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져있던 장막이 조금 걷히면서 퍼즐이 맞춰집니다. ‘만만회’라는 풍문으로 떠돌던 소문은 ‘십상시’라는 표현이 적힌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통해 사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일보는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씨가 이 정권의 막후 실력자라는 내용의 감찰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세계일보 보도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 입문당시 보좌진을 형성했던 정윤회씨와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직후에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국정운영에 개입해왔습니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윤회씨, 그는 어떤 공직도 수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윤회라는 민간인에게 3명의 청와대 비서관이 청와대 동향을 보고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운동기구도 ‘기밀’에 속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주장인데, 정작 업무비밀을 이 민간인에게 유출한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포착한 것도 이 문제였습니다.

세계일보가 공개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보고서에 따르면 “정씨는 자신의 비선라인을 통해 청와대·정부 동향을 보고받고 지시를 내리는 등 사실상 ‘숨은 실세’ 역할을 했”습니다. 심지어 김기춘 비서실장을 끌어내리려 했었는데, 속칭 ‘찌라시’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정씨는 지난해 말 송년 모임에서 “(김 실장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는 발언을 한 것도 기록돼있다고 합니다. 검찰 인사까지 개입했다는 정황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올해 3월 정윤회씨가 박근혜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를 미행했다는 시사저널 보도입니다. 박지만 회장이 오토바이가 따라붙어 붙잡아보니 정윤회씨의 지시였다는 증언을 확보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때부터 ‘만만회’ 얘기가 나왔는데, 세계일보 보도를 종합하면 현재 청와대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암투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지난달 9월 15일 방송된 YTN 뉴스 사진
 

정확히는 ‘만만회’보다 ‘만회’가 적합해보입니다. 이재만 비서관이 십상시 중 하나였다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은 정윤회씨와 박지만씨이기 때문입니다. 시사저널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윤회씨가 박지만씨를 미행한 정황도 이해가 되죠, 김기춘 비서실장은 일종의 ‘조정자’ 역할을 수행한 듯 합니다. 하지만 그 역할에 실패해 양 측 모두에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정윤회씨가 박지만씨를 누르고 현 정권의 실세로 자리 잡은 것 아닐까, 세계일보 보도에는 그러한 정황이 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 관련 찌라시가 나오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정윤회씨를 감찰한 셈인데, 결국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은 사표를 내야 했습니다. 조 비서관은 세간에 ‘박지만 라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찰보고서가 비공개이라곤 하나, 후한 말 한나라 멸망을 앞당긴 희대의 간신무리 ‘십상시’로 이들을 비유한 것도 당시 감찰라인이 이들에 가지고 있는 적개심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딘가 조선시대 궁중암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SNS의 반응은 어떨까요? ‘역시나’란 반응이 많습니다. “거봐, 개입하고 있었잖아”, “국정농단이 드러났네요”, “부패한 권력”, “나라를 동생과 정윤회에게 맡긴 건가”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위트로 받아치는 네티즌들도 눈에 띕니다. “드디어 정윤회란 사람의 컬러사진이 올라왔네요”, “십상시, 입에 딱딱 붙네”와 같은 반응입니다. 이례적인 청와대의 발빠른 해명과 대응도 곱지 않은 시선이 보내집니다. “왜 정윤회 얘기만 나오면 저렇게 팔짝 뛰는거야”

진지하게, 박근혜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야 한다고 충고하는 트위터 이용자도 있습니다. “정윤회 의혹들 때문에 박 대통령에게 레임덕현상이 나타난 것 같네요. 조기에 정윤회 의혹을 풀어줘야 혁신이 이루어질 것 같아요, 청와대의 이해안가는 답변과 비선라인 때문에 전체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집니다”

그나저나 이 문건에 대해 청와대는 “청와대 문건은 맞지만 시중의 근거 없는 풍문을 모아 만든 ‘찌라시’”라고 해명했다 합니다.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찌라시도 만들었다는 소리인데요, 말도 안되는 해명입니다. 이런 해명을 생각해낸 청와대 관계자들의 능력이 상당히 떨어져 보입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감찰보고서가 존재하는데 그게 찌라시 내용이라고 하면 국민이 믿나”라고 지적했습니다.

한편으로, 세계일보에 대한 응원도 이어집니다. “세계일보가 독기를 단단히 품은 모양”, “오랜만에 단독다운 단독이 나왔다”는 것이죠. 그런데 세계일보는 왜 이런 거대한 특종을 ‘금요일’에 터트렸을까요? 언론계에서는 대형 특종은 월요일발이 더 효과적이란 소리가 있는데요, 혹시 또 다른 무엇인가를 쥐고 있는 것 아닌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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