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여론조사 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한 세월호 관련 여론조사 문항이 편향적이고 불공정한 내용으로 채워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28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국회의 역할이므로 대통령이 직접 나설 일이 아니다'는 의견이 응답자의 56.8%,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야당과 유가족대책위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40.1%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세월호특별법 논의를 위해 여야(與野)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를 새누리당이 거부함에 따라 새정치연합이 장외 투쟁을 포함한 강경 투쟁을 나서기로 한 것'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37.8%)와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26.7%) 등 부정 평가가 64.5%로 다수였다. 반면 '매우 동의한다'(8.1%)와 '대체로 동의한다'(22.2%) 등 긍정 평가는 30.3%였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최근 세월호특별법 문제와 관련해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 등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41.2%)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28.4%) 등 10명 중 7명(69.6%)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가 부적절하고 야당 역시 무리한 방식으로 세월호 정국을 이끌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여론조사 문항 전체를 살펴보면 야권에 비판적인 답변을 유도하도록 효과를 줄 수 있는 내용과 질문 순서를 배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프레이밍 효과는 동일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어 심리학, 마케팅, 여론조사까지 활용되는 개념이다. 이번 조선일보 여론조사와 관련해서도 프레이밍 효과가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조선일보 여론조사가 "객관성을 이미 상실한 질문으로 시작해 정치 편향적인 질문으로 끝을 맺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첫번째 문항과 두번째 문항에서 대통령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를 물은 것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물을 때는 보통 정당 지지도 등 정치적 성향을 묻는 문항은 뒤에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지적했다. 응답자의 당파성이 프레이밍 효과로 작동하면 이후 질문과 답변 내용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다섯번째 문항에 "새누리당이 세월호 사고의 진상조사에 대한 의지와 유가족들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일부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바로 이어 여섯번째 문항에 "새정치민주연합과 통합진보당 등 야당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진상조사보다 정치적 의혹 제기를 통한 반정부 투쟁에 치중하고 있다는 일부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전문가들은 공정성을 잃은 편향적인 질문 배치와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 안일원 대표는 "여섯번째 문항을 보면 통합진보당까지 끌어다가 ‘반정부 투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응답자의 머릿 속에서 작동된다"며 "현재 여권과 야권에 비판적인 부분을 비교한다는 취지로 문항을 설계했을지 모르지만 매우 편향돼 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28일자 세월호 관련 여론조사 결과 발표 기사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집 전화와 휴대 전화를 병행한 RDD(임의 번호 걸기) 방식의 전화 면접으로 실시됐다. 전문가들은 문항에 부정적인 어휘가 먼저 제시되면 다른 질문의 답변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태도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여섯번째 문항을 야권 지지층이 들을 경우 여론조사가 편향돼 있다고 생각해 응답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열한번째 문항도 도마에 올랐다. 조선일보는 "새정치민주연합 일부와 세월호 유가족대책위는 진상규명을 위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고 하지만, 새누리당은 민간인이 직접 가해자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법원에 기소할 경우 사법체계를 흔드는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OO님께서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필요하지않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이 내용 역시 야권에 불리한 쪽으로 편향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항에는 "민간인 가해자 조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매우 부정적인 표현으로 인식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법적 절차를 거쳐 특별 검사를 임명하고 권한을 주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주제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뜬금없이 경제 관련 문항을 제시한 것도 의도적인 문항 설계라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는 일곱번째 문항으로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다른 경제관련 법안들도 통과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세월호 특별법과는 별개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열네번째 문항으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여당과 야당의 대치 상황이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현재 경제 및 민생 이슈와 관련해 여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언론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조선일보의 경제 관련 문항은 여권에 유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질문 순서 배치를 조정하고 문항 표현을 바꿀 경우 다른 데이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반론이 나오는 이유다.

유족과 야권에 부정적인 표현의 문항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특별법을 여야가 합의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다시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43.5%가 다시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여야가 합의한대로 해야 한다(48.6%)는 응답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또한 '새정치민주연합이 제안한 3자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55.2%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37.5%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리서치뷰 안원일 대표는 "장외투쟁과 단식 농성에 대한 피로도도 있어 비판적인 인식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설문 내용은 너무 침소봉대하는 식"이라며 "만약 선행 질문에 304명의 희생자가 있는데 진상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질문을 재배치하고 부정적인 어휘를 개선한다면 여권에 불리한 데이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책임진 조선일보 홍영림 기자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야당이 반정부투쟁에 치중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는 문항이 편향적이어서 응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오히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반정부 투쟁이라고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반정부 투쟁에 치중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답변이 쏠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 기자는 "민간인이 가해자를 조사한다는 문구도 논란이 된다는데 진상규명을 위해 꼭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하는지도 논란이 될 수 있고 양쪽에 다 얘기를 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홍 기자는 "미디어리서치와 여러번 상의해서 만든 것이다. 그쪽에서는 언론은 물론 야당하고도 공천조사도 많이 했다"며 "편향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 세상에 다 알려지는데 편향적인 질문을 하겠느냐.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게 언론 아니냐"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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