련 기사 : <무상급식 중단한 홍준표의 도박, 지지율은 더 올랐다?>)

경남도 학부모들이 반발하는데도 홍 지사는 ‘마이웨이’를 고집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 문제를 여론조사만으로 판단할 문제도 아니다” “여론에 따라 춤추는 것도 지도자의 태도가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남겼다. 

홍 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의 새로운 논리를 제시한 것은 무상급식 중단이 현실화된 4월 1일이다. 홍 지사는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경남이 선별급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또 있다. 부채”라고 밝혔다.

홍 지사는 “경남은 그동안 1조 3500억 원에 달하는 부채로, 부채를 얻어 부채를 갚는 빈곤의 악순환으로 재정을 운영해 오다 내가 지사로 취임한 2년 3개월 동안 이자 포함 하루에 9억 원 씩 부채를 갚아 6000억 원대로 부채가 내려가 이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며 “후대에 부채를 떠넘기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 양산지역 60개 초·중·고등학교 '무상급식지키기 집중행동' 밴드 모임 학부모 50여명이 2일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경남도의 ‘종북좌파’ 성명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CBS 노컷뉴스
 

홍 지사의 무상급식 논리가 이념 논리에서 현실 논리로 변화한 셈이다. 이는 토론이 불가능했던 영역이 토론이 가능한 영역이 됐다는 점을 뜻한다. 

홍준표 지사가 이념론에서 현실론으로 넘어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반발을 무릅쓰고 밀어붙였지만 여론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3월 17일-19일 한국갤럽 조사, 3월 22일-23일 TNS-SBS 조사, 3월 30일 리서치뷰 조사 등을 보면 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반대여론은 37%->50.7%->54.7% 등 점점 악화되고 있다. 특히 경남의 반대여론은 전국 조사보다 더 강하게 나타난다. 

관련 기사 : <학교 무상급식 지원 중단 반대 여론 급증>

학부모들과 시민단체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4월 1일 몇몇 학교 학부모들은 거대한 가마솥을 가져와 급식을 거부하고 직접 배식에 나섰다. 하동과 함양, 함안 지역에서는 급식비 납부 거부 운동까지 벌어졌다. 전교조 소속 경남지역 교사 100여명은 한 끼 단식을 실시했다. 경남지역 시민단체들은 홍 지사의 공무원법 위반(골프 관련), 서민자녀지역교육사업의 중복성 및 위법성을 따져달라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할 예정이다. 

두 번째 요인은 새누리당도 홍 지사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4.29 재보선 승리를 위해 사드배치나 ‘종북 심판’ 등 안보이슈를 제기해야 유리하지만, 홍 지사로 인해 무상급식이 전국적 쟁점이 되어버렸다.

연일 무상급식이 이슈인데도 새누리당 공식 논평에서 무상급식 이야기가 자취를 감춘 점이 이를 반증한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1일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재정립한다면 공약 후퇴 또는 공약 변경이 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5월쯤 가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당 방침을 정리하겠다”며 선거 이후로 논의를 미루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과 이념공세가 역풍으로 이어지자 ‘부채’라는 현실적인 논리를 제시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부채가 많아 무상급식을 못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무상급식 예산은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으로 향했는데, 부채가 많아서 무상급식이 안 된다는 논리라면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도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첫날인 1일 경남 지수면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 건물 뒤편 공터에 솥 등 조리시설을 설치, 자녀들의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영국 경남도의회 의원은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경남도의 빚은 일반 행정 부채보다 무리하게 건설사업을 벌인 경남개발공사 등 공기업 부채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생긴 빚 때문에 전체 예산의 0.35% 밖에 안 되는, 느낌도 없을 정도의 무상급식 예산을 없애야 하나”며 “홍 지사 말대로 경남도는 빚을 갚아왔다. 작년까지 빚을 갚으면서도 급식지원을 했는데 왜 갑자기 올해부터는 못한다는 건가”라고 반박했다.

여 의원은 또한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 때도 진주의료원을 팔아 빚을 갚겠다고 했다. 근데 진주의료원 청산 하느라 500억 원을 넘게 썼다. 리모델링하는 데만 100억 원 넘게 썼다. 정상화하면 돈을 더 적게 쓸 수 있었는데, 이런 게 예산낭비”라며 “처음에 진보좌파 이야기하다 종북 이야기 하다 다 안 먹히니 이런 논리까지 들고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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