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 능력개발 평가가 진행 중이다. 이번 주까지 학생평가와 학부모 평가가 마무리되고 11월부터 교사 동료평가가 시작한다. 교사들에게 전문성 신장의 동기를 부여하고, 부적격 교사를 가려낼 전가의 보도처럼 화려하게 등장했던 교원 능력개발 평가는 결국 학생, 학부모, 교사 누구도 원하지 않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학교로부터 참여의 기회도 별로 부여받지 못하는데다 교육 전문가도 아닌 학부모들에게 수업 동영상 자료 하나 보고 교사를 평가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다.

더구나 학부모가 작성해야 할 평가 문항에 수업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지도, 학생상담, 학급운영, 학생인권 등 평소 학교 일에 관심을 가지고 교사와 수시로 소통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학부모들은 높은 점수를 매기거나, 교사에 대한 뜬소문에 의거해서 점수를 매기거나,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가르침대로 평가에 응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평가를 하기 위해 교육행정시스템에 접속하는 것도 일이다. 각종 인증서와 '액티브X'로 주렁주렁 떡칠한 시스템에 걸핏하면 일어나는 접속오류를 견뎌기며 몇 십 분 씩 아무 실효성 없는 평가에 매달릴 학부모가 얼마나 있겠는가? 따라서 학부모들 중 대다수는 교원능력개발평가에 자발적으로 응하지 않는다.

이렇게 프로그램의 참여율이 저조할 경우 해법은 프로그램의 개선 아니면 폐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엉뚱하게도 참여 독려가 대책이라고 나온다. 각 학교마다 교원 능력개발평가 학부모 참여를 독려하라며 교장, 교감, 그리고 담당부장이 담임교사에게 연일 압력을 행사한다. 응답율 50%라는 할당량까지 주어진다. 담임교사들은 별 도리 없이 제발 자신을 평가해 달라며 학부모들에게 읍소하는 웃지 못할 코메디를 연출한다. 심지어 교감과 담당부장이 담임교사를 사칭하여 학부모들에게 교원능력개발평가 참여를 호소하는 문자를 스팸처럼 발송하여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항의하고, 담임교사가 교감에게 항의하는 지경에 이른 학교도 있다.

   
 
 

이런 한심한 작태가 일어나는 까닭은 교육부가 최소 참가율 기준을 정해놓고, 마치 이 기준을 채우지 못하면 대단한 불이익이 있을 것처럼 으름장을 놓고,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각종 조사 참가율을 가지고 학교들을 줄 세우는 구태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교원능력개발평가 뿐만이 아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각종 여론조사, 만족도 조사가 모두 이 모양이다. 예컨대 해마다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의 학생 응답률이 90%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내 중학교 중 최하라면서 담당 장학사가 99%에 맞추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교육지원청은 이걸 기준으로 학교들을 줄 세우고, 교육청은 이걸 기준으로 교육 지원청을 줄 세운다. 모든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자발성이 생명인데, 각 학교마다 하기 싫다는 학생들, 학부모들에게 억지로 응답을 강요하고, 심지어 응답하지 않은 학생의 신상까지 파악하여 무기명이 원칙인 조사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목적전치현상의 전형이다. 효과야 있건 없건 간에, 학부모가 교원의 능력개발에 어떤 자극이 되라고 실시한 평가일텐데, 거꾸로 학부모를 평가에 얼마나 많이 참여시키느냐가 교원의 능력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을 폭력 피해로부터 지켜주자고 나온 학교폭력 실태조사인데, 도리어 참가율을 높이기 위해 학생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또다른 폭력이 되고 말았다.

이런 구태는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처음 당선된 지역 뿐 아니라, 진보교육감 2기, 3기를 말하고 있는 지역까지도 예외 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SNS와 각종 언론에서는 진보교육감들의 화려한 언변과 사진들이 경쟁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혁신을 하겠다고 하고, 여러 단체를 찾아가 다양한 협력을 하겠다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평등교육에 대한 열변을 토하기도 하고, 한국 교육의 미래를 논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는 이렇게 어이없는 구태가 아직도 버젓이 진행되고 있고, 이 모든 것들이 진보교육감의 이름으로 강제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미래교육을 말하기 전에 먼저 기본부터 갖추어야 한다. 그 기본이란 교육이 수업이 학교의 중심에 놓여야 하며, 다른 번잡한 일들이 학교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그 기본은 이런 사소한 일들부터 하나하나 해결하는 속에서 갖춰질 것이다. 기본을 갖추지 않고 이루어지는 이른바 교육혁신은 혁신이 아니라 안 그래도 번잡한 학교에 던져진 또 다른 잡무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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