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해고통지서를 받아야 합니까.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녜요. 3년 동안 이 임금 그대로 받으면서 일하겠습니다. 63세까지만 일하게 해주세요. (중략) 신현대 아파트가 다른 아파트에 비해 국회의원, 변호사가 많습니다. 높은 사람만 있어요. 그런데 노동자를 함부로 짓밟아서 되겠습니까. 너무한 거 아닙니까.”

경비노동자 김아무개(60)씨의 호소다. 김씨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서 8년 간 경비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나 지난 19일 갑자기 12월 31일부로 해고한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이 아파트는 지난 7일 분신으로 사망한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씨가 일하던 곳이다. 이씨는 지난 달 7일 입주민과의 언쟁 끝에 유서를 쓴 다음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씨의 죽음 이후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조명 받았으나 정작 이씨의 동료들은 해고 위기에 처했다. 서울일반노조가 공개한 통보장에 따르면 표면적인 이유는 ‘관리계약기간 만료’이다. 하지만 노조는 “아파트는 15년 동안 현재의 용역업체와 일을 해왔다”며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이씨의 분신 등이 아파트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업체 변경을 통보한 것 같다”고 밝혔다.

   
▲ 지난달 13일 정오께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경비노동자 분신사고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감시·단속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모두 지급하도록 한 최저임금법 시행도 해고 사유로 거론된다. 현재 경비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90%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최저임금의 100% 임금을 받게 된다. 따라서 아파트단지와 용역업체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비노동자 수를 줄인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5만여 명이 해고 통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지난 24일 오전 △기존 고령자 지원금 3년 연장 △경비·시설관리근로자 부당 해고, 근로조건 실태 집중점검 △직업건강 가이드라인 배포 △아파트 경비원들의 감정노동과 관련한 대책 등을 발표했다. 고령자 지원금은 지난 2012년 감시단속직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해고 우려가 확산되자 이를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고용노동부의 대책은 ‘땜방’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현재 편성된 예산으로는 해고가 예상되는 인원의 6%에게만 지원이 가능하며, 근로조건 실태 집중점검 등도 내년이 아닌 지금 당장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서울일반노조 등 시민사회단체는 25일 오후 ‘경비노동자 대량해고 대책마련 및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범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를 결성해 대책마련에 나섰다. 

이들은 “신현대아파트 외 전국 곳곳 아파트에서 경비 인원 감축 수순을 밟고 있다”며 “서울 노원구 A 아파트 경우 8월 1일부터 5개월짜리 계약서를, B 아파트는 내년 6월 말 계약만료인 경비노동자에게 올 12월에 만료되는 계약서를 내놨다”고 밝혔다. 이미 일부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 대신 CCTV를 늘리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이만수씨의 죽음과 경비노동자의 인력감축문제, 해고문제는 모두 연결돼 있다”며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이런 일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윤 변호사는 “정부는 최저임금법의 시행이 해고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대량해고를 막아야 한다”며 “연석회의는 정부와 고용노동부에게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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