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까지 합의한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게 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 검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권이 청문회를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3월에 ‘원포인트 본회의’라도 열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대법관 후보자로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거세다. 4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구성 이대로 좋은가 긴급 집담회> 자리에서도 이런 기류가 감지됐다. 이날 집담회에는 박상옥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인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0여명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사법연석회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등이 참석했다.

투옥 중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한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옥에 있을 때 박종철군 치사 혐의로 남양동 소속 두 명의 경찰이 들어왔다. 당시 수사검사들이 이 경찰관들을 조사하러 왔고, 교도관 등으로부터 수사 이야기를 상세히 들었다”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 4일 국회에서 ‘대법관 구성, 이대로 좋은가’ 긴급 집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이 고문은 “당시 박상옥 막내검사가 왔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말단 검사가 왔는지까지는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비록 박상옥 자신이 축소‧왜곡을 지시한 위치는 아니었다 해도 그런 사건에 연루된 분을 대법관으로 임명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 이런 흠이 있어도 권력의 눈에만 들어 대법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참 병이 많이 든 나라”라고 말했다.

박상옥 후보자는 “당시 수사팀 일원으로 최선을 다해 수사했고 그 수사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날 집담회 자리에서는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박상옥에게는 이 사건을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월 20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팀이 꾸러졌는데 1월 24일, 불과 4일 만에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며 “짜여진 각본에 따라 실행한 수사로 고문 경관을 현장에 데려오지도 않고 현장검증을 했다. 이 수사팀에 박상옥 검사가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또한 “고문치사사건이 폭로된 5월 18일 이후 2차 수사팀이 꾸려졌다. 당시 여주지검에 있던 박상옥 검사가 파견 형식으로 합류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3명 정도의 경찰 상층부만 추가로 조사했을 뿐 책임자인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은 무혐의 처리했다”며 “부실수사 정도가 아니라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국장은 “박상옥 검사는 진실을 규명할 기회를 박찼다. 따라서 박상옥 검사가 단순히 말단검사였단 이유만으로 이 문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며 “그가 대법관에 임명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행위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변 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는 “박상옥 후보자는 당시 수사 주임검사였다. 조금만 관심을 가졌으면 수사 상황에 대해 다 알 수 있었다. 수사정보 역시 다 공유하게 돼 있다”며 “실체적 진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사진=노컷뉴스
 

박상옥 후보자가 대법관 후보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위원인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대법관의 자질로 △사법정의에 대한 투철한 정의감 △ 인권감수성 △행정권력의 오남용을 견제하려는 의지 등을 제시했다.

임 교수는 “투철한 정의감이 있었다면 박종철 사건 은폐 수사는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권감수성을 가졌다면 축소수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또한 권력의 오남용을 견제하기는커녕 거꾸로 합리화하는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재화 변호사 역시 “이런 반인륜적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사람을 어떻게 룰을 결정하는 자리에 앉힐 수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기득권과 기성논리를 보호하는 대법관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며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청문회는 열릴 수 있을까. 새누리당은 인사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양승태 대법원장은 3일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친서를 보내 박상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신속히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임지봉 교수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관 자리가 장기간 공석인 것이 좋지 않다며 친서를 보냈다. 대법관 공석 사태의 원인을 누가 제공했나”며 “부적격 후보를 제청한 양승태 대법원장 본인이 원인을 제공해놓고 장기화 막기 위해 부적격자의 임명동의안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부적격자를 제청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집담회 장소 밖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야당 입장에서 청문회를 할지 안 할지 판단해야 하는데 이런 집담회를 통해 청문회를 못할 정도의 하자가 있는지 들어보자는 것”이라며 “그리고 나서 인사청문특위 위원들도 다시 논의를 할 생각이다. 당내에서 대부분은 부적격자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제 결정하나’는 질문에는 “3월 중에 청문회를 열지 안 열지 결정 해야겠죠”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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