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엠마누엘은 신부가 되고 싶어했다. 성호네 가족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 집안이다. 가족 모두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시성 미사에 참여하기로 하고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지난 4월 16일 그 꿈은 부서지고 말았다. ‘교황처럼 사랑 많은 훌륭한 신부님이 되고 싶어 했던’ 성호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목숨을 잃었다.

남은 가족은 여전히 교황을 기다린다. 시복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부도 대통령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교황 방한을 하루 앞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교황에게 전하는 호소문을 읽었다.

“억울한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우리 아이들의 진실을 꼭 밝혀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성호 어머니 정혜숙씨는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 성호가 저를 부르던 목소리가, 같이 성당에 가던 시간들이, 교황 성하의 방문을 같이 기다리던 그 시간들이 생생히 제 기억 속에 남아있다”며 “이런 고통의 시간을 겪는 건 저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썼다. 정씨는 “다시는 소중한 생명들이 탐욕의 제물이 되어 죽어가지 말아야겠기에, 우리 나라를 안전한 나라로 만들고 싶기에 눈물을 참으며 단식을 하고 노숙을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씨는 “안타깝게도 참사가 일어난지 120일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 가족들은 왜 우리 아이가 죽어야 했는지 알지 못한다”며 “우리 가족들과 국민들이 호소하는 데도 정부는 진실을 밝힐 마음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사권이니 기소권이니 그런 말은 잘 모른다”면서 “그렇지만 왜 우리 아들이 죽었는지는 알아야겠고, 왜 꼭 책임자를 벌해야 하는지는 알겠다”고 말했다.

   
사진=이하늬 기자
 
31일째 단식 농성 중인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씨도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평화와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리의 약자를 보살피는 교황이라고 들었다”며 “생명보다 귀한 딸을 잃은 애비가 딸의 죽음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 한 달째 단식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은 유민이가 내 가슴 속에서 아직까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김씨는 교황이 정부를 압박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를 “생명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탐욕적인 세상, 부패하고 무능하며 국민보다 권력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부”라고 비판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해 힘이 없어 자식을 잃고 그 한도 풀어주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유가족들의 바람대로 이들은 곧 교황에게 자신들의 호소를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교황이 방한하는 14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각계각층 30여명과 함께 교황을 직접 맞이하게 되며 15일에는 교황과의 비공개 면담도 가질 예정이다. 유가족들은 이번 면담에서 교황에게 직접 세월호 참사를 설명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전세계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특히 ‘눈물 흘리는 사람을 내쫓고 미사를 거행할 수 없다’는 강우일 주교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16일 열리는 교황의 광화문 미사에서도 가족들의 단식 농성장은 철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 대변인은 “교황의 동선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에서 농성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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