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10년인 1618년,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의 누르하치가 부친살해 등 명나라에 대한 일곱 가지 원한을 갚겠다는 명분으로 만주지역의 군사요충지인 무순을 점령하면서 ‘명청전쟁’은 본격화됐다. 명은 후금을 치기로 하고 조선에 원병을 요구한다. 임진왜란 때 파병하여 조선을 구해 준 대가, 즉 ‘재조지은(再造至恩)’을 요구한 것이었다. 광해군은 이에 △군사들의 훈련부족 △명나라 파병요청 문서의 명의가 황제가 아닌 점 등을 이유로 명의 파병 요청을 거절한다. 광해군은 곧바로 명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황제의 의중을 파악하고, 조선의 사정을 설명하는 등 파병을 면제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광해군의 묘 
 

하지만 사신으로 갔던 성절사 윤휘가 출정을 요구하는 황제 명의의 칙서를 가지고 돌아오자, 어쩔 수 없이 10개월 만인 이듬해인 1619년 2월, 강홍립 장군을 도원수로 한 1만 명의 지원군을 파병하게 된다. 광해군이 우려했던 대로, 명나라와 조선의 연합군은 만주 심하(深河)의 전투에서 후금에 대패한다. 명군은 궤멸되고, 조선군도 6,000여명이 죽었다. 패배 시 후금군이 조선으로 들어와 공격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광해군의 뜻을 받든 강홍립은 나머지 군사들을 데리고 청나라에 투항한다. 조선 내 다수의 친명파 대신들은 투항한 강홍립 등의 가족들을 처벌하자고 하지만, 광해군은 이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투항했던 강홍립이 강화를 요구하는 누르하치의 친서를 들고 오자 광해군은 평양감사 명의로 강화를 수락한다. 이에 당시 친명파 대신들은 광해군에게 반발했고, 만주에서는 조선이 청나라와 결탁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명나라 조정 내에는 광해군과 청나라의 결탁을 의심하며 대신 서광계에 의해 ‘조선감호론(朝鮮監護論)’이 주창된다. ‘조선감호론’은 조선군 재파병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명나라가 조선에 감호사가 이끄는 군대를 보내, 조선군의 지휘권을 간섭하며 대후금 전쟁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이에 광해군은 치밀한 전략으로 재파병의 요구도, 명나라의 조선감호론도 막아낸다. 명에게 사신을 보내는 한편 명나라 사신이 오는 길목에 청과의 ‘심하’전투에서 숨진 김응하의 사당을 세워 대청저항의지를 보여주는 등 외교적인 계책으로 명나라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명 황제 신종이 광해군에게 '우호'관계를 확인하는 칙서를 보내는 것을 마무리로 명나라의 ‘조선감호론’ 논란은 끝이나며, 명과 조선은 기존의 관계로 유지가 된다. 광해군은 이 때도 한편으로 계속 후금에 국서를 보내는 등 우호적 관계를 강화한다. 이처럼 광해군은 군대의 자주권을 지킨 조선은 명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도 후금과의 관계도 악화시키지 않는 등 독자적인 외교를 통해 또 다시 발생길 수 있는 피바람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만약 명의 ‘조선감호론’이 강행되어 조선군의 지휘권을 명나라가 직접 감독했다면, 광해군이 명과 후금 어느 쪽과도 척지지 않는 실용외교를 펼쳐 조선을 전란의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었을까? 

400년이 지난 지금. 동북아는 패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 한 가운데 한반도가 있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청과 명이 패권을 다투기 시작하던 광해군 시절의 조선과 같은 신세일지도 모른다.

전통적 우방국인 미국과 부상하는 대국 중국 사이에서 실용적인 외교와 안보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그 어느 국가와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실용외교는 국가의 군대가 ‘자주적’으로 유지될 때 가능하다. 400여 전 광해군 시절이 이를 잘 반증해 주고 있다. 

   
한미 국방장관이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를 발표하고 있는 장면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이 요구하지도 않은 전시작전권 전환연기를 오히려 미국에 매달려서 구걸하다시피 얻어냈다. 2015년 예정되었던 미군으로부터의 전시작전권 반환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이는 국민과의 약속이었던 2015년 전작권 전환 공약을 파기한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군대의 전시작전권이 국군의 통수권자인 한국 대통령이 아닌, 미국 대통령이 계속 가지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남한에 비해 군사비는 1/30, 경제력 규모는 1/40에 불과하고, 먹고살기 힘들어 수만명씩 탈북자가 생기는 그런 북한이 두려워서 외국군대에게서 작전권조차 돌려받지 못하겠다는 한심한 나라가 지금 대한민국이다. 동북아 패권경쟁이 시작된 이 시기, 국가 ‘자주권’의 상징인 군대의 전시작전권조차 이양받길 겁내하는 후손들의 지도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실용중립외교의 모범적 지도자였던 광해군은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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