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프랑스를 충격에 빠트렸던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의 테러 사건은 테러 용의자인 쿠아치 형제가 인질극을 벌이던 과정에서 사살당하면서 끝이 났다.

이 사건이 이제껏 존재했던 그 어떤 테러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테러범들이 외부인이 아닌 프랑스에서 자란 지하드 단원들이었으며, 이슬람 혐오주의자들과는 거리가 먼 샤를리 엡도의 만평가들을 겨냥해 백주대낮에 총기로 난사한 계획적인 테러였다는 점, 게다가 그 이유가 단지(?) ‘불경한 그림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테러로 샤를리를 대표하는 ‘오만 방자하고 불경한 그림’의 대가들인 샤르브(47), 볼랑스키(80), 캬부(76), 티뉴스(57), 오노레(73)를 비롯 12명이 숨지고 4명은 중상을 입었다. 테러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숨진 만평가들이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전설적인 만평가들이었기에 슬픔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테러 다음날이었던 1월 8일 낮 12시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1분간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갖기도 했고, 테러 장소였던 샤를리 엡도 사무실 앞에는 끊임없이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밤에는 에펠탑이 소등됐고, 파리, 리옹, 툴루즈 등 각 도시에서 수백만 명이 모여 희생자들을 기리기도 했다.

이들은 ‘Je suis Charlie(나는 샤를리다)’라는 로고가 적힌 팻말을 들고 광장에 모여 침묵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진 이 로고는 매거진 Stylist의 아트디렉터인 조아킴 롱쌍(Joachim Roncin)이 자신의 트위터에 디자인해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한 상황에서 달리 할말이 없어 만들었다는 이 로고는 샤를리와 그 뜻을 함께 하겠다는 의미로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내가 샤를리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 팻말.
 

어쩌면 이 문구는 광장에 모인 수많은 프랑스인들의 의지를 가장 잘 대변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왜? 이들에게 샤를리 엡도는 모든 권위에 대항하고 수많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인사들을 거침없이 조롱하면서 프랑스적인 유머를 구현하는, 라블레와 볼테르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풍자의 전통을, 모든 금기를 금지하는68 혁명의 정신을, 그리하여 프랑스의 문화를 상징하는 매체처럼 인식되어 왔으니까. 바로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 당국과 언론이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를 프랑스에 대한 테러로, 민주주의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으로 규정해도 이들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 것이리라. 그것이 설사 이 테러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 해도, 하여 망연자실한 프랑스 시민들을 연대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하라 키리에서 샤를리 엡도까지

주로 만평으로 유명한 샤를리 엡도는 르 꺄나르 앙셰네와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풍자 주간지이다. 반종교적이며 반인종차별주의적 매체로 알려져 있으며 광고 없이 독자의 구독료에 기대는 모델을 고수하고 있다.

샤를리 엡도의 모태는 1960년에 발간된 월간지 ‘하라 키리(Hara Kiri)’이다. ‘바보 같고 심술궂은 잡지’를 표방하며 거침없는 풍자로 인기를 얻었던 하라 키리는 처음부터 수많은 검열에 부딪치게 된다. 당시의 금기들을 신랄한 조롱과 유머를 통해 무너뜨리려 했던 시도는 60년대에 여러 번 발행 금지 조치로 이어지고, 70년에는 드골의 죽음에 대해 대한 풍자로 인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국가 원수에 대한 조롱은 심각한 도발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폐간 조치된 하라 키리는 장 폴 사르트르와 당시 르몽드의 편집장이었던 쟈크 포베의 지원 속에서 ‘샤를리 엡도’로 이름을 변경해 다시 문을 열었다. 70년대 초반, 한 주에 십오만 부까지 팔리는 예외적인 주간지로 승승장구했던 샤를리 엡도는 그러나 1981년 사회당 미테랑 정부가 들어섰을 때 독자감소로 인한 부채에 허덕이다 결국 또 다시 폐간된다.

