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김지영 감독)을 방송한 RTV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5·16군사쿠데타를 ‘5·16혁명’이라 적시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4일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차행전 부장판사) 1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백년전쟁 1부 <스페셜 에디션 프레이저 보고서 : 누가 한국경제를 성장시켰는가?>편에서 ‘박정희가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활동하였다’는 부분을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체가 돼 시행한 5·16 혁명의 내용과 그 이후의 행보에 비춰 볼 때,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은 “5·16군사쿠데타를 5·16혁명이라 기술한 데서도 재판부의 시대착오적 역사의식을 잘 알 수 있다”며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인식하고 이승만에 대한 평가와 대한민국 건국 정통성을 연결하며, 다시 이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재판부의 판단은 다분히 현실정치를 의식한 것으로 이는 분명 재판의 중립성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교육부 교과서 편수용어 지침에도 5·16군사쿠데타는 ‘5·16군사정변’으로 기술하도록 정해져 있다. 

   
▲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포스터
 

장승혁 서울행정법원 공보판사는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5·16은 통상적으로 쿠데타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보수적 역사학계와 진영에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쓰니까 재판부가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런 표현을 쓴 것”이라며 “공산주의자 서술과 관련해서도 재판부 입장에선 RTV 방송이 단정적으로 서술한 부분에 대해 다른 해석의 가능성 있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했다고 한다”고 해명했다. 

연구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로 활동한 전력에 대해서도 “해방 후 박정희가 군에 복무하며 공산주의 진영(남로당)에 가담했었고 그로 인해 숙군 대상에 포함되었던 사실은 두말할 나위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며 “5.16군사쿠데타 이후의 행보를 근거로 그 이전에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을 수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주관적 억측에 불과할뿐더러 재판관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법원은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취소해 달라’며 RTV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각 방송은 특정 자료만을 근거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전직 대통령들을 폄하했다”며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루면서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연구소는 4일 논평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거론할 것도 없이 전직 대통령들을 아직도 성역으로 여기며 독재자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라며 “역사적 인물의 실체적 진실을 폭로했다 해서 명예훼손으로 규정한다면 모든 비판적 역사서술은 범죄가 되고 말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이어 “보도 프로그램이 아닌 탐사 다큐멘터리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을 문제 삼은 것이야말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은 판결”이라며 “RTV는 퍼블릭 액세스 채널로서 제작자가 신념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시청자 참여형 방송인데 이런 방송사의 특성을 무시하고 뉴스에나 적용할 만한 기계적 형평성을 들이대는 후진적 사고가 한심스러울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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