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초법적 행정기구인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에서 일하고 훈장을 받은 경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후보자는 임명동의안에 지난 1980년 경정 계급으로 일을 하다 국보위 내무분과위원회 파견돼 근무를 했고 보국훈장광복장을 수여받았다고 밝혔다. 

국보위는 ‘10. 26 사건’ 이후 사회적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을 들어 대통령 자문기구 형식을 빌려 출범했다. 하지만 사실상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행정을 통제하기 위한 기구였다. 설치는 전두환 전 대통령(당시 보안사령관)의 지시아래 이뤄졌고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맡아 산하 13개 분과위원회로 출범했다. 국보위 소속의 과장은 장관의 권한보다 셀 정도로 권력이 집중됐다. 특히 국보위는 사회정화 작업을 한다며 삼청교육대를 설치했는데 내무분과위원회는 교육 대상자를 분류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대법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과 관련한 판결에서 국보위 및 상임위 설치에 대해 “헌법기관인 행정부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것은 국헌문란에 해당하고 폭동 행위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취재진 조치는 내란행위”라고 판결했다. 또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삼청교육대에 대해 공직자 숙정이나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과 같이 신군부의 내란죄의 한 부분으로 판결했다. 이 후보자의 경력대로라면 초법적 기구의 내란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곳에서 일했던 것이 된다. 

이 후보자가 국보위 내무분과위원회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자신이 밝히지 않은 이상 정확히 할 수 없지만 추정해 볼 수 있는 증언이 있다.

1979년 보안부 정보처장이었고 국보위에서 내무분과 위원장을 맡았던 권정달 전 의원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나는 내무분과위원회에 속해 있었다. 나와 현홍주(당시 중정 정보국장) 두 사람은 국보위를 통해 주기적으로 시국에 관한 전반적인 정세 현황을 보고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권 전 의원은 “국보위의 주요 활동상은 (사회)정화위원회의 삼청교육대 설치, 문공위원회의 과외금지, 경제위원회의 중화학공업육성의 지속적인 투자와 조정을 들 수 있다”며 "국보위 정화위원회가 정책을 결정해서 시행에 들어갔지만 실제로 대상자 선별은 현지 경찰에서 맡아 진행했다“고 밝혔다.

권 전 의원은 “사적인 친소관계가 개입돼 취지를 흐리게 하는 일도 있었다”며 “이를테면 당시 한 서울지역의 조직폭력 두목을 삼청교육대로 보내야 하는데 보안사의 어느 누가 이 사람을 빼달라고 한다면서 서울시경 형사과장이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국보위 내무분과위원회 소속으로 삼청교육대 대상자를 분류하는 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권 전 의원은 경찰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면서 “후에 삼청교육대에 갔다 온 사람들 사이에서 ‘지옥에 가라면 갔지 거기는 못 갈 데’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조폭 두목은 겉으로 보기엔 용모가 잘 생기고 유력한 사업가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로서는 사정을 들어주지 못해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도 삼청교육대는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에서 입안해 전반적인 조정, 통제 업무를 담당했고 계엄사령부가 내무와 법무부를 지휘 감독해 분류 심사를 한 것으로 파악했다.

계엄사령부는 1980년 8월 1일부터 1981년 1월까지 6만여명을 법원 영장 없이 검거해 4등급으로 분류하고 4만명에 가까운 인원을 삼청교육대로 배치했다. 피검거자 가운데 35.9%는 전과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무분별한 검거가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 삼청교육대 훈련 모습. ⓒ 연합뉴스
 

김장봉(55)씨도 삼청교육대 피해자 중 한명이다. 김씨는 1980년 7월 시골집 전남 해남에서 가족 농사일을 돕고 있다가 끌려가 광주 31사단에서 훈련을 받고 강원도 양구 삼청교육대에서 군사 도로를 닦는 일을 했다. 그리고 6개월 후 출소해 바로 입영통지를 받고 군대를 갔다.

삼청교육대 당시 이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악몽을 꾸고 일상생활 중 깜짝 놀라는 후유증을 겪고 있다. 또한 결혼을 하고 뒤늦게 삼청교육대 입소 경력이 알려져 이혼까지 당하게 됐다.

김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직업도 없고 시골집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쉬고 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시골 면 단위로 할당이 돼서 우리 마을에서 두명이 끌려가게 된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삼청교육대 6개월 입소 전력 때문에 사회에서 낙인이 찍혀 버렸고 이혼까지 했다”며 “당시엔 전두환 정권 어디에서 대상자로 선정했는지 몰랐는데 대상자 선정 작업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곳에 근무했던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정치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시켜서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상식에 맞지 않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이 후보자가 총리 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도 이완구 총리의 국보위 경력에 우려를 나타나고 있다. 

김정현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부대변인은 28일 논평을 통해 “국민은 ‘총리 각하’의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내무분과위 시절을 알고 싶어 한다”며 “삼청교육대를 비롯한 국보위의 주요 내무분과 업무에서 구체적으로 누구의 지시에 의해 어떤 업무를 수행해 보국훈장 광복장까지 받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수석부대변인은 “일국의 총리 후보자가 과거 공직시절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아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기록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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