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지정 취소 문제로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의 일대 대결국면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당장 특정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하느냐 마느냐로 결판 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문제는 영재고, 특목고 등을 포함한 이른바 고교 다양화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 와 전면적인 문제제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는 보다 장기적인 토론과 건설적인 대안까지 개발해야 하는 큰 과제다. 진보교육감은 이런 큰 과제 때문에 오히려 작지만 의미 있는 세밀한 개혁을 조금씩 누적시키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교육감은 교육정책의 줄기를 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세밀하게 집행하고 살피는 살림꾼에 가깝다.

그런 세밀한 개혁 중 하나가 대부분의 학교에서 아직까지도 실시되고 있는 아침 등교지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등교지도는 지금 40대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악몽으로 남아있다. 아침마다 교문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스캔하던 학생주임교사의 기억과 그 눈길을 피해 검문검색을 통과한 무용담은 아직도 40대 남성들의 단골 화제다. 학생주임교사의 준말인 '학주'가 아직까지도 일반명사처럼 사용될 정도다.

하지만 그 검문검색을 통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주 뿐 아니라 규율부, 선도부, 우애부 따위의 이름으로 불리는 완장 찬 선배들이 양쪽으로 도열하여 혹시 학주가 놓쳤을지도 모르는 복장 위반자를 색출하기 위해 이중 삼중의 검색망을 펼쳤기 때문이다. 검문검색이 실시되지 않는 교문은 철저하게 차단되어 등교할 수 없었고, 검문검색조보다 먼저 등교하고자 해도 교문이 열려있지 않거나 혹은 검문검색조가 등교시간보다 훨씬 먼저부터 나와 있었기 때문에 이를 피해서 등교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 검색에서 적발되면 엎드려서 매를 맞거나 운동장을 뛰거나 교문 옆에 서서 망신을 당한 뒤 이름을 적히고 벌점을 받았다. 기껏해야 바지나 치마 길이가 조금 길거나 짧고, 머리 모양이 조금 다른 정도로 이런 벌을 받고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깊이 반성하는 기색과 함께 언제까지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겨우 교실로 갈 수 있었다.

이렇게 등교지도라는 이름의 검문검색과 즉결처분을 12년이나 계속 받다보니 어른이 되어서 경찰의 영장 없는 검문, 폭력적인 진압, 불법적인 연행도 쉽게 받아들인다. 공권력이 어떤 횡포를 부려도 원래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인다. 이런 순종적인 ‘신민’을 길러내는 것이 등교지도의 숨은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등교지도가 민주정부가 들어서도, 진보교육감이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름만 "교문 맞이", "아침 맞이"로 바뀌었다. 심지어 이렇게 이름을 바꾼 등교지도가 몇몇 언론에서 일종의 미담으로 둔갑하여 보도되기도 했고, 진보교육감 조차 그 내막도 모른 채 덩달아서 아침 맞이한다며 등교 지도하는 한 켠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

물론 실제로 교원(교직원이 아니다)들이 학생들 등교시간에 교문에 미리 나와 인사하는 학교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 하던 등교지도를 이름만 교문 맞이, 아침 맞이로 바꾸어 실시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언론사나 교육감 등이 왔을 때는 대대적인 아침인사 행사를 실시했던 학교도 결국 교장의 취향에 따라 언제든지 아침 검문검색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침맞이, 교문맞이다.

애초에 수업이 아니라 굳이 교문에서 맞이하는 인사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작위적이다. 학생들은 학습 시간 이외에는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아무리 다정하게 인사한다고 해도 학교에 들어서는 첫 순간부터 도열해 있는 어른들과 선배들 사이를 통과해서 지나가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특히 학생들 대부분이 등교하는 10분 정도가 아니라 30분 전부터 교사들에게 근무조를 짜서 아침 맞이를 시키고 있다면, 그리고 아침 맞이를 하지 않는 문으로 등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면 이건 어김없이 검문검색을 위한 등교지도의 변형일 것이다.

따라서 진보교육감은 교장, 교감, 학교 보안관 등이 교통사고 위험이 있는 길목에서 실시하는 안전지도 외의 등교맞이, 아침맞이 등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체의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 법을 바꿀 것도 없이 권고 공문 한두 장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하루를 온갖 간섭과 검문검색으로 시작하는 것에 익숙해져 결국 공권력에 의한 사생활의 감시와 부당한 권리 침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민으로 자랄 위험이 큰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물론 교원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이 아름다운 풍경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인사가 꼭 교문에서 이루어져야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수업 시작할 때 교실에서 따뜻하게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굳이 교문에서 인사하고 싶다면 학생들이 많이 오는 시간에 잠깐씩 나가 인사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그 맞이가 싫은 학생들은 그것을 거부할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 교사들이 조를 짜서 학생들 등교하기 30분 40 전부터 "맞이"라는 이름으로 배치되어 있고, "맞이"가 이루어지지 않는 교문으로는 절대 등교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건 결코 인사가 아니라 다른 이름의 검문검색, 등교지도의 변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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