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해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선거개입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1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앞서 검찰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한 원 전 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을 인정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원 전 원장과 공모한 혐의를 받았던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국책사업 성과를 홍보하고 국정운영 방침에 반대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비방하는 조직적 정치관여 행위로 자신의 책무를 저버린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국가기관이 특정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조성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행위는 절대 허용할 수 없고,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책임이 무겁다”고 판결했다.

특히 재판부는 “국정원 사이버 심리전단 직원들이 인터넷에 게시한 글들 중 NLL(북방한계선) 관련한 글의 경우 NLL의 적법성과 당위성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와 민주당 비방으로 정치관여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면서 “국정원 직원이 자기 신분을 감추고 일반인인 것처럼 가장해 활동하며 국정성과를 홍보하고 반대 정치인을 비방하는 글을 작성한 것은 국정원법에서 금지하는 명백한 정치관여 행위”라고 지적했다.  

   
▲ 11일 오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 후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강성원 기자
 

재판부는 원 전 원장과 이 전 차장, 민 전 단장과의 공모관계에 대해서도 “원 전 원장이 주재하는 매월 전부서장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의 모든 발언은 녹취되고 전 직원이 열람토록 국정원 내부 전산망 에 게재됐다”며 “매주 팀장이 참석하는 간부회의에서 원 전 원장이 직접 혹은 이종명·민병주에게 특정 이슈를 지시하고, 국정원 직원들은 이를 즉시 업무에 반영한 후 그 결과를 지시계통에 의해 보고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국정원은 상명하복이 강조되는 정보기관으로 원장의 조직 장악력이 크고 원 전 원장의 지시는 직원 업무의 최우선 고려사항”이라며 “심리전단 직원들이 부수적인 다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됐어도 이를 방지하는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이 사건의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하는 기능적 행위지배임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원 전 원장에게 적용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제출된 증거만으론 원 전 원장이 정치관여를 넘어 선거운동을 지시했거나 국정원 직원들이 특정 후보를 당선·낙선 목적으로 계획적이고 능동적인 선거운동을 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은 선거 시기 국민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매우 위험하고 부적절한 행위가 분명하고, 과거 우리나라 관권선거가 자유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했던 뼈아픈 경험을 국가기관인 국정원은 각별히 유념해야 함이 당연하다”면서도 “원 전 원장 등의 행위가 ‘선거 또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선거운동’에 해당함을 인정하기에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면 선거법에 따른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원 전 원장은 1심 판결 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거부하며 도망가는 등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결국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서 기자들에게 짧은 소감을 밝혔다. 원 전 원장은 “1심 재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무죄로 판결해준 것에 대해 너무도 옳은 판단을 해줘 고맙게 생각한다”며 “국정원법 위반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정치에 개입하려는 게 아니고 북한의 비난에 대한 대응이었기 때문에 항소심 과정에서 해명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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