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새로 취임하는 교육감 마다 "교육청은 교사를 감독하는 기관이 아니라 교육을 잘 하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각 시군구의 이른바 산하교육청의 이름을 '교육 지원청'으로 바꾼 것 역시 진보교육감이 아니라 보수정권의 교육부가 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만 '지원청'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교육 지원청’은 지원청의 이름으로 학교를 관리, 감독하고 각종 정책 사업을 강요하는 곳으로 군림하고 있다.

교육 지원청 관료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이름을 교육 지원청으로 바꾸고 교육청의 일은 학교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선언만 했을 뿐,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업무 지침과 규정, 그리고 교육청 평가 지표 등은 전혀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색이 교육 지원청이지만 막상 그 지역 학교의 행정업무가 얼마나 간소화되었는지, 각 학교에서 수행하던 행정업무들 을 지원청이 얼마나 많이 직접 처리하여 학교 부담을 줄였는지 등이 결정적인 기관 평가지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관료들은 이름만 바뀐 교육 지원청에서 예전 산하교육청 시절 하던 일을 그대로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모든 교육행정이 전산화되고 교육청 서버에서 관리되기 때문에 각 학교에서 일일히 처리하지 않고 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행정업무는 조금만 정성 들여 연구하면 무수히 많이 찾아낼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학교들은 해마다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 라이선스 갱신업무 골머리를 앓는다. 주로 한컴오피스, 윈도즈,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그리고 V3가 그 대상이다. 게다가 해괴한 것이 상당수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 라이선스 갱신업무를 행정직원이 아니라 교사에게 담당시킨다. 그렇다고 이걸 행정직원에게 맡기자니 행정실 인력도 대폭 감축된 상황이다. 그런데 컴퓨터 프로그램은 과거와 같이 CD패키지 단위가 아니라 인터넷 상의 다운로드로 판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걸 학교마다 따로 구입할 이유가 없다. 예컨대 어느 지역 교육 지원청 관할구역 내에 200개의 학교가 있고, 각각 100대씩의 교직원 및 학생용 컴퓨터가 있다고 하자. 현행대로라면 각 학교마다 프로그램 회사에게 100회의 카피가 가능한 라이선스를 구입하며, 프로그램 회사는 200건의 계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그 지역 교육 지원청이 20000카피가 가능한 라이선스를 구입한다면? 각 학교는 프로그램 라이선스 갱신업무를 덜고, 프로그램 회사는 200건 대신 1건의 계약만 관리하면 되고, 교육청은 프로그램 구입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서울시교육청은 학교홈페이지를 각 학교가 각기 서버를 운용하고 유지·보수업체와 계약하는 방식에서 교육청 서버로 통합하여 일괄 유지·보수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각 학교 홈페이지 서버관리 업무를 대폭 감축한 바 있다.

또 다른 예로 전입학 업무를 간소화 할 수 있다. 현재 전입학업무는 학교와 학부모 모두에게 번거롭다. 이를 전입지역 교육 지원청 민원 서비스실에서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면 학교와 학부모가 모두 편리한 교육행정지원을 받게 된다. 심지어 전산망을 이용하여 학부모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가까운 교육지원청에서도 자녀 전입학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수업해야 하는 교사가 수업 틈틈이 전입학 업무 처리하느라 번거롭고,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전입학 담당교사 수업 끝날 때 까지 멍하니 기다리느라 한심했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다. 각종 국회의원 요구자료 역시 각 학교로 공문 이첩해서 보고하게 하는 대신, 학교정보공시, 교육행정시스템 등을 활용하여 각 교육 지원청이 최대한 직접 작성하고,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만 각 학교의 교장이나 교감에게 업무메일을 통해 전달받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

교육지원청의 업무가 안 그래도 많다는 불만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교육지원청의 다른 업무를 줄이거나 페지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예컨대 이른바 지역 특색사업이 그렇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전시성, 이벤트성 행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예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교육청 홍보 게시판 역시 대부분의 내용이 다만 치적 홍보 혹은 각 학교에 반 강제적으로 채워 넣도록 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현실은 정 반대다. 교육 지원청이 전출입 학생 배정안내 같이 원래 하던 업무조차 학교에 떠넘기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관료제 조직의 속성상 원래 하던 일을 스스로 바꾸려 하지는 않고 되도록 약자에게 업무를 떠넘기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교육행정체제에서 학교는 항상 약자다. 만약 본청에서 교육 지원청에게 구체적인 학교행정지원 방안에 대한 지침과 사례 등을 상세하게 안내하지 않으면 교육 지원청은 학교에 군림하면서 지원 대신 관리, 감독만 하려 들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은 교육청 내에서 TF 따위를 아무리 꾸려도 마련하기 어렵다. 교육청 외부의 행정 전문가(관료가 아닌)와 경영전문가의 컨설팅을 통한 치밀한 리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 "교육청의 존재 이유는 학교가 교육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라는 절대적인 목적을 설정하고 현재 교육청, 교육지원청의 구조와 업무가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얼마나 조직의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지 치열한 분석과 개조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곳곳에서 공급자 보다 수요자 위주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교육행정은 서비스이며 학교는 교육행정의 수요자임을 교육감은 학교들의 수장이 아니라 행정서비스 책임자임을 진보교육감부터 먼저 실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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