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축소·은폐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29일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려는 의도로 여러 지시를 했다는 주장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전 청장은 2012년 대선 직전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축소·은폐하고 대선 직전에 허위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경찰이 중간수사결과에서 국정원 직원이 대선후보에 대한 비방 및 지지 글이나 댓글을 쓴 적이 없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경찰 수사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정치 댓글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사진=이치열 기자
 

김 전 청장의 이러한 혐의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폭로로 알려졌다. 권 전 과장은 2013년 4월 김 전 청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당시 국정원 직원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지 말라고 했으며 대선 후보토론회 직후인 12월 16일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강행하는 등 수사 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검찰은 서울경찰청이 국정원 직원 김하영의 컴퓨터 분석 범위를 제한하고, 증거분석 결과가 수사팀에 늦게 전해진 것 등이 김 전 청장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의혹 등을 제기했다.

그러나 권 전 과장과 검찰의 주장은 1심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2월 1심 판결에서 김 전 청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권 전 과장의 증언이 다른 경찰들과 어긋나는 점 등을 토대로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고등법원은 2심에서도 같은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당사자인 권은희 의원은 성명을 내 “참담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권 의원은 “서울청의 부당한 개입으로 허위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내가 증언했고, 그 수사 결과로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개입 댓글활동이 확인됐고 법원은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고 있다”며 “명백히 중간수사결과 발표내용과 수사결과가 다름에도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하여 사법부가 무책임하게 판단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사진=이치열 기자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성수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상식과 국민의 법감정을 외면한 매우 실망스러운 판결”이라며 “법원의 무기력한 판결을 보며, 앞으로 국가기관과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강조했다.

김종민 정의당 대변인은 “대선 당시 급작스럽게 이뤄진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발표가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함에도, 이것이 선거운동으로 보긴 어렵다는 전형적인 ‘지록위마’ 논리에 대해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번 정의롭지 못한 판결이 다른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은 “야당은 그동안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만을 믿고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해왔다”며 “오늘도 야당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는 표현을 내놨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정략적인 판단으로 국민의 눈을 흐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정원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아직 원세훈 전 원장과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권 의원도 모해위증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지난해 7월 법정에서 김 전 청장의 혐의를 주장하기 위해 거짓 증언을 했다는 이유다.

권 의원은 “무기력함도 느끼지만 다행히 아직 진행 중인 수사와 재판이 많다”며 “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어느 누구도 감히 진실을 숨기지 못할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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