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해달라”는 박근혜 대통령 주문에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가 합의문 초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약속했던 기한인 3월 31일을 넘겼다.  계획대로라면 노사정위는 30일에 합의문 초안을 마련해 31일 대타협을 선언했어야 했다.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차가 크기 때문이다. 

노동계 대표로 노사정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5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해체를 요구하며 ‘대타협’이 성사 될 경우 총파업을 공언했다. 양대 노총의 제조부문 노동자들은 13년 만에 공동투쟁본부를 꾸렸다. 노동계가 이렇게 반발하는 이유가 뭘까. 

“비정규직, 이제는 4년 쓰고 버려진다”

파견법과 비정규직 보호법의 결과에서 보듯이 이번 논의가 미칠 파장 역시 적지 않다. 특히 한국노총이 수용을 거부하는 5가지 쟁점(일반해고 요건 완화 추진·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비정규직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파견노동 확대·임금체계 개편)에는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의 일자리도 위협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사진=노컷뉴스
 

이 중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비정규직 기간 연장이다. 현재 2년인 비정규직 계약기간을 35세 이상 노동자에 한해 당사자가 원할 경우 최대 2년까지 추가로 연장할 수 있게 했다. 즉 최대 4년까지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셈이다. 4년간 일하고도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다면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이직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계 의견은 다르다. 현재 대다수 비정규직들이 1년 11개월만 쓰고 ‘버려지는’ 것처럼 기간이 4년으로 연장되면 3년 11개월만 쓰고 버려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지금은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3~4년짜리 일자리 역시 비정규직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35세 이상 노동자가 4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일한 다음 이직할 곳이 마땅히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견 노동 확대도 마찬가지다. 55세 이상과 고소득 전문직을 중심으로 파견을 가능하게 한 것이 골자다. 노동계에서는 사실상 업종제한을 무너뜨려 전업종에서 모든 노동자에 대한 파견이 허용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파견법은 32개 업종에서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파견이 ‘예외적인 고용형태’ 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파견 노동이 확대되면 파견은 일반적인 고용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그래뿐 아니라 오과장도 위험하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정규직 일자리를 위협하는 조항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의 직무수행능력이 결여된 노동자는 우선 직업훈련이나 전환 배치, 근로조정 등을 거치게 되고 그마저도 어려울 경우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즉 직무수행능력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23조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등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간 법원은 이 ‘정당한 이유’를 상당히 까다롭게 판단했다. 하지만 저성과자 해고가 허용된다면 사용자는 마음에 안 드는 노동자를 편리하게 해고할 수 있게 된다. 노동계는 KT의 ‘인력 퇴출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사용자가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KT는 콜센터 직원을 전봇대에 올라가게 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가동해 논란이 됐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도 마찬가지다.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준수해야 할 규율과 임금, 근로시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한 규칙을 말한다. 사용자는 취업규칙 작성시에 노동자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특히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이를 변경하는 경우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단체협약이 없기 때문에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정부와 재계는 취업규칙 변경 사유인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구체화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사용자는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 없이도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다. 노동계는 “이는 대다수 무노조,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최소한의 보호막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의 노조조직율은 10% 수준이기 때문에 대부분 노동자들은 취업규칙 적용을 받는다. 

   
 
 

“메가톤급 후폭풍 올 것”

이런 내용들이 통과된다면 어떻게 될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노총이 거부한 5가지 중에 하나라도 통과된다면 노동계에는 메가톤급, 재앙 수준의 후폭풍이 올 것”이라며 “모두 기업이 하고픈 대로 하겠다는 것이며 노동자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사정위라는 테이블 자체가 대표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정부안은 기업안과 괘를 같이 하는 가운데 노동계 측은 한국노총만 참여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남신 소장은 “양대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논의의 대상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견도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사회적인 공론화부터 시작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실태조사 등을 기반으로 한 최소한의 신뢰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판을 새로 짜거나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기간 연장이라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김 선임연구위원 역시 “지금은 타협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원점 재검토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사정위 관계자는 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1일 오후, 늦어도 2일까지는 합의문 초안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해당 논의가 미칠 파장에 비해 공론화가 잘 되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고용부가 나름대로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노동시장 구조개악 노사정위원회 규탄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노사정위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1998년, 2006년, 2015년 갈수록 유연화되는 노동시장

노동계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건 선례 때문이다. 정부가 노동자를 보호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1998년 ‘파견보호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 2006년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 보호법)이 그러하다. 파견노동은 노동자가 소속된 업체와 일하는 현장이 다른 간접고용 형태다. 

가령 파견법은 불법파견으로 인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26개 업종에 한해(현재는 32개 업종) 파견을 허용하게 했지만, 이는 오히려 법적으로 간접고용 인정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파견법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신호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남신 소장도 “중간착취를 법적으로 허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비정규직 보호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인정하라고 했다.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해당 법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18%에서 14%로 4%가량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풍선효과가 잡히지 않는 ‘함정’이 있다. 2년이라는 기간을 두자 기업들은 직접고용 비정규직 대신 파견이나 용역과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늘렸다. 노동자들이 소속된 업체만 바뀔 뿐 실제 일하는 현장은 몇 년째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다. 노동계는 특수고용을 포함한 이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 규모가 200~300만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이에 대해 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아닌 기업과 정부의 요구를 중심에 둔 입법논의가 결국 여야간 타협으로 귀결되는 순간, 1998년 정리해고제도와 파견법이 만들어지고 2007년 기간제법이 만들어졌을 때처럼 겉으로는 ‘노동자들을 위한다’고 했지만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상황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이미 두 번이나 경험한 오류를 다시 반복해야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