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영화인 동조단식 현장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아직도 깊은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고, 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절절한 마음으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단원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다 끝내 병원에 실려 가서도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다. 그 천막 한 켠에서 마음을 보태고, 같이 곡기를 끊는 사람들 가운데 영화인들이 있다.

유명한 감독, 스타 연기자들부터 제작자, 프로듀서, 작가, 현장 스태프들까지 단식을 함께 하는 마음을 미디어오늘에 릴레이로 기고한다. 영화란 관객과 함께 세상을 느끼고 호흡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세상의 아픔을 함께 공감할 때 영화가 삶이 되는 영화인들이 단식 현장에 함께 하며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아파하는 마음을 담아 싣는 글들에 담긴 진심을 스크린이 아닌 아스팔트 위 단식 천막에서 전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이 진심을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두 가지 있다면 사랑과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단식으로 죽어가는 국민이 있는데도 손한 번 잡아주지 못하는 대통령님이라니. 정치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예술 영화인의 한사람으로서 가슴이 찢어질 듯하다.

나는 기억한다. 무대에서 나병환자의 손을 잡아주었던 그 느낌. 세 달을 꼬박 같은 장면을 되풀이 했어도 그 때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흘렸던 나의 눈물은 이제 의미가 자꾸 퇴색되려고 한다. 그리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그것은 너무나 아프지만 행복한 기억이었기에.

나는 뮤지컬 <퍼스트 레이디>에서 '육영수'라는 배역을 맡고, 그 배역에 목숨을 걸었었다. 나와는 종교도 달랐고, 그것보단 자칫 보수 성향에 치우친 공연처럼 보일까봐 걱정도 했었지만, 배역을 맡은 인물과 상황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분의 인성과 성품에 매료되었다.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을 위해 눈물로 손수건을 적신 분이고, 소록도에 가서 한센병 환자들의 손을 직접 잡고 고름을 닦아주신 분이었다.

   
뮤지컬 배우 이자은 씨
 

왜 지금은 그렇게 되지 않는 건가? 어떤 정치적인 이유인지, 무엇이 두렵기 때문인지, 대통령과 영부인이라는 자리의 차이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어떤 핑계도 납득할 수가 없다.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어떠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죽어가는 생명을 방치해 살인죄가 운운되었던 세월호의 선장과 다른 게 뭔가 싶다. 나는 내가 존경하던 '육영수' 여사의 따님께서, 국민의 한사람이며 그분을 연기한 배우가 간직해온 자부심을 잃게 하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하고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이 사회현상은 대통령님의 잘못만은 아니다. 국가의 원수라고 해서 모든 책임을 돌리는 현상도 썩 보기 좋지는 않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분들인지 정말 자신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자식이나 가족을 바다에 묻은 유가족들에게 쓰레기라든지 시체장사꾼이라든지 유족충이라든지 하며 비난하는 자들을 보면, 정말 그 속에 심장이 발딱발딱 뛰고 있는 인간이란 동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진다.

그분들이 그들에게 해를 입혔나? 살인하고 도둑질했나?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왜 그렇게 욕을 먹어야 되나. 대학입학특례나 보상금 운운하는데 SNS에 떠도는 비난성 허위모함 글 말고,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제정에 대해서 검색이라도 해보고 하는 말일까? 자기자식이 죽으면 과연 어떻게들 하실까? 자식이 없는 미혼여성인 나도 그 마음이 전해지는데. 게다가 단식 중에 왜 물을 마시냐며 상식이하의 비난을 하시는 분들은 하루라도 굶어보기나 한 걸까?

왜 이 사회는 이토록 병들었을까.

나는 좀 더 따뜻한 사회에서 연기하고 싶다. 따뜻한 분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주고 싶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방관하거나 비난하는 냉정하고 무서운 사회에서 꼭두각시처럼 의식 없는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선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어느 누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또는 자신의 죽은 자녀를 이용해서 장사를 한다는 말인가? 목숨까지 바치면서까지. 이렇게 시위해야하는 그 이유를 정녕 모른단 말인가? 그냥 원초적으로 간단히 생각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왜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가?

이것이 곧 우리의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가족이 미궁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생각을 해보라. 몇 시간동안 구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침몰의 고통 속에서 떨었을 당신의 아들딸이라고 생각해보자. 제 2,3의 세월호 사건이 벌어질 때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전국민이 노란리본을 달고 절대 잊지 않겠다던 다짐은 어디로 갔으며, 민간이 참여하는 특별법 제정에 대한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인가? 광화문 광장의 노란색 소원풍선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 버린 것인가?

광화문 광장은 그래도 따뜻함이 넘쳤다. 다들 힘든데도 서로를 위해 웃음으로 격려하고 응원했으며 의료 봉사진 분들께서는 장기단식자들의 혈압을 재가며 건강을 걱정했다. 그 어디에도 가족이 죽은 걸 계기로 한몫 챙기려는 눈이 벌게진 치졸한 모습은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원할까?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복잡한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 약속을 지켰으면 하는 마음, 내 이웃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 죽은 사람들이 편히 눈 감을 수 있도록 나의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되고자하는 마음으로 광화문에 왔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야 할 때 빚어지는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이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이들의 지독한 침묵이었다고."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다. 배가 가라앉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탈출하지 못한 선량한 피해자들이 있었다. 국가와 언론의 허위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현실을 살펴보고 일어나 자발적으로 목소리라도 내어보는 이 시대 영화인들의 의식에 참여하고, 방관보다는 실천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야만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감동을 주는 연기를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의 감정을 같이 느껴야하는 직업이기에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을 지지방문했던 임소원 님이 그린 그림.
 
 

농성장 천막에 앉아 잘 못 그리는 솜씨로 그림을 그렸다. 좌파우파 그딴 것, 다툼과 미움 그딴 것 다 집어치우고 다시 한 번 손에 손을 맞잡고 화합과 사랑으로 넘치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는 바람을 담았다. 그리고 그 힘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속에서나마 세월호라는 이름의 우리 모두의 죄가 건져지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도 그려넣었다.

작은 희망이 큰 기적을!

나는 아직 믿는다. 난 말뿐이고 무책임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배가 가라앉고 모두 무사하길 기도했던 4월16일 그 순간부터 나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 희망이란, 아직도 세상은 아름답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최소한의 양심은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야만. 그게. 사람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