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도 다가오는데 아주 놀라운 소식입니다. 정부가 기업들의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합니다. 비정규직들을 챙겨주면 기업이 힘들어지니 기업들이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심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초이노믹스’입니다.

몇몇 언론은 보도를 통해 정부 논리를 뒷받침 합니다. 한국경제는 한국의 고용유연성 순위가 하위권이라는 캐나다 보수 싱크탱크의 자료를 가져와 정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에는 정리해고라는 제도가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해고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 기자들은 무사할 것 같습니까?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사회안전망이 취약합니다.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약간의 고용보험이 전부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 수십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나온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 한국에서는 현실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비정규직 대책이 거창하기라도 하냐? 그것도 아닙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안전업무에 있어 비정규직 채용을 제한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때 경력을 인정받게 해주고, 기간제 노동자를 현행 2년에서 3년까지 쓸 수 있게 하는 정도가 고려된다고 합니다. 이게 비정규직 대책입니까?

비정규직 대책의 핵심은 특정 직군에 한해 비정규직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사정상 시간제 근로자로 일해야 하는 사람, 특정 업무군에 대해서만 ‘프리랜서’ 개념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정규직이랑 똑같은 일을 하면서 계약 연도에 따라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누는 것은 전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자본가가 경영위기를 자초하고 노동자에 책임을 물어 해고하면, 노동자는 뭉쳐 싸웁니다. 그리고 국가는 노동자들을 공격합니다. 지난 2009년 쌍용차 사태는 이 '패턴'을 잘 드러냅니다. 사진=이명익 시사IN 기자.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SNS에서는 국민들의 분노가 느껴집니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달라니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할 생각을 하네, 미친 기업의 나라”, “빨대 꽂아놓고 빨아먹을 만큼 다 빨아먹고 버리기 쉽게 만든다는 거네, 완전 현대판 노예되겠다”와 같은 비판이 나옵니다.

트위터도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전부 비정규직화하겠다는 얘기와 큰 차이 없네, 종신고용 의무화도 시원치 않은 판에 골고루 고용상태 불안하게 만든다니. 기업부담 말고 가계부담 좀 신경써라”, “대통령도 쉽게 바꿀 수 있는 법부터 만들어라”, “대체 그 발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이냐”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정규직, 비정규직에 상관없이 해고가 쉬운 사회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눈에 띕니다. “이미 다 완화됐는데, 뭘 더 완화할 게 남았나”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조삼모사’스럽다는 지적도 있네요 “비정규직 챙겨주면 기업 부담 생기니 정규직을 해고한다? 이게 뭐가 시작이고 뭐가 마무린지”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논란이 커지자 기획재정부는 늘 그랬듯이 꼬리를 내립니다. 기재부는 24일 오후 해명자료를 통해 “정규직 정리해고 요건 완화 검토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노동시장 개혁은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정규직 보호 합리화를 균형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계속 '간'을 보고 있는 것이지요.

양대노총은 격분했습니다. 한국노총은 “정권퇴진도 불사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노총은 “노사정 대격돌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경영에 실패해도 책임지지 않는 기업가, 그러면서 자기 돈 벌겠다고 노동자들을 내모는 기업가, 그리고 그들만 챙겨주는 정부. 대한민국 자본주의 시스템은 왜 이렇게 고립을 자초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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