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로부터 175일 째 되는 날인 10월 7일 오전, 나는 광화문 단식 농성장 천막에 앉아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실린 조간신문을 보고 있었다. 세월호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 빈약한 수사 내용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비수처럼 찌르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새로운 뉴스는 아니었지만, 내막이 그러려니 짐작하던 그대로가 검찰 수사 결과에 버젓이 담겨 있으니 더 소름끼치게 다가온 것이다. 해경이 언딘에 일감을 몰아주려고 사고 발생 7일 동안 언딘의 바지선을 마냥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사고 당일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던 바지선이 22척, 진도 주변 두 세 시간 거리에 있던 바지선만 해도 7척이 있었다. 전 국민이 손에 땀을 쥐고 골든타임을 따져가며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의 구조를 눈물 마를 새 없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 구조에 책임을 진 해경은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바지선도 부르지 않고 심지어는 진도에 아예 도착해있던 바지선까지 돌려보내가며 아직 완성도 되지 않아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던 언딘의 리베로호를 7일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 광화문에서 동조단식을 이어가는 영화인들 (사진=우승민 감독)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이라 새삼스러운 것이 없겠지만 그러나 이 사실이 검찰의 수사 결과에 들어있어 오히려 놀랐다. 게다가 해경 간부 중 누구도 그걸 이유로 구속 기소가 되지 않아서 더욱 놀랐다. 내가 보기엔 세월호 사건의 모든 장면 중에서도 가장 부끄러운 대목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국민의 구조를 민간회사에 넘길 수도 있다는 법조항이 2012년에 생긴 모양이다. 우리 헌법 34조에는 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는 조항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2012년 개정된 수난구호법은 해난구조업무를 민간에 위탁할 수 있게 하였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용을 이유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민영화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비용 절감은 되고 있는가?

구호업체가 아니라고 스스로도 밝힌 언딘이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세월호 구호 비용으로 해경에 청구한 돈이 80억이 넘는다. 해경의 악착같은 배려 속에 이미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린 7일 후 사고 현장에 도착한 바지선 리베로호의 배 값이 21억인데, 그 배를 고작 87일간 사용한 비용으로 배 값의 70%인 15억 6600만원을 청구했다. 연봉이 6천만 원인 언딘 이사가 사고 현장에서는 일당으로 하루 200만원씩을 받겠다고 계산해서 80여 일간 일한 값으로 1억 7천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단 한명도 구하지 못해 전 국민이 절망하고 있을 때, 언딘 스스로도 해경과의 잘못된 유착을 괴로워하고 있지 않을까, 맘 착한 국민은 심지어 그런 오해도 할 법 할 때, 언딘은 주저함의 기색도 없이 해경에 돈 달라며 부풀려진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다.

   
▲ 영화인 단식천막을 정리하는 신찬비 작가(사진=배우 곽민준)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입법 예고된 정부조직법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보면, 재난 컨트롤 타워로서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특수 기동 구조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잘 들여다보면 사고 초기의 급한 불만 기동대가 끄고 이후에는 사고 수습과 대책을 자치단체 등에 넘긴다는 것인데 이것으로 구조, 구호 영역에서 민영화의 길을 열어놓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되고 있다.

이런 저런 회한 속에 단식의 하루가 가고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추운 게 문제였다. 위문 방문 온 친구가 주고 간 핫팩을 양쪽 허벅지에 붙이고 손에는 조물락거리는 핫팩을 짱돌처럼 꼭 쥐고 유가족과 간담회도 하고 문화제도 했다. 밤의 광화문, 특히 하얀 뾰족 지붕이 있는 천막 풍경은 서럽고도 정겨웠다. 농성장이 아니라 생활 현장 같았다. 대한민국의 난민이 된 사람들의 삶의 터전, 유가족들은 지금 이곳에서 국적도 없고 대통령도 없이 사는 난민이었다.

밤에는 잠을 설쳤다. 오리털 파카를 껴입고 두꺼운 침낭에 들어가 자는데도 바닥이 차고 딱딱해 몸이 으스스 저려왔다. 두 달 넘게 집에도 가지 않고 광화문에서만 지내고 있는 유가족이 있다는데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물론 부모 마음 잘 안다. 따뜻하고 아늑한 곳에서는 더 잠을 이루지 못할 그 마음을. 그러나 계속 이렇게 춥고 외로워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으로 내내 잠을 설쳤다. 나야 하루지만 이분들은 몇 달 째 그리고 앞으로도.

   
▲ 쌀쌀한 날씨에도 광화문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 (사진=박유선 PD)
 

등줄기를 타고 냉기가 흐르면서 손에 쥐고 있던 핫팩에 힘이 들어갔다. 더 추워지기 전에 세월호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이윤공화국이라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윤으로부터 나온다고 말이다. 지금 우리의 위정자들은 이미 그런 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량한 국민들을 이윤이 지배하는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 그들은 온갖 술수를 다 쓰고 있다. 지금은 그들이 주인처럼 살고 우리는 망명자처럼 떠돌이 잠을 자고 있지만 우리는 한 순간도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싸움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니까. 우리는 4월 16일 이전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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