   
Incendie des locaux de Charlie Hebdo (62 boulevard Davout, Paris) le mercredi 2 novembre 2011. Luz répond aux journalistes devant les débris de l'incendie. / CC-BY-SA-3.0
 

이슬람과의 악연

1992년 프랑스의 유명 가수인 르노(Renaud)와 옛 멤버들이 뭉쳐 다시 문을 연 샤를리 엡도는 견고한 독자층을 만들어내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당신 이 주간지는 주간 평균 십사만 부 가량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모든 종교를 조롱거리로 삼아왔던 샤를리 엡도가 유독 이슬람과 악연을 맺게 된 것은 2006년 덴마크의 일간지인 ‘율란츠 포스텐’이 게재한 무함마드 만평을 전재한 이후부터다. 무슬림들의 비난이 거셌지만 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2011년에 ‘샤리아(이슬람 율법) 엡도’라는 특별판을 발행하며 또다시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실은 것이다. 당시 ‘아랍의 봄’을 맞아 독재정권을 몰아낸 튀니지에서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이 집권하자 이를 조롱하기 위한 만평이었다. 이 특별호의 표지에 무함마드의 모습과 함께 ‘죽을 만큼 웃기지 않으면 채찍질 100대’라는 말풍선을 단 만평에 무슬림들은 또 다시 격분했고 화염병으로 사무실을 공격을 하는 등 테러 위험은 계속돼왔지만 샤를리 엡도는 굴하지 않았다. 스테판 사르보니에는 “무함마드를 그릴 수 없다면 그 어떤 누구도 그릴 수 없게 된다” 면서 종교와 정치인에 대한 풍자를 계속했다.

   
과도한 풍자와 조롱으로 숱한 논란을 낳았던 프랑스의 만평 잡지 샤를리 엡도.
 

샤를리 엡도는 이슬람뿐 아니라 극우주의, 기독교, 유대교, 사이비종교, 정치, 문화 등에 성역을 두지 않고 신랄한 조롱을 해왔다. 무함마드를 비롯, 예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히틀러,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마이클 잭슨,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명인사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이들은 이로 인해 각종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르몽드에 의하면 샤를리 엡도와 관련된 소송은 지난 22년간 50여건에 달한다. 특히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으로 이슬람 단체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제소된 사건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이 무함마드를 풍자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이슬람이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수한 소송과 테러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샤를리 엡도는 프랑스 언론에서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매체로 자리하게 된다.

비종교성의 원칙으로 인해 종교 비판의 자유가 허락되는 사회이기는 하지만 샤를리 엡도의 도발적인 풍자는 프랑스 내에서도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탄을 받은 바 있다. 2012년 샤를리 엡도가 무함마드가 엉덩이를 노출한 채 "내 엉덩이가 마음에 들어요?"라고 묻는 만평을 개제했을 때 이슬람계가 격노하자, 당시 총리였던 장 마크 애로는 “도를 넘는 행위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테러의 진짜 희생양은 무슬림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의 무슬림들은 샤를리 엡도 테러를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있다. SNS에는 무슬림들의 분노 어린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이번 테러는 명백히 이슬람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며, 결국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심어줬다는 것이다. 무슬림 지도자들 역시 죄 없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죽이는 행위는 모든 인류를 죽이는 것이라는 쿠란의 구절을 인용하며 이번 테러를 맹렬히 비난했다.

파리 북부 외곽에 위치한 센 생드니(Seine-Saint Denis) 드랑시 사원의 이맘(최고 지도자)인 하센 샬구미는 BFM TV와의 인터뷰를 통해 테러범들의 만행은 이슬람과는 아무 상관없는 야만적인 행위였다며 “그림이 맘에 들지 않으면 그림을 통해 공격하면 된다. 그러나 피에 의한 복수는 만행일 뿐이다.”라고 규탄했다. 그는 “이 테러에 대항해 모든 프랑스인들이 뭉칠 것”이라며 모든 무슬림들이 테러 규탄 집회에 함께 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노와 함께 프랑스의 많은 무슬림들은 또한 이번 테러로 자신들이 보복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고 있다.

