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교황이 한국을 향해 마지막으로 전한 메시지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방한 내내 말과 행동으로 많은 메시지를 전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경제 모델을 거부하라”는 일침부터,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싸우라”는 당부까지 교황은 한국사회와 교회의 현실을 꿰뚫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비행기 안에서 전한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이야말로 그 많은 메시지 중 백미다. 무수한 사회적 타살에 대해 정치와 이념을 들이대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폄하하고 왜곡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발언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후, 과연 누가 교황에게 그런 말을 했는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것이 누구인지 추론하기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누구인가가 아니다. 정부 측이든 가톨릭 교회 측이든, 교황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고위직의 누군가가 세월호 추모를 두고 ‘정치적 중립’의 문제로 여긴다는 불행을 확인한 것, 그리고 교황이 이에 대해 정치와 이념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집전하기 전 카퍼레이드를 하며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교황은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후, 노란 리본을 제의에 달고 미사를 집전한 일부터, 광화문 시복식 미사에서 유가족인 김영오씨를 위로하고, 또 유가족인 이호진씨에게 전례 없는 세례를 베푼 일까지 교황은 방한 내내 ‘세월호’와 함께였다.

교황은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짚어 냈고, 최선을 다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여정을 보여줬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시민들도 이러한 교황의 행보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것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교황이 보여준 이 모든 것으로 세월호 문제는 내외신을 통해 다시 한 번 커다란 이슈가 됐고,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황이 떠난 그 다음날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교황은 한국 사회에 큰 위로와 가르침을 전하고 갔지만, 그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삶 안에서 풀어내야 할 엄중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의 메시지와 행동에 큰 위로와 답을 얻었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을 나누는 일이다.

교황은 우리를 대신해서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러 온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교황은 정부를 대신해 특별법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보여주고 “이제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이르러 온 것이다.

   
▲ 정현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자
 
교황이 아픈 이들, 고통당하는 이들, 울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며, 어떻게 손 잡았는지 보았다면, 그것이 진정 나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깨달았다면, 바로 옆에 있는 이들에게 똑같이 해주는 일이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4박 5일, 꿈같았던 날은 갔다. 교황의 방한이 슈퍼스타의 깜짝 방문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지금 여기에서 삶으로 남을 것인지, 그것은 이제 온전히 우리 자신의 선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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