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천만관객을 동원한 <해운대> 윤제균 감독의 5년 만의 복귀작이기도 하지만, 1950년부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부모님’들의 얘기를 다룬 영화인만큼, 연말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관객들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개봉 2주 정도 지났는데, 벌써 450만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화제가 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 박근혜 대통령이 이 영화를 언급했고, 두 번째 영화평론가 허지웅씨의 영화평을 둘러싼 이념 논란이 촉발됐기 때문입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논란의 발언부터 살펴볼까요?

“애국가에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이런 가사가 있지 않나?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국제시장)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다.”

애국심을 강조한 말입니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를 사랑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 바라기 보다, 내가 지금 국가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먼저 고민하라”고 연설한 바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 두 발언이 유사해보입니다.

   
▲ 29일 청와대 핵심 국정과제(브랜드과제) 점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그는 이 자리에서 <국제시장>을 언급하며, '애국심'을 강조했다. 사진=청와대
 

그러나 케네디의 명언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국가는 시민의 하인이지 주인이 아니다”, “자유가 가난한 다수를 도울 수 없다면 부유한 소수도 구원할 수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자유주의자인 그는 시민들이 주체의식을 갖고 자유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달라 말해왔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주장한 박 대통령의 국가관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큽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없는 복지’를 약속하고도 결국 ‘복지없는 증세’가 돼버렸고,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리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라는 인식과 똑같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충성심’만 강조하고 있으니,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SNS에서도 ‘어이없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영화의 그 장면은 전체주의 시대의 편린을 그린 듯 한데 이를 애국심으로 해석하는 그녀에게서 아이히만의 살상용 무지를 읽게 된다”는 식의 반응입니다. “정신세계가 아직 유신독재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쏟아집니다. “‘짐이 곧 국가다’란 망상에 빠진 소리를 듣고 영화 볼 마음 싹 사라짐”이란 비판도 나옵니다.

“각하께 황송하오나 그거 나치 논리입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국민을 사랑하기 위해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틈만 나면 국민 겁박 일삼는 박근혜의 정신세계가 역하고 또 역하다”, “오체투지로 그 고생하고도 경찰들에게 박대당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언급 한 마디를 안 하면서 <국제시장>에 얹혀 가려는 저열함”, “정서적으로 교감하기에 변호인이 더 나을 겁니다. 물론 ‘고문하는 애국자’쪽이죠” 등의 원색적인 비난도 나옵니다.

허지웅씨 발언은 무엇일까요? 지난 25일 한겨레 대담에서 허 씨는 <국제시장>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어른 세대가 공동의 반성이 없는 게 영화 <명량> 수준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근데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에요. 정신승리하는 사회라는게”라고 말했습니다.

허지웅씨의 기준에서 본 <국제시장>에 대한 짧은 영화평입니다. 대략 <국제시장>이 체제 선전도구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TV조선이 허지웅씨에 대한 공세에 나섰습니다. 허 씨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며, 그가 <국제시장>을 “토 나오는 영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난독증’입니다.

   
▲ TV조선 화면 갈무리.
 

TV조선은 허 씨를 ‘좌파 평론가’라고 했습니다. <국제시장>을 이용해 이념공세를 펼치는 것이죠, 바로 이런 점에 대해 허 씨는 “토 나온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트위터에 “저에 관한 참담한 수준의 글을 반복해 게시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언제나 있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 같아 참았는데 최근 일베와 조선닷컴을 통해 많이 전파되었더라고요. 원저자와 전파자들 모두 자료취합이 완료되어 법적절차에 들어갔음을 알립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트위터에는 일부 이용자들이 허 씨에 대한 공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울 출생인 그에게 전라도 출신이라고 하거나, “니가 배고픔을 아냐”는 식의 주장입니다. “우리네 부모님을 폄하했다”와 같은 이상한 논리 귀결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TV조선이 앞뒤 다 자르고 ‘좌파 허지웅이 국제시장을 토 나오는 영화라고 평했다’로 단순화 시킨 다음 ‘우리 아버지들더러 토 나온다고 했다’로 변질, 왜곡시킨 후에 그걸 스스로 믿어버림으로서 심각한 허언공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 지적한 분도 계십니다.

어쨌든 <국제시장>이란 영화 한 편을 놓고 체제의 선전물로 이용하려 한다는 허씨의 진단은 맞아 떨어진 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증명했지요. TV조선은 이 영화를 놓고 이념 논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정권의 전위언론 임을 자임한 셈이죠. 영화를 보면서 부모세대가 힘든 삶을 살아왔구나, 교훈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니 개기지 마’라고 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대통령이 국정에 책임지지 않고 애국심만 강조하는 현 상황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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