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수사 도중에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피의자의 컴퓨터를 뒤지던 중 아동 포르노 동영상을 발견했다. 당신이 수사관이라면 이걸 못 본 척 하고 그냥 넘어갈까. 미국에는 이와 관련한 유명한 판례가 있다. 영장에 적시돼 있지 않았더라도 수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한 범죄의 증거는 유죄 입증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게 통상적인 플레인뷰 원칙이다. 그러나 2009년 미국 법원은 디지털 증거의 경우 이 플레인뷰 원칙을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비슷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경찰이 야구선수들의 약물 복용 혐의를 수사하던 도중 야구선수들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 선수들의 도핑 테스트 결과를 한꺼번에 확보했다. 그러나 알렉스 코진스키 판사는 이들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영장에 적시돼 있지 않은 관련성 없는 정보는 폐기하거나 환부해야 하고 관련성 여부를 판단할 전문 요원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판례는 향후 디지털 압수수색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7일 한국언론법학회 세미나에서 “(한국에서는) 디지털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아날로그식 영장주의가 전방위적인 감청과 싹쓸이식 압수수색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패킷 감청 영장을 받아 어떤 회사 사무실의 인터넷 회선을 감청하면 같은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인터넷 사용 기록이 그대로 넘어가게 된다.

만약 우리 집 컴퓨터를 검찰이 감청한다면 IPTV로 뉴스를 보고 있는 아빠와 태블릿으로 쇼핑을 하고 있는 엄마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클라우드에 백업하는 동생까지 모두 털리게 된다. 감청 영장에는 혐의사실과 관련된 사항만 감청하도록 돼 있지만 오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점쟁이가 아닌 이상 일단 털고 난 뒤에야 골라낼 수 있다”. 감청 영장이 막무가내식 싹쓸이 감청을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 용어로 통신제한이라고 하는 감청과 압수수색의 차이는 송수신이 완료됐느냐의 여부에 달렸다. 감청은 실시간으로 통신 내용을 들여다 보는 것이고 압수수색은 영장을 발부받아 통신사 등에 보관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검찰이 통신제한 조치를 법원에서 허가 받아 카카오톡의 특정 계정의 대화 내역을 미리 확보하는 행위를 감청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지난해 10월,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앞으로 감청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법적인 고려에서 나온 대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감청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감청이라는 명목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대화 내역을 미리 확보하는 행위가 법적으로 정당성이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감청 영장이라는 표현은 존재하지도 않고 법률 용어로는 통신제한 조치 허가서라고 부른다.

오 교수는 “통신제한 조치의 경우 법적 성질은 영장인데 법관이 발부하는 게 아니라 법원이 허가하는 형식이라 엄격한 영장주의의 원칙을 피해가기 위한 희석용 표현으로 오인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이라는 행정청의 허가서와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다. 오 교수는 “감청 영장이라는 쉽고 명확한 표현을 애써 피해가며 통신제한조치 허가서라는 길고도 어려운 용어를 쓰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과 통신자료 제공도 남발되고 있다.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은 통신 일시와 기지국 추적 자료 등을 요구하는 것이고 통신자료 제공은 아이디와 전화번호, 이름 등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오 교수에 따르면 해마다 2000만 개의 통신 데이터가 수사기관에 제공되는데 기지국 수사의 비중이 2011년의 경우 98.6%에 이른다. 문제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시점의 언급이 없어 대부분 실시간으로 정보가 제공된다는 데 있다.

오 교수는 “이용자가 직접 음성 통화나 데이터 통신을 실행하는 경우는 통신에 해당하겠지만 단순히 휴대전화 단말기에 전원만 들어온 대기 상태일 때도 수사기관이 기지국 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 된다”면서 “통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단말기와 기지국 사이의 전자적 교신은 통신이라고 볼 수 없고 당연히 이런 데이터를 통신사실 확인자료라는 명목으로 수사에 활용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디지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보장을 위한 헌법 원리가 고도의 침해 수단으로 둔갑되고 개인의 내밀한 프라이버시가 영장의 정당성을 통해 침탈되고 있다”면서 “디지털에 관한 헌법 원리의 적용을 상당부분 포기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단순히 적법과 위법의 절차적 문제 뿐만 아니라 사생활에 대한 비밀의 보호, 프라이버시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권에 관한 면밀한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테면 이미 휴대전화가 압수된 피의자에 대해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는 경우도 있다. “위의 장소·차량·신체에 소지·관리·보관·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와 카메라, 캠코더, 녹음기, 차량 내비게이션, 디지털 정보저장 매체(USB, CD, HDD, MP3, PDA, 전자수첩, 디지털테이프, 프린트기, 기타 각종 메모리 등) 및 동기기·매체에 수록된 내용.” 이런 영장은 사실상 모든 형태의 디지털 기기를 포괄적으로 압수수색해도 된다는 의미다.

오 교수는 “전방위적인 저인망식 수사를 금지하려면 수색의 대상을 당초 발부된 영장의 범위로 제한하고 집행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 증거는 증거 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게 코진스키 판사의 결단”이라면서 “디지털 증거의 압수와 수색은 제한적으로 허락돼야 하고 수사기관은 영장 발부 단계에서 대상과 범위를 미리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프라이버시권이 소극적 의미에서의 사생활 비밀 보호가 아니라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디지털 기본권으로 기능해야 한다”면서 “디지털 정보에 있어서는 영장집행의 적법·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최소 침해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한국적 상황에서 플레인뷰의 적용 금지 원칙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압수수색의 대상을 혐의 사실과 관련된 부분에 한정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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