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포털 메인 화면에 많이 읽은 기사로 한장의 사진 기사가 떠올랐다. 

해당 기사는 <세무서 직원에게 성매매 강요당한 B양>이라는 제목으로 "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7일 오후 성매매여성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를 빌미로 협박을 해 수십차례 성관계를 가진 대전지방국세청 관할 충북지역 한 세무서 8급 공무원 A(35)씨를 강요·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히고 지능범죄수사대 회의실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한 B양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의 사진을 내걸었다.

단 한장의 사진 기사는 천개가 넘는 댓글이 달릴 만큼 파급력이 컸다. 

해당 기사의 소재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가득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 여성이 돈을 빌리고 쓴 차용증에는 노예 성매매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었다. 차용증을 쓴 사람은 성매매 여성이었고 더구나 돈을 빌려준 사람은 세무서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이 한 여성을 성매매업소에서 만나 관계를 유지하다 사채 이자로 고민하던 여성에게 돈을 빌려줬다. 그리고 '기일내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문제의 차용증을 썼다. 돈을 갚지 못하면서 맺은 성관계 횟수까지 언론에 공개됐다. 

성매매여성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고 갚지 않을시 성관계를 할 수 있다고 계약을 한 사람이 공무원이라는 내용은 언론의 구미를 자극했고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보도의 정점에 사진 기사가 있었다.

사진 기사를 올린 뉴시스는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B양> <이야기 나누는 B양>이라는 제목으로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 5장을 사진 기사로 보도했다.

기사를 본 사람들은 여성의 외모에 관심을 가졌다. 가해자의 행태, 성을 대가로 이뤄진 돈거래 문제,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 문제 등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이 여성 사진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는 해명이 나올 수 있지만 굳이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의 사진을 굳이 보도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당장 댓글을 단 누리꾼들은 여성의 직업과 외모를 따지고 피해자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마구잡이 비난을 쏟아냈다. 

반면 한 누리꾼은 '가해자에게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한 언론이 무슨 이유로 피해자의 얼굴 사진을 걸었는지 뻔히 보인다. 모자이크 처리가 아니라 아예 사진을 내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진 기사뿐 아니다. 28일자 아시아투데이는 <기사의 극적 재구성, 현대판 성노예 각서, 고리대금까지 한 세무공무원>이라는 기사를 통해 공무원 고성만(가상)과 김희진(가상)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만나고 차용증을 쓰고 성관계를 맺었는지 가상의 이야기로 풀어내 사건을 보도했다.

기사에는 고성만이 "각서 내용 보여줘? 평생 노예로 산다며? 섬에 팔려가고 싶어? 어? 빨리 문 열어! 내가 큰 걸 바라? 그냥 고분고분 잠자리만 하면 된다니까"라며 구체적인 협박 발언을 한 내용이 나온다. 물론 이 같은 발언은 진위와 상관없이 상상 속에서 나온 말이다. 

나아가 아시아투데이는 "희진은 점점 성만이가 제시한 매달 기일을 맞추지 못했다. 그때마다 희진은 하루 종일 성만이 옆에서 그의 노리개가 되어야했다. 조금이라도 싫은 내색을 하면 각서 내용을 들먹이며 희진에게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썼다. 

아시아투데이는 기사 말미에 "실제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 한 기사입니다, 따라서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재구성한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 KBS2 공무원 성매매 노예계약 사건을 재연한 방송 내용
 

방송화면에서도 자극적인 장면이 등장했다. KBS2는 28일 뉴스따라잡기 코너에서 <빌려준 돈 빌미 성 착취 남성, 알고보니>라는 리포터를 통해 공무원 성매매 차용증 사건을 보도했다.

리포트는 ‘재연’이라는 자막 아래 한 남성과 여성이 만나 차용증을 쓰는 장면, 남성이 여성을 손을 잡아 강제로 끌고 가는 장면 등으로 이뤄졌다. 남성이 차용증을 보면서 음흉한 미소를 짓는 장면도 나온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조차도 홍수처럼 쏟아진 언론 보도에 당황한 모습이다. 특히 경찰서 내부에서 이뤄진 피해자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서는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서 언론의 과도한 관심을 에둘러 비판했다. 

대전지방경찰청은 경찰에서 피해자 여성을 언론에 연결시키거나 보도자료를 낸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건 담당자 관계자는 2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저희 쪽에서 피해자 연락처를 알려준 적이 결코 없다"며 "피해자에게 유선상으로 사건 영장이 기각돼 검찰에 송치하겠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본인은 어렵게 상담센터에서 상담도 하고 신고까지 했는데 잘 진행되지 않은 것 같아서 피해자 거주지 근처인 언론사에 억울한 면이 있다고 제보해 방송에 나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보도 이후 다른 언론사로 인적 사항 등이 공유돼 연결되면서 피해자 연락처를 알아내 경찰청 로비에서 인터뷰가 진행된 것으로 안다"며 "저희들도 깜짝 놀랐다. 이번 사건은 국민 알권리 차원도 있지만 피해자 보호가 우선돼야 하니까 알릴 필요가 없다고 봤는데 언론에 보도되고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뿌리게 됐다"고 말했다.

최진봉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는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고 정당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언론은 피해자 인권 보호 의무가 있는 것"이라며 "결국 언론이 상업화된 것이다. 경쟁이 심해지고 광고시장에서 부각되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목표가 되면서 뉴스의 본질, 객관성, 공정성 보다 자극적인 내용이 넘쳐나게 되고 언론의 기본적인 원칙이 무너지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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