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되어 교육감의 대부분을 차지한지 한 학기가 지났다. 학기가 끝났으니 성적표가 나올 차례다. 그런데 공교롭게 인구 절반을 차지하는 서울과 경기 교육감이 모두 성공회대 교수 출신의 조희연과 이재정이라 비교대상이 된다. 이 두 교육감의 첫 학기 성적은 모두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 두 사람 모두 유감스럽게도 민주적 소통을 내걸고 당선되었지만 독단적이고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조희연 교육감 쪽의 점수가 좀 더 심각하다. 이재정 교육감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인 대표적 사례들인 9시 등교제와 교장, 교감의 수업 권장, 혁신공감학교의 대대적인 확대 등은 추진 방식이 문제지, 어쨌든 교육계에 필요한 신선한 문제제기였기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9시 등교제는 하교시간을 지나치게 늦추지 않게 하는 운용의 묘를 찾으면 되고, 교장, 교감의 수업은 이를 통해 교장, 교감의 업무가 교육자인지 행정가인지 명확히 하는 토론의 계기를 삼으면 되며, 혁신공감학교의 확대는 양적 확대 욕심을 버리고 혁신의 내용을 충실히 다져가면 될 일이다. 그러나 조희연 교육감의 경우는 다르다. 거의 낙제에 가깝다. 운용의 묘,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방향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다. 아니, 방향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희연 교육감이 진보교육감으로서 당선되었을때 서울의 뜻있는 교사들은 희망에 부풀었었다. 김상곤 교육감 체제가 오래 계속되었던 경기도와 달리 서울은 문용린 교육감의 노골적인 곽노현 지우기로 인해 기껏 물꼬를 튼 교육개혁이 하나하나 무위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의 뜻있는 교사들은 조희연 교육감이 탄압 속에 힘겹게 버텨왔던 혁신학교에 힘을 몰아주고, 유야무야된 교원업무 정상화를 재추진하고. 사그라든 문예체 교육의 꽃을 다시 피우고, 사문화되다시피 한 학생인권조레의 실효성을 확보해 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이 네가지에 집중적으로 매달리면 '곽노현 시즌 2' 처럼 보일수도 있어서 자존심이 다소 상할수도 있다. 하지만 저 네가지 목표는 곽노현 전 교육감만의 생각이 아니라 그가 서울의 뜻있는 교사들과 끊임없이 치고받으며 도달한 합의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존중받아야 할 것들이다.

그런데 조희연 교육감이 대뜸 전면에 들고 나온 것은 자사고 폐지와 일반고 살리기, 그리고 입시 철폐, 대학서열화 반대 등등이었다. 곽노현과의 차별점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급진적 교육시민운동 단체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제는 이 중 입시나 대학서열화 문제는 교육감 소관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자사고 폐지와 일반고 살리기다.  

하지만 이 두 문제는 서울교육 전체를 대표할만한 큰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일부 자사고가 파행적으로 운영된 것은 사실이다. 또 학부모들이 일반고에 자녀를 진학시키기를 꺼려하는 현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고등학생은 서울시내 학생들 중 일부에 불과하며, 또 일반고, 자사고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학부모들은 대체로 중산층 이상의 학부모들이다.

