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역사관을 검증한 KBS 보도에 중징계가 예고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원회(소위원장 김성묵)의 여권 추천 위원들은 27일 이 보도에 대해 방송심의규정 제9조1,2항(공정성)과 제14조(객관성)를 위반했다며 법정징계인 ‘관계자 징계’(벌점4점)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KBS가 문 후보자의 발언 중 일부만을 발췌해 강연 내용을 왜곡했다’는 논리를 펼쳤다. KBS 의견진술자로 나온 용태영 주간은 “식민지배와 남북분단도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한 건 기독교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고 다수 국민이 보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고 반박했다. 김귀수 기자도 “문 후보자의 강연 중 한 발언은 한국인의 기본적인 역사인식과 괴리가 있었다고 판단해 이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발언을 뽑아 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KBS는 문 전 후보자의 온누리교회 강연 동영상을 입수, 지난 6월 11일자 <뉴스9> 톱뉴스로 <문창극 “일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 발언 파문>을, 이어 <문창극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를 단독 보도했다. KBS는 이 보도로 방송기자연합회에서 주는 이달의 방송기자상, 한국방송기자클럽의 보도상,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문 후보자는 교회 강연에서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조선 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 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방송심의소위에서 중징계 의견을 낸 여권 추천 고대석 위원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줬고 그 중 하나가 일제 침략이었으며 결국 이를 극복했다’는 것이 강연의 전체적인 맥락인데, ‘시련을 극복했다’는 내용은 없고 식민지배 자체가 하느님의 뜻이므로 우리 민족이 당연히 지배를 받았어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어 “문 전 후보자가 친일파가 아닌데 결과적으로 친일파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함귀용 위원은 “나라를 위해 교인들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이 강연의 취지”라고 말하며 “‘조선 민족이 게으르다’고 말한 것도 양반뿐만 아니라 야전의 수탈로 조선민족이 근로의욕을 상실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가 민족 비하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KBS <뉴스9> 리포트 장면
 

KBS측은 이런 주장에 대해 ‘왜곡’이 아니라 ‘선택’이었다고 반박했다. 용태영 주간은 “식민지배도, 남북분단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부분이 문 후보자의 정신세계와 역사관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해서 수많은 팩트 가운데 선택했다. 우리 보도에서는 문 전 후보자가 그런 역사관을 가졌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함 위원은 문 전 후보자가 강연 직후 한 여섯가지 기도 내용을 언급하며 “하느님이 구원의 역사를 어떻게 구현해줬는지 강연해달라고 하면 저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용 주간은 “식민지배조차도 하나님의 뜻으로 치환한 것에 대해 기독교 내부에서도 신정사관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고 반박하자 함 위원은 “(여섯가지 기도) 여기서도 나라 사랑을 읽지 못한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김성묵 소위원장도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려고 고난을 주고 길을 열어줬다’는 내용은 굉장히 중요한데 이게 보도에서 빠졌다. KBS 방송 강령은 인터뷰 편집 시 전체 흐름에 어긋나거나 일방적으로 편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지적한 뒤 ‘관계자 징계’ 의견을 냈다. 

여권 추천 위원들은 또한 KBS가 문 후보자에게 반론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기자는 “방송 당일이었던 (6월)11일 오전 11시 회의에서 문 후보자의 반론만으로 한 꼭지를 제작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냈다”는 KBS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김 기자는 이어 “국무총리실 이석우 공보실장에게 리포트 핵심 내용이 ‘식민지배가 하느님의 뜻’, ‘4·3항쟁은 폭동’이라는 점을 알려주며 후보자의 답변을 듣고 싶다고 했지만 1시간 뒤 청문회에서 답변하겠다는 문 전 후보자의 말을 전해들었다. 그래서 문 전 후보자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녹취를 따서 보도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함 위원은 이에 대해서도 “한참 전에 강연한 내용에 대해 다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하지만 KBS가 발언 내용을 하나하나 다 따서 보도하는걸 알았으면 반론했을 것”이라고 문제삼았다. 

야권 추천 위원들은 ‘문제없음’ 의견을 냈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KBS는 문 전 후보자의 강연 내용 중 역사인식이 뭔지 살펴봤고 (고위공직자 검증은) 공영방송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 방통심의위는 그 판단은 존중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위원은 또한 “최고의 공직후보자에 대한 역사관을 검증하기 위한 언론의 정상적인 활동에 심의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런 검증 보도와 관련해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억압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신서 위원도 “문 전 후보자가 강연에서 한 대표적인 발언을 통해 국무총리의 시대정신을 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그런 부분을 편집을 통해 보여준 보도”라고 평가한 후 “반론권을 주면 이를 밝히는 것은 본인의 몫인데, 문 전 후보자 스스로 이를 포기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KBS 보도에 대한 징계는 전체회의에서 최종 의결된다. 하지만 방통심의위가 여야 6대3 구조인 점을 감안해 볼때, 이번 보도 역시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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