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창간부터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전체 신문 지면을 해부한 책이 출간했다. 창간 94년을 맞는 두 신문의 지면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책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일보 대해부>(1~5권), <동아일보 대해부>(1~5권)를 집필한 공동저자인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문영희 동아투위 위원,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 소장(전 동아일보·문화일보 기자),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8층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책들은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이 외쳤던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을 맞아 지난해 6월부터 집필됐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1920년 창간된 이후 현대사에 두 매체가 끼친 긍정적인 영향도 있겟지만 민족이나 민중, 민주 차원에서 볼 때 대단히 부작용이 컸다”면서 “근데 정작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된 1920년부터 2014년까지 신문을 어떻게 제작했는지에 대해 지면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책은 한 번도 없었다”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 이후 일제에 의해 약 5년간 강제폐간된 일을 제외하고는 약 89년 간 신문을 제작해왔다.

이 책들은 △1920년 창간부터 1940년 강제폐간까지, 해방 이전까지 조선·동아 사주의 친일행각(1권) △1945년 11월 복간부터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전날까지(2권) △ 5월16일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0·26 사태까지(3권) △신군부 이후부터 김영삼 정권까지(4권) △김대중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을 거쳐 이명박 정권까지(5권) 등 이 시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와 사설을 인용하며 분석했다. 

   
▲ 최근 출간된 <자유언론 40년>, <조선일보 대해부>, <동아일보 대해부>. (사진=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이 책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지’라는 잘못된 사실부터 바로잡았다. 대표적인 예가 동아일보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 소식을 보도하면서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삭제하고 보도했다는 ‘일장기 말소 사건’이다. 

김종철 위원장은 “이미 동아일보 보도가 있기 18일 전, 몽양 여운형 선생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 기자들이 일장기를 떼고 보도했는데 조선총독부가 이를 모르고 지나쳤다가 동아일보 보도를 알고 난리가 난 것”이라며 “당시 사주 김성수가 무기 정간 처분을 명령한 조선총독부에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1975년 동아일보 기자들을 내쫓은 것처럼,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들을 모두 해직한 사실은 감추고 창간 기념일만 되면 민족지로서 최대한 공정했다고 주장하는 사기 행각을 이 책에서 분석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조선일보도 동아일보가 무기정간을 당한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이 소식을 1단으로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1987년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 ‘야당지’로서 활약했던 동아일보가 이후 보수언론으로 변신한 배경도 이 책이 전하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김광원 소장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민주의 선봉 역할을 했던 동아일보가 1987년 이후 어떤 노선으로 갈 것인가의 문제에서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다고 본다”면서 “민주화의 선봉에 있었다고 자부한 동아일보가 한겨레에 이 자리를 내주자니 고민이 되고, 그렇다고 보수색을 띄자니 이미 조선일보라는 거대신문이 있는 상황 속에서 보수의 길을 선택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잘못된 길이었고 신문 질과 수익 면에서도 일등을 빼앗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어떻게 한국사회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지에 대한 분석도 소개돼 있다. 강기석 전 편집국장은 “조선일보는 일관되게 수구적인 입장에서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는 애완견 역할을, 노태우·김영삼 정권 때는 가이드견 역할을 했다”면서 “정권 교체의 빌미가 된 1997년 12월 노동법과 안기부법이 통과되기 전인 4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안기부 사람의 이야기를 빌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어서 안기부 사기가 어떻고, 국가안보가 흔들린다고 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대해부>. <동아일보 대해부>를 공동집필한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장(왼쪽),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문영희 동아투위 위원. (사진=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이 책들이 두 신문의 부정적인 역사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김 위원장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건 공정한 평가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1920년 후반 조선일보에 혁신적인 기자들이 들어가 진보적인 지면이 제작됐던 사실이나 조선일보가 1927년 좌우 세력이 합작해 만든 항일단체인 신간회를 주도한 일, 사주 방응모가 남한 단독 선거를 반대한 백번 김구 선생의 노선을 적극 지지한 일 등도 모두 책에 담겨 있다. 

동아일보는 1959년 경향신문이 ‘여적 필화사건’으로 폐간당한 뒤 4·19혁명의 중요한 원동력이 됐던 기사와 논설을 많이 내보냈고, 1997년 대선 당시에는 안기부의 흑색선전물 살포사건과 이지문 중위의 군대 부재자투표 부정 폭로사건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신문 지면까지 모두 분석 대상으로 삼다보니 어려운 점도 많았다. 문영희 동아투위 위원은 “80~90년 전 신문이다 보니 잉크와 종이 질도 떨어지고 보관지 활자가 떡이 돼 읽기 어려웠고 도저히 현대어로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있다”면서 “조선일보는 보관지가 누락된 경우도 있고 경영권이 안정되지 않다보니 창간호를 봤다는 사람도 현재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74년 10월24일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선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과 그 이후 시대적 상황을 동아투위가 810쪽에 걸쳐 정리한 <자유언론 40년: 실록 동아투위 1974-2014>도 새롭게 출간됐다. 자유언론실천선언와 백지광고 사태, 선언에 나선 기자·PD·아나운서들이 해직되고 회사가 동원한 폭력배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간 일, 박정희 정권에 의해 고문·가택연금·감시 등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일들과 함께 동아투위를 결정하고 민주화운동에 나선 일들이 기록돼 있다.  

한편 이번 책이 발간되기까지는 민주화에 기여한 뜻깊은 인사들과 단체들의 후원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함세웅 신부가 동아투위 사람들에게 ‘조선일보·동아일보에 대한 연구가 너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면서 “이런 작업을 하려면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한데 함 신부가 수십 년 동안 사제생활을 하면서 들어놓은 보험금을 2012년 은퇴하면서 타게 돼 이 돈으로 책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청학련 계승사업회도 일부 지원과 책 보급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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