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 혜리, 샤이니 민호, 배우 김유정이 같은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Save KUFILM' 배우 고경표도 ’필름이 끊기지 않는 한 우리는 무직이 아니다‘는 피켓을 들었다. 그간 사회적인 발언을 하지 않던 연예인들까지 대거 나섰다. 건국대 영화학과의 통폐합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 22일 건국대는 2016년부터 기존 15개 단과대학 73개 학과 체제에서 10개 학과를 통폐합하고 63대 학과에서 신입생을 선발하는 내용의 ‘학사 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예술디자인대학 8개 학과 중 영상학과와 영화학과가 합쳐지고, 텍스타일디자인학과와 공예학과가 통합한다. 정보통신대학 6개 학과는 3개 학과로, 상경대 4개 학과는 3개 학과로 개편되며 소비자정보학과는 폐과된다. 경영대학 3개 학과중 경영정보학과도 사라진다.

학교가 내세운 이유는 ‘경쟁력 강화’지만. 서로 다른 성격의 과를 하나로 합치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은 컸다. 영화과 학생들은 개편안이 발표된 날 바로 행정관 앞에 천막을 쳤고, 이어 다른 몇몇 학과들도 천막을 쳤다. 미디어오늘이 29일 천막농성 중이던 김승주 건국대 영화과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 건국대 행정관 앞 풍경.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천막과 플랜카드가 늘어져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 건대의 학사 구조개편안,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큰 문제점은 학과 통합의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 굉장히 일방적인 통보였다. 학생들은 논의구조에서 소외된 채로 학교가 교수님들하고만 이야기했다. 총학생회도 22일 통보를 받았다. 당장 다음 달에 신입생 모집요강을 내놔야 하는데 3월 둘째 주가 되어서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1주일 지난 지금도 학교는 교수들하고만 소통하고, 학생들하고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밀어붙여 졸속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 학교가 왜 이런 시도를 하는 걸까
“아마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구조개혁 평가에서 취업률과 관련해 유리한 점수를 받기 위해 취업률 지표에 불리한 과 위주로 통폐합을 시키려는 것 같다. 특히 예술대는 취업률 지표에서 매우 불리하다”

- 예술분야에 취업률 지표를 갖다 대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인가
“불합리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 많다. 산업구조가 그렇다. 4대 보험도 적용받지 않기에 취업률로 안 잡힌다. 결국 똑같은 취업 방식을 예술대에도 강요하는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할뿐더러 사회 문제인 취업의 책임을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발이 커지자 건대는 ‘학과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학과명만 바뀔 뿐 동일하게 연기, 연출, 영상 등 트랙별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보다 전문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는 것. 이에 대해 김승주 비대위원장은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일단 그 말 자체가 학교가 학생들에게 이야기한 내용과 달랐다. 학교는 재학생들까지는 현재의 커리큘럼을 유지시키겠다고만 말했다. 트랙 커리큘럼을 운영하겠다는데 그럼 사실상 통합하는 이유가 없는 것이고 대형화 통해서 내실을 다진다는데 ‘이렇게 바뀐다’만 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교수들이 더 좋게 만들 테니 통합 이후는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 커리큘럼을 미리 만든 뒤 학생들을 설득시켜놓고 발표해도 모자를 판에 일단 발표해놓고 불만 있으니 더 좋게 만들겠다고 막무가내로 이야기하고 있다”

- 연예인들까지 영화과 통폐합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뭘까
“이 문제가 영화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에도 예술계열의 수많은 과가 사라졌고 지금도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된 학교들이 많다. 특히 예술대학들이. 예술분야 종사자들이 똑같은 취업을 강요당하는 현실에 많은 공감을 해서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 같다”

- 영화과가 가장 적극적인 이유는
“영화과는 생긴 지 얼마 안 됐음에도 학생들끼리의 팀 작업이 굉장히 많아 선후배 관계가 돈독하고 결집력도 강하다. 졸업하신 선배들과 동문회도 이 문제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와서 단식도 하고, 엊그제는 총동문회 주최로 영화 상영회도 했다. 선배들이 어떻게 도와주면 되냐고 매우 적극적이다. 사실 연예인들이 나서니 ‘재들은 학교도 잘 안 나오면서 왜 저러냐’고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고경표 선배 등 원래 이 과 학생이었다가 배우가 된 선배들이 많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배우 고경표가 지난 2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1인시위 사진.
 
   
▲ 아이돌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가 건국대 영화과 통폐합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건국대 영화과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연예인들이 나서기 때문일까. 영화과 통폐합은 많이 알려졌으나 다른 과 통폐합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승주 위원장은 대학 구조조정이 영화과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기초학문 분야의 구조조정도 심각하다. 대학 구조조정의 목표인 특성화 사업이 학과를 산업수요에 맞게, 즉 돈 잘 벌고 취직 잘 되는 과 위주로 학과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학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 영화과 외에 다른 과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다.
“사실 이 싸움 자체가 영화과가 주도하고 끌고 나간 면이 있다. 처음에 다른 과들은 솔직히 소극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점점 외부지지도 받고 하니 다른 과 학생들도 힘이 나는 것 같다. 지난주 목요일 8개 학과가 공동으로 반대한다는 성명도 냈고 소비자정보학과나 경영정보학과에서도 천막에 나와 있다.

- 이번 구조조정에서 규모가 커지는 과도 있다. 그 과 학생들은 좋아하지 않을까
“그 학생들의 마음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런 구조조정은 다른 학과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취업률만 떨어지면. 언제 없애겠다고 통보할지도 모른다. 재발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또 2년 후에 교육부 대학평가가 이루어질 때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수 있다”

- 이전에도 건대가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나.
“작년에 졸업유예제도를 폐지했다. 일방적이었다. 취업률 지표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기 위해 졸업유예생을 없애버린 것이었다. 그 때도 반대하는 학생들이 있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 건대를 포함해 대학들의 학과 구조조정은 결국 정부와 교육부가 주도하는 대학구조개혁과 맞물리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교육부 정책에 어느 정도 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대학이 포화 상태이니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가기준이 취업률이어선 안 된다. 건대 영화과는 연구실적이 동일분야 학과에서 상위 3등 안에 든다. 건대 영화과 동문들도 한국영화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 건대가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이 스스로에게 독이 될 것이라 보나
“학생들이 반대하는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면 이미지도 안 좋아질 것이다. 연예인 동문들도 일어났고 영화계 지지표명도 이어질 것이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건대도 유리할 것이 없고 이렇게 만든 신설학과에 얼마나 많은 신입생을 유치할 수 있겠나”

- 앞으로의 계획은
“24시간씩 돌아가면서 단식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학교 측이 요구를 들어주고 학교와 학생의 합의점을 도출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구조조정의 피해자가 된 다른 학교 학생들과도 계속 연대할 생각이다”

   
▲ 건국대 행정관 앞에서 영화과 학생들이 천막농성 중이다. 사진=조윤호 기자
 

인터뷰 말미에 김승주 위원장에게 ‘취업률도 높지 않은데, 우리 사회에 건대 영화과가 필요한 이유가 뭐라고 보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기자에게 “실례지만 어느 학과 졸업 하셨나”고 되물었다. 내가 졸업한 학과를 이야기하자 김 위원장은 “기자님이 졸업한 과가 취업률이 떨어지자 없애자고 하면 어떻게 대답하시겠나”라고 반문했다.

김 위원장은 “건대 영화과에 이어 다른 예술대학들을 하나씩 없애려 할 것이고 결국 이는 한국 예술의 방향성에 해가 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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