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한겨레에는 경남 마산에 거주하는 한 고등학생의 편지가 실렸습니다. 마산 태봉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밝힌 이현진 씨가 홍준표 경상남도지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홍준표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에 대한 비판인데, 실제 당사자인 학생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드러난 글입니다.

홍준표 지사는 무상급식 예산 집행을 중단하면서 “학교가 밥 먹으러 오는 곳이냐”라고 말했습니다. ‘공부나 하라’는 지극히 권위적인 말입니다. 학생들은 이 말을 어떻게 느꼈을까요? 이현진 씨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그냥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닌, 삶 전부가 담긴 작은 우주입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현진 씨는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돌아보면, 학교 안에서 가장 뜨겁게 살아있는 공간은 급식소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똑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지사님에게는 우습게 들리시겠지만 밥 먹는 것도 공부입니다”라고 차분히 반박합니다.

   
▲ 한겨레 3월 31일자. 29면.
 

맞습니다. 그의 말 대로 “길게 늘어져 속 터지는 배식 줄을 서서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느리게 먹는 친구에게 내 속도를 맞춰가며 배려를 익힙”니다. “사람이 한자리에서 음식을 공평하게 나눠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초적인 민주주의 교육”입니다. 학교는 단순히 공부 잘하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아닌, 민주주의 시민의 기본을 교육하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준표 지사의 교육관은 참혹합니다. ‘공부나 하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주변 친구를 밟고 올라서는 경쟁만을 강요합니다. 아이들이 그나마 경쟁의 끈에서 해방되는 밥 먹는 자리에서도 소득을 나누다니, 그 속에서 아이들은 내 친구와의 ‘차이점’을 찾게 됩니다. 이현진 씨는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평등해야 할 급식소에서 ‘누구 밥은 3200원, 누구 밥은 공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고등학생이 ‘홍준표 식 교육’의 당사자로서 올린 이 차분한 글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나 봅니다. “고등학생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아이 글에 울컥합니다. 꽃다운 아이들. 그 한 때만이라도 마냥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교가 공부만 하러 가는 데가 아니라고 다들 얘기할 때 전제를 흔들어버린다. ‘밥 먹는 게 공부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공부냐’고”, 트위터에서는 이런 반응들이 나옵니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
ⓒ노컷뉴스
 

홍준표 지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집니다. 골프 논란이 일었을 때, 홍준표 지사는 “비즈니스 일정”이라고 말했고, 항공기 비즈니스석 논란에 대해서는 “정치 공세”라는 입장을 펼쳤습니다. 심지어 경남도는 성명에서 “교육현장을 중심으로 반사회적 정치투쟁이 일어나고 있다”며 ‘종북세력’ 등을 운운합니다. 자기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을 ‘반사회적’, ‘종북’으로 규정하다니, 이것이야 말로 ‘반사회적’ 행위입니다.

덕분에 홍준표 지사의 ‘안티’가 더욱 늘어난 듯 합니다. 표현도 거칠어졌습니다 “후과를 반드시 받을 것이고 천하의 가장 강력한 벌을 받을 것이다”, “홍준표씨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의 밥그릇은 내다버리고 자기 밥그릇은 규정을 들이대며 챙겨먹으니 학생이 어른에게 깨우침의 봄이 왔노라 가르침을 주는군”, “고등학생이 제대로 편지를 썼네요. 홍지사가 이 마음을 정확히 읽고 생각을 바꾸면 좋을텐데, 기대하기 어렵겠죠”라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홍 지사님, 이 학생도 종북입니까?” 어쩌면 경상남도는 이 학생도 ‘종북’ 혹은 ‘종북에 세뇌된’ 학생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반대한다고 ‘종북’이란 폭력적 낙인을 찍을 정도라면, 어떤 민주적 해법이 통할까도 의아합니다. 그 때문에, 이현진 씨 같은 학생들의 마음까지 멍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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