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의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통진당 해산에 적극 반대하는 인사들의 과거 의견을 발췌해 해산 찬성 근거로 끌어다 쓰는 등 해산 찬성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근거를 만들려다보니 모순된 내용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모습이다. 

해산 찬성 8인의 재판관은 인용 결정문에서 북한대남혁명전략과 유사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을 도입하려 했다며 '자주파 계열 인물'들의 주장을 상세히 소개하는데 많은 양을 할애했다.

자주파 계열, 통합진보당 주도 세력은 누구일까

특히 한국진보운동연구소 박경순 소장이 토론회에서 발표한 '한국사회의 성격과 6·15 시대 변혁운동의 방향'이라는 글을 인용해 "한국변혁운동은 민족해방 민주주의 변혁으로서 당면변혁의 전취목표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연방제 방식의 통일정부수립이다. 민족해방 변혁운동을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도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계급해방 과제를 동시적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이 북한식 사회주의에 목표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이수 재판관은 박경순 소장이 쓴 같은 글을 두고 "박경순의 말을 곧 민주노동당의 견해와 같이 평가할 수는 없다", "박경순은 이 사건에서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 변화에 관하여, ‘식민지라고 규정하는 것은 주권이 없다는 것이고, 한국이 식민지 사회라면 한국의 헌정체제가 무의미하다는 것인데, 그러한 헌정체제 내에서 합법적으로 집권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판단했고, 식민지 규정은 이미 시대의 낡은 규정이 되었다고 판단하였다’는 취지로 증언하였다" 고 주장했다.

박경순 저자 스스로 한국 사회의 성격을 '낡은 규정'이라고 했는데 과거의 저술을 기초로 해서 통진당의 현실 인식과 동일선상에 놓은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8인의 재판관은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 도입 당시 강령개정위원장을 맡았던 최규엽씨의 발언과 책자도 상세히 소개하면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대남전략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최씨는 인용문에서 자주파 계열 인물에는 쏙 빠졌다.  

8인 재판관은 "이용대, 김영욱, 이상규(이상 경기동부연합), 박경순, 김창현, 이의엽, 민병렬, 정대연(이상 부산울산연합), 오병윤, 장원섭(이상 광주전남연합), 최기영, 이정훈(이상 일심회 사건 관련자), 김승교, 최한욱, 류옥진(이상 실천연대 구성원) 등"을 자주파 계열의 인물로 꼽고 진보적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하거나 지지했다고 소개했지만 최규엽씨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최씨는 민주노동당 창당 멤버로 정책위원장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장, 강령개정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지난 4월 돌연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한 바 있다. 

현재 새정민주연합으로 입당한 정당인을 통진당의 자주파 계열의 인물로 포함시키는 자체로 모순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발언과 책 내용만 유리한 쪽으로 인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규엽씨는 지난 2월 법무부가 자신의 발언과 책 내용을 인용하면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에 대해 비판하자 "진보정당이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쓴 것"이라며 '진보적 민주주의=북한식 인민민주주의'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8인의 재판관의 주요 논리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통진당의 주도세력이 이 같은 이념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진당이 해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 통진당 주도세력은 아니다?

하지만 통진당의 ‘주도세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보니 과거 '주도세력'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해산에 찬성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모습도 보인다. 

진중권 교수(동양대)가 대표적이다. 진 교수는 지난 19일 통진당 해산 선고가 내려지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통진당 해산은 법리적으로 무리, 근데 시대가 미쳐 버린지라"라고 썼고, 지난 17일에도 "통합진보당을 좋아하지 않지만 통합진보당의 해산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진 교수는 헌재 결정문의 해산 찬성 근거로 활용됐다.