‘테러의 진짜 희생자는 무슬림’이라 주장하는 내용의 기사들이 나오고 있고, 이번 사태로 무슬림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으로 치닫는 것을 경고하는 메시지들도 등장하고 있다. 미테랑 시절 법무장관을 지냈던 로베르 바댕테르(Robert Badinter)는 7일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테러리스트들의 정치적인 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순간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는 것은 결국 종교적 이상을 광신적인 행동으로 배반하는 것이라면서 이들이 원하는 것은 분노와 울분이 온 국가를 뒤덮어 프랑스의 모든 무슬림에 대한 적개심과 거부감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무슬림과 다른 시민들 사이에 간극을 만들고, 프랑스인들 사이에 증오를 키우고 커뮤니티들 사이에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살해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다.   

68혁명의 주동자였고 샤를리 앱도의 전설적인 만평가인 볼랑스키와 캬부, 오노레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다니엘 콘 벤디트는 이슬람을 모두 하나로 묶어서 바라보지 말 것을 주장한다. 그는 이슬람-파시즘과 이슬람을 구별할 것을 제안한다. 이슬람-파시즘은 이슬람이 아닌 파시즘의 형태에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서구 문명의 파시즘이 존재하듯 이슬람 문명에서 온 파시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번 테러로 모든 권위와 종교에 대한 과격한 비판의 자유가 공격 받았고, 캐리커처 세대, 즉 68혁명의 정신을 잇는 마지막 형식을 구현한 세대가 살해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테러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무슬림 공동체와 프랑스의 다른 공동체들이 프랑스인이라는 이름으로 뭉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곳곳에서 무슬림을 공격하는 행위들이 이어지고 있다. 샤를리 엡도 테러 공격이 일어난 몇 시간 뒤에 르망(Le Mans)의 이슬람 모스케에 누군가 수류탄을 던진 사건이 발생했고, 푸아티에(Poitiers)에서는 한 남성이 모스케 정문에 ‘아랍인들 죽어라’라고 낙서하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고, 리에방(Liévin)에서는 누군가 건축 중인 모스케에 이슬람 반대 슬로건과 돼지머리를 낙서해놓기도 했다. 앞으로 테러 위협이 지속된다면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이미 차별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소외될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다음날 파리 남부에서 일어났던 여성 경찰관 살해사건의 용의자 역시 테러 용의자인 쿠아치 형제와 함께 2000년대 중반 ‘뷔트 쇼몽(Butte Chaumont) 네트워크’라는 테러조직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9일 파리 근교의 한 유태인 식료품점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사살 당했다. 공영 라디오 프랑스 퀼튀르는 이들처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IS(이슬람 국가)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로 떠난 무슬림 젊은이들이 수백 명이라고 전했다.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샤를리 엡도 테러는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제 프랑스는 왜 프랑스에서 자란 평범한 무슬림 청년들이 그토록 극악무도한 테러범으로 돌변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차별과 적대적인 시선으로 인해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프랑스가 아닌 그 부모 세대의 모국을 마치 자신의 모국인 양 여기며 살아가는 수많은 무슬림 젊은이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재의 삶을 부정하고, 영웅으로 죽고 싶은 이들의 열망을 지금처럼 내버려 둔다면 테러는 또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샤를리 엡도 특별판 백만 부 발행 예정

한편, 무장한 테러범들은 총기난사 후 ‘우리가 샤를리 엡도를 죽였다’라고 외쳤지만, 샤를리 엡도는 지속적으로 발행될 예정이다. 오는 14일, 샤를리 엡도는 기존 16페이지에서 8페이지로 줄인 특별호를 100만 부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상 발행 부수는 5만부 가량이었다. 플뢰르 펠르랭 문화부장관은 샤를리 엡도가 생존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르몽드와 프랑스 텔레비지옹, 라디오 프랑스 등 프랑스 언론들도 특별호 발행을 위한 지원에 발벗고 나셨다. 리베라시옹은 샤를리 엡도를 위해 작업실을 마련해줄 것을 약속했다. 또한 프랑스 신문사들과의 저작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2년 전 구글이 조성한 펀드에서 약 25만 유로(약 3억 3천만원)가 지원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 나도 샤를리다 »라고 외친 수많은 시민들 역시 정기적인 구독과 지원을 약속하면서 샤를리 엡도가 지속적으로 발행되도록 함께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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