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여고생 간 키스신으로 논란이 됐던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 대해 JTBC 사장이 직접 연출자에게 동성애 표현을 자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드라마 장면은 2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도 법정제재 수준인 다수 ‘경고’ 의견으로 전체회의에 회부됐다. 방통심의위 법정 징계는 방송 프로그램 정정·수정 또는 중지(이상 벌점 4점), 경고(벌점 2점), 주의(벌점 1점) 등의 단계로 돼 있는데 벌점이 쌓이면 재허가 심사 때 감점 요인이 된다.

지난 18일 열린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김성묵 위원장은 ‘선암여고 탐정단’ 동성 키스 장면과 관련해 “종편 사장들과 심의위의 간담회 자리에서 JTBC 사장(김수길)이 ‘연출자에게 자제하라고 얘기했는데 연출자가 말을 안 들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제재를 해야겠다’고 했다”며 “제작진 의견진술을 듣고 왜 그렇게 제작했는지 듣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이 드라마를 연출한 여운혁 PD도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김수길 사장에게 직접 지적을 받은 게 맞고 나도 그 지적에 수긍했다”며 “이후엔 동성에 키스 장면이 잡혀있지 않았고, 사장의 지적도 제작 자율성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드라마 연출자 스스로 논란이 된 드라마 장면에 대한 지적을 수긍하긴 했지만, 방송사 대표가 드라마 제작자의 자유로운 연출과 표현에까지 직접 개입한 것은 제작 자율성 침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운혁 PD “동성애 사회적 인식 변화 보여주고자…과한 표현 사과” 

여 PD는 이날 오후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에 제작진 의견진술을 위해 나와서도 “해당 회 전체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성별과 지역이나 나이, 빈부 격차, 교육 수준에 따라 차별과 비난을 받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며 “내 사회생활 경험에서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대상이 동성애에 관한 얘기라고 생각했고, 싫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여 PD는 이어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반대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그 자체로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동성애에 대한 부분은 예전에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2010, 정을영 연출) 등도 있어서 문제가 없을 것 같았는데 표현 수위가 의도와 다르게 조금 과했던 것 같아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5일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 방송화면 갈무리
 

이에 대해 야당 추천의 장낙인 심의위원은 “지난 2007년 ‘커피프린스 1호점’ 드라마에서 동성애에 관한 소재를 다루기 시작해 그 후에도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는 차별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소수자에게 힘이 됐다는 평가도 받아 ‘무지개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며 “동성애를 다뤘다고 해서 드라마 소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 위원은 이어 “다만 드라마 방송 시간이 청소년 보호 시간대가 지난 시간이긴 하나 ‘15세 이상 시청가’이고 여고생의 성적 표현이 장시간 노출됐다는 점에선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과거 비슷한 유형의 심의 사례를 살펴볼 때 대체로 ‘의견제시’ 또는 ‘권고’로 제재 수위가 결정돼 해당 장면도 ‘권고’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야당 추천의 박신서 위원은 “나도 동성애의 성적 지향성이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고 개인의 성적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본다”면서도 “문제는 이렇게 방송할 때 미치는 영향과 파장의 범위를 감안했어야 하는데, 담당PD의 진술을 고려해도 과도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해 ‘주의’ 의견을 내겠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여당 추천의 나머지 세 명의 위원이 법정제재인 ‘경고’ 의견을 내면서 이 안건은 오는 전체회의에서 최종 제재 수위가 결정될 예정이다. 적용 조항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5조(윤리성) 제1항과 제27조(품위유지)의5, 제35조(성표현) 제1항과 2항,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 제1항이다.

드라마 PD “제작자 창의성을 억압하는 법적 제재·강요는 부당”

함귀용 위원은 “나도 성수수자의 인권을 침해할 생각은 전혀 없고 다수와 다른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문제는 방송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느냐이고, 이성 간의 사랑도 표현 수위가 지나치면 제재할 수 있는데 동성 여고생의 키스 장면을 줌인(zoom in)해 가면서 1분 넘게 방송한 것은 도저히 심의기준에 저촉 안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고대석 위원도 “이 드라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이고 논란이 된 동성애를 굳이 소재로 써야 했는지는 문제”라며 “표현 방법도 잘못하면 청소년에게 동성애를 권장·조장할 수 있는 요인이 있어 당연히 법정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선암여고 탐정단’의 심의와 관련해 한 지상파 드라마본부 관계자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계없이 방통심의위가 상당히 보수화되고 그런 엄격한 잣대로 들이대려는 경향이 늘어난 것 같다”며 “이는 드라마 제작자의 창의성을 억압하고 창작성을 약화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방송사 사장이 드라마 연출에 직접 개입한 것과 관련해선 “회사의 판단이 있겠지만 창작의 자유를 방해하는 행위는 좀 더 선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시청자 의견과 찬반 토론 과정을 통해 판단해도 충분함에도 법적으로 제재하거나 이게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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