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4. 29 재보궐선거 관악을 출마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불출마 입장부터 출마 시사까지 전망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이 출마 입장에 대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게 밝히면서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 전 장관은 출마설로 시끄러운 지난 26일 김세균 국민모임 창당 주비위원장과 만나면서 입장을 내놨다. 정 전 장관의 메시지는 '불출마'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김세균 위원장은 "정 전 의원이 그동안 국민모임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밀알이 되겠다고 밝혀온 만큼, 이번에 출마해서 당선되고 그 힘으로 야권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밀알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국민모임이 말씀하시는 뜻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불출마 입장을 바꾸기 어렵다. 불출마 약속을 번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전 장관은 "보궐선거를 통한 단판 승부보다는 대안야당과 대체야당을 건설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대로 호흡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의 출마설은 직접 김세균 주비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확실한 불출마 의사를 전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회동 직후엔 다른 말을 했다. 취재진과 만난 그는 "현재로선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라는 단서를 달았는데 오는 29일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입장을 번복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정 전 장관은 특히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출마 가능성을 완전 닫지 않았다는 뜻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회동 후 언급도) 오늘 아침 언론에 얘기한 것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당일 아침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무겁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출마에 무게를 뒀다. 아침까지 출마에 뜻을 두고 있다는 정 전 장관은 공식일정인 김세균 주비위원장과 회담에서는 '불출마' 입장을 밝혔고, 또다시 회동 직후에는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한 것이다. 

정 전 장관이 관악을 출마에 대한 여론을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불분명한 입장이 자신의 존재감을 오히려 띄울 수 있고 오는 29일 발기인대회에서 출마를 선언한다면 극대화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 수 있다. 최종 출마를 하지 않더라도 국민모임의 대표주자로서 존재감은 이미 설왕설래한 출마설로도 입증된 셈이다.

당초 정 전 장관의 출마는 국민모임 지도부가 강하게 밀어붙였다. 김세균 위원장은 국민모임 결성 초기엔 정 전 장관의 출마를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재보궐선거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워야지만 국민모임의 초석을 다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그 인물이 정 전 장관이라는 것이다.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하지만 설령 정 전 장관이 관악을에 출마해 당선이 되더라도 국민모임이 원하는 정계개편의 불씨를 앞당길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 전 장관이 이기더라도 국민모임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인을 얼굴로 내세워 국민모임이 정계개편의 기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 자체부터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역대 제3정당이 대중의 지지를 받은 것은 색깔있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거나 확실한 지역적 기반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원내의석으로 제3당까지 진출했던 통합진보당의 전신 민주노동당의 경우 민주노총이라는 계급적 지지 기반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국민모임의 정체성과 지지 기반은 명확치 않다. 국민모임 조직의 인사를 보면 이미 시민사회와 학계, 전직 의원의 명단으로 채워져 있다.

지난 25일 서울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한 청중은 '유명한 시민사회 명망가와 교수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꼬집었다. 또한 '의회중심의 정치를 비판하면서 당선을 중요시 하는 기성 정당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쳥년 정당이라고 하는데 청년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정당의 구심점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출마에 큰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 출마를 강행했는데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국민모임은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 야권에서 제기하는 분열 책임론을 뛰어넘어 내부에서 전략 실패를 탓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기성 정당과 같은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국민모임의 차별성이 급격이 퇴색될 수 있다.

그럼에도 정 전 장관이 출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정동영 전 장관 출마 촉구위원회 대표를 맡은 정옥호씨는 27일 통화에서 "재벌 부자들만 위하는 박근혜 정권과 무능하고 무기력한 제1야당 등 정치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며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 전 장관이 나와 정부와 야권에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고 말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간보기를 하다 여론이 미끼를 물면 출마선언을 하는 것이 정치권의 패턴이었는데 최근 정 전 장관을 보면 출마 가능성 쪽에 흔들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2. 8 전당대회 이전까지만 해도 야당의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대안세력에 대한 열망이 높았지만 전당대회 이후 문재인 대표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국민모임 입장에서는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고민과 함께 기회를 잡아야 된다는 압박감이 몰려오면서 결국 정 전 장관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다. 

최 평론가는 하지만 "정 전 장관의 관악을 출마는 최악수가 될 것"이라며 "야권을 찢어놓을 원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재보선의 야권 결과를 보고 패배할 경우 동력을 흡수하는 것이 낫다. 이번 출마는 임팩트는 있지만 패배할 경우 야권을 다치게 하고 문재인 대표와 나눠서 책임을 분담하는 무리수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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