게다가 자사고 문제와 일반고 문제는 서로 층위가 다르다. 자사고 문제는  일부 자사고들이 '자율'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재단이 부실하고, 자율적 운영을 통한 교육과정의 다양화 대신 획일적이고 타율적인 입시교육에 매몰되어 비롯된 것이다. 즉 상당수 자사고들은 '자사고로서 부실'했기 때문에 지정 취소되어야 하는 것이지,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이기 때문에 퇴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반고의 수업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초등학교 수준도 안되는 학생들까지 고등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사실상 고교입시가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이지, 자사고로 우수한 학생이 다 빠져나가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다. 특목고 자사고 정원을 다 합쳐 봐야 전체 고등학교의 10%도 되지 않는다.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해졌다는 주장은 그 동안 고등학교가 상위 10% 학생들만 바라보고  하위권 학생들을 소외시키는 교육을 해왔음을 자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일반고 문제의 해법은 일반고가 과거 인문고가 아니라 거의 모든 수준의 학생이 골고루 다니는 문자 그대로 일반적인 학교라는 바뀐 현실에 맞게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조 교육감은 '일반고 영향평가'라는 기상천외한 기준을 들고 나와 일반고 전성시대를 위해 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명분도 없고 법규에도 맞지 않다. 그 결과는 자사고들 및 자사고 학부모들과의 치킨게임이었고, 중학교 3학년 학생, 학부모 역시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그 결과는 자사고를 지정 취소하지도 못하고, 지정취소가 예정된 몇몇 자사고조차 신입생 선발을 거뜬히 해 내는 등 굴욕적인 패배였다. 

조희연 교육감의 또다른 패배는 혁신학교 미달사태다. 자사고 싸움에서 참패한 조희연 교육감은 혁신학교로 갑작스레 혁신학교 공모로  방향을 선회했다. 하지만 혁신학교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설사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연구시범학교로 전락한다. 혁신학교는 먼저 혁신을 꿈꾸는 교사들의 모임이 활성화되고, 그들이 다른 교사들을 충분히 설득한 다음에 공모하는 것이 순리다. 즉 이 혁신을 꿈꾸는 교사들의 모임을 공들여 육성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어야 이들이 다른 교사를 설득하여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 공모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에 공문 날리고, 강당에서 설명회 하고 나서 지원서 받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혁신학교 공모 미달은 이미 예견된 참사였다. 

그러자 다시 일반고 전성시대 화두가 되살아났다. 자사고 때려서 일반고 살리겠다던 교육감이 자사고한테 패하더니 엉뚱하게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화풀이를 할 기세다. 일반고 살리기를 위해 일반고에 혁신학교보다도 더 많은 예산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누리과정 때문에 부족한 예산인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혁신학교 예산이 절반으로 줄었고, 서울시내 모든 초, 중학교 예산을 30% 가까이 감축하겠다고 한다. 스스로 나서서 열심히 해보겠다는 혁신학교, 갈수록 열악해지는 초등학교, 중학교 예산을 줄여 돈 달라고도 하지 않는 특별히 뭔가 해 보겠다고 나서지도 않는 일반고에 일률적으로 예산지원을 하겠다는 발상을 보수라고 해야 할지 진보라고 해야 할지 알수 없다. 초등학고 중학교 학생들을 전기요금이 없어 여름에는 찜통, 겨울에는 냉동고 속에 방치하고서 계획도 의욕도 없는 일반고에 예산을 보태주겠다는 발상에 무슨 가치와 이념이 있을수 있겠는가? 이건 그냥 경우가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유치원 대란까지 일어나 선거에서 조희연 교육감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30대 학부모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일반고에만 매달리다 매우 섬세하게 관리해야 하는 교육행정의 맥을 놓쳐버린 결과다.

물론 선출직 공무원이 임기 첫해에 다소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임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장 정치력이 강한 임기 첫해에 되도록 많은 업적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그렇게 서두른 정책이 방향이 올바르고 문제제기가 정당하다면 교육주체들의 충분한 공감을 끌어올린 뒤 속도를 조절하여 조금 천천히 시행하면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못 설정된 방향으로 성급하고 독단적인 정책을 추진했다면 그 실패는 다만 매몰비용에 불과하다. 매몰비용은 빨리 포기할수록 좋다. 자존심이나 고집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면 후유증만 커진다. 특히 민감하고 복잡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는 더욱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조희연 교육감은 자신이 고교육감이 아니라 교육감임을, 그리고 그가 관할하는 학생들의 대다수는 일반고 학생이 아니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임을 되새기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먼저 교육감이 되고, 진보는 그 다음의 일이다. 과락을 먼저 면하고 난 다음에 고득점을 노리는 것이 순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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