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기자들이 세월호 천막이 있는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쟤들 우리 찍으러 온 거 아니야. 사랑의 열매 찍으러 온거야.” 기자들을 쳐다보며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말했다. 광화문의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눈금이 50도에 다다르고 있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경기 침체와 세월호 참사 등의 여파로 지난해와 비교해 5도 정도 낮다고 설명했다. 

농성을 시작한 지 5개월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던 천막은 많이 줄었다. 유민아빠가 단식을 이어갈 때만 해도 광장은 동조단식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남은 천막에는 몇몇 이들만 남아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세월호국민대책회의는 일단 연말까지는 농성장을 유지할 계획이지만 새로운 공간도 고민하고 있다. 찾는 사람이 줄어든 만큼 농성장을 정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전만큼 광화문 농성장을 ‘일부러’ 찾지는 않는다. 안선영(25)씨는 경복궁에 왔다가 “아직 세월호 농성장이 있나 싶어” 광화문을 찾았다. 안씨는 “단원고 학생 자살시도 이야기를 듣고 혼자 울었다”며 “추운 날씨에 광화문 농성장을 지키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포에 사는 17살 김아무개씨는 “엄마가 세월호 때문에 매일 울어서” 지나던 길에 서명을 했다.

그래도 이 발걸음이 가족들에게는 위안이다. ‘광화문 지킴이’로 통하는 민우아빠 이종철씨는 여름부터 시작된 노숙 생활에 허리, 무릎 등 성한 곳이 없어도 광화문을 떠나지 못한다. “어찌된 게 아픔의 강도가 갈수록 세져요. 혼자 운전하다 핸들을 꺾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에요. 그래도 광화문에 오면 좀 낫지.” 그는 눈에 띄게 많이 생긴 흰머리 때문에 얼마 전 염색을 했다. 

   
▲ 24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사진=이하늬 기자
 
   
▲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24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찾은 시민을 만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유민아빠가 광화문을 찾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는 광화문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특히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진 이후에는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일베 글 퍼나르던 사람이 새누리당 추천으로 조사위원이 됐어요. 이건 진상규명을 안 하겠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언론이 이걸 보도하나요? 우리가 시민들에게 직접 알리는 수밖에 없어요. 광화문이 없어지면 어떻게 알리나요?” ‘알리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그는 복직도 망설이고 있다. . 

그래서 광화문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준비했다. 유민아빠가 단식을 하던 천막 앞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됐다. 트리 한 가운데 ‘merry christmas’ 장식 옆으로 ‘크리스마스에도 함께해요’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글자가 쓰인 노란 리본 장식들이 달렸다. 크리스마스에도 사람들이 농성장을 찾기를 바라면서 트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한 시민이 노란 리본을 묶은 선물 상자를 트리 밑에 내려놓았다. 

이날 저녁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천주교 남자수도회 등의 주최로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한 위로의 미사가 열렸다. 오는 31일에도 시민들이 광화문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듀 14 광화문 잊지않을게’ 문화제가 열린다. 로큰롤라디오, 3호선버터플라이, 조관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등 20개에 가까운 뮤지션들의 공연도 예정돼 있다. 영석아빠는 “그날만큼은 광화문이 꽉 찼으면 좋겠다”며 홍보를 신신당부 했다. 

유민아빠는 광화문의 밤이 싫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광화문의 밤을 본 다음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나는 사람이 그립다/ 나 어릴적 어머니 품이 그리웠고/ 나 아비되어 돈이 그럽더니/ 나 홀로되어 유민이 유나 품이 그러웠다/ 나 유민이 하늘로 시집 보내고 사람이 그립다/ 무더운 광화문 끝없던 발길들은 다 어디로 돌아가고/ 이렇게 하이얀 그리움만 쌓였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나는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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