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열풍이 뜨겁다. 그의 주저인 ‘21세기 자본’이 발간 1주일만에 3만부 판매를 돌파하더니, 인문사회 분야 뿐 아니라 종합 베스트 셀러 탑 5 자리를 4주째 지키고 있다. 자기계발서류가 아닌 정통 사회과학 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이 책은 읽기 쉬운 책도 아니다. 거시경제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설사 기본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통계자료들로 가득 찬 700쪽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회 교사에게도 몹시 지루한 일이다. 게다가 가격도 33000원이나 한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현상은 우리 사회에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얼마나 팽배해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 책을 구입한 십만명이 꼼곰하게 이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벌 기업들이 앞 다투어 피케티에 반대하는 경제학자들의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피케티 현상이 허상이 아님에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열정’, ‘성공’에서 ‘힐링’까지 이어지던 우리나라의 주요 논제를 ‘불평등’으로 돌려놓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글항아리
 

하지만 불평등 논쟁이 자본이나 자본 소득에 고율의 누진세를 부과하느냐 마느냐에 너무 치우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물론 자본에 대한 누진세는 점증하는 불평등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한 방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진보진영에게 그런 정도의 힘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런데 피케티가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아니 사실상 결정적인 힘으로 제시한 교육에 대해서 별 논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어 아쉽다. 이렇게 교육에 무관심한 상황에서 교육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정부가 발표한 2015년 예산안에서 유초중등 교육비가 무려 1조 4000억원이나 감축된 것이다. (관련기사). 더구나 이 예산안은 IMF시절과 같은 긴축재정 상황에서 감축된 것도 아니다. 예산안 자체는 전체적으로 20조원이나 증액되었고, 대학에 투입될 고등교육 예산도 1조 8천억 원이나 증액되었다. 오직 유초중등 예산만 삭감되었다. 전체적으로 예산이 증액되는 상황에서 유초중등 교육 예산이 삭감된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일 것이다. 이걸로도 모자라 누리교육과정 등 중앙정부가 감당해야 할 사업까지 시도교육청에 떠넘겼다. 사실상 15% 이상의 대폭 삭감이다. 유초중등 교육이 시도교육감 사무이고 고등교육이 교육부 소관이라는 점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시도교육청을 무력화시키려는 음모라는 주장까지 힘을 얻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해 보수단체인 한국교총까지 반발하였지만, 교육관련 단체를 제외하고 이른바 진보단체, 혹은 피케티 논쟁에 참여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래도 이 문제를 진보의 핵심의제가 아니라 다만 교육계 내부의 문제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진보진영이 노동문제나 통일문제에 비해 교육문제를 가볍게 여겼던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교육의 중요성은 보수진영이 더 빨리 간파했다. 진보진영이 전교조를 다만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로 간주할 때 보수는 민주노총 보다도 전교조를 더 집요하게 공격했다. 박근혜를 비롯한 여당의원들이 촛불을 들고 뛰쳐나온 것도 사학법 개정 때문이었고, 뉴라이트들이 가장먼저 달려들어 공격한 것도 ‘교과서’였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었다면 그 까닭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피케티 주장의 핵심은 돈 놓고 돈 먹기라 부르는 자본 수익율이 노동 혹은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더 크고, 이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격차가 무한정 커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누진적 자본세를 통해 자본 수익율을 떨어뜨리거나, 교육투자를 통해 빈곤의 대물림을 끊고, 부모의 자본이 자녀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피케티를 둘러싼 논의는 전자에만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다. 아무리 자본에 고액 과세를 해서 자본 수익률을 떨어뜨려도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감축되면 이는 즉각 저소득층의 미래 소득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불평등은 오히려 더 심화된다. 이번에 정부가 감축한 예산이 교육예산 전체가 아니라 유초중등 교육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초중등 교육은 모든 계층에게 고루 주어지는 보편교육이다. 따라서 이번 예산안은 보편 교육에 투입되는 자원을 줄여서 특정 계층의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특정 대학들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겠다는 노골적인 불평등 정책이다. 피케티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최상위 1% 소득자들은 자본소득 뿐 아니라 근로소득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자본을 보유한 계층이 이를 교육에 투자하여 자녀들이 우수한 교육을 받고, 다시 이를 근거로 고임금을 받는 순환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양질의 교육이 모든 계층에게 골고루 주어진다면 이들 1%는 저소득층 자녀들과 경쟁해야 한다. 따라서 1%들은 항상 공교육 예산을 삭감하려 들며, 기어코 삭감하고 말았다. 사다리 걷어차기인 셈이다.

지금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일종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상황까지 가고 있다. 1%의 자녀들은 별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국가는 사교육을 받을 여력이 없어 공교육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중하위 계층의 자녀들은 1%와 공정하게 경쟁하여 가난의 대를 끊을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다. 이게 과연 교육계라는 한정된 영역의 이슈인가? 진보는 물론 양식있는 시민이라면 모두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강력하게 항의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