8인 재판관은 “자주파는 책임은 지지 않고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고 공부와 학습도 하지 않는 종북주체일 뿐이다.”(홍세화), “당내 자주파의 종북주의에 근거한 패권주의가 당을 망쳐온 제일 큰 원인이다.”(김종철), “자주파는 북조선노동당의 지도를 받아 움직이는 일종의 통일전선체이다.”(진중권), “NL노선의 알파요 오메가는 바로 북한이다.”(김하영)”등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발언들이야말로 바로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성향과 실체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이수 재판관은 "'대선패배가 종북주의 때문이라는 과도한 단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심상정의 발언이나, ‘당내에 일부 종북적 언행을 한 인사들이 있었으나, 민주노동당은 종북 노선을 취한 적이 없고, 분당과정에서 가장 문제된 것은 패권주의’라는 취지의 증인 노회찬의 증언" 등을 소개하며 "분당 당시 제기된 자주파의 종북 성향의 지적은 실체에 비하면 다소 강하게 또는 과도하게 표현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8인 재판관은 또한 이정희 통진당 대표에 대해 '자주파 계열' 혹은 '피청구인 주도세력'으로 규정하지 못했다. 이석기, 이상규 김미희 의원에 대해 경기동부연합 출신, 김재연 의원은 내란 관련 회합 등에 참석한 인물, 오병윤 의원과 김선동 전 의원에 대해서는 경기동부연합과 동일한 입장을 취한 광주전남연합 출신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정희 대표에 대해서는 "2차 분당 이후 2013. 2. 치러진 선거에서는 약90%의 압도적 지지로 당대표에 선출되었으며, 당대표 선출 후 이정희는 정책위원회의장과 사무총장에 각기 경기동부연합의 이상규와 안동섭을 임명하였으며, 내란관련 사건 등 당내 주요 사안에서 경기동부연합과 입장을 같이하였다"고 했을 뿐 피청구인의 주도세력인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19일 헌법재판소의 해산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이수 재판관이 "주도세력의 개별 구성원이나 그 외연(外延)이 확정되어 있지 않다. 주도세력의 현재의 이념적 성향 내지는 지향점을 가리려면, 현재의 이들의 활동이나 발언이 판단의 주된 근거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행적이나 전과는 현재의 활동과 발언의 의미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부수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통진당의 주도세력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8인의 재판관이 추론에 근거해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 도입 취지에 대해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적 변혁을 내세운다면 대중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세력과의 치열한 투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할 것이며, 그럴 경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없게 되므로 탈자본주의적 변혁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로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를 위한 과도기 정부로서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설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통진당 측이 8인 재판관의 결정 인용문을 공상소설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이유도 추론에 추론을 거듭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진당이 나치당 될 수 있다는 주장의 합리성은?

8인의 재판관이 통진당을 나치당에 비유한 것도 미래의 실현되지 않은 가정을 끌어다 위험성을 과대 포장했다는 지적도 있다. 8인 재판관은 “나치당은 1928년 5월 선거에서 2.6%의 득표에 그쳐 고작 12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불과 2년 후인 1930년 9월 선거에서 18%를 득표했고, 107석의 의석을 가져갔으며 다시 2년이 지난 1932년 7월에 있었던 선거에서 나치당은 전체 투표자 중 37.2%의 지지를 얻었고 230석의 의석을 획득함으로써 제1당으로 부상했다”며 “비록 이를 흔한 일로 볼 수는 없을지라도, 현실정치의 역동적인 성격에 비추어 볼 때 향후에 결코 다시 발생하지 않을 일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반면 김이수 재판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당수로 있었던 자유당의 기본강령 중 "우리는 독점경제 패자(覇者)들의 억압과 착취를 물리치고 노동자, 농민, 소시민, 양심적 기업가 및 기술있는 자의 권익을 도모하며 빈부 등차(等差)의 원인과 그 습성을 거부하고 호조(好助) 호제(好濟)의 주의로써 국민생활의 안전과 향상을 기함"이라고 규정한 대목을 들어 통진당의 민중주권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재판관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 사례 등을 과거 여러 신문의 칼럼이나 기사를 통해 밝히면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이미 확립된 정치이념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재판관은 특히 통진당이 북한을 추종하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우리 사회를 지배한 반공 이념의 편향성을 비판하면서 통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려는 노력이 북한에 대한 동조의 혐의를 받고 하였던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북한에 대한 경계라는 명분의 이면에 진보적 이념 일반에 대한 사상적 탄핵을 시도하는 의도가 개입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려운 까닭"이라고 밝혔다.

통진당 해산이 곧 북한과의 통일을 얘기하거나 반북적인 정책 내용을 비판하기라도 한다면 색깔론으로 매도할 수 있는 '무기'를 쥐어준 꼴이라는 지적이다. 

8인의 재판관은 "이 결정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이 우리의 정치영역에서 배제됨으로써, 그러한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이 이 땅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밝혔지만, 김이수 재판관은 "우리사회의 균형을 위한 합리적 진보의 흐름까지 위축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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