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이 취임한지 한달이 지났다. 교육혁신의 청사진을 보여주거나 적어도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할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자사고 존폐 대결이 벌어지고 있지만,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교육감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사고의 폐지가 아니라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지 않는 '불량 자사고'를 가려내는 정도고, 그나마 교육부 장관과의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 결판내기 어렵다. 여기에 너무 몰입하다 교육감 권한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있는 혁신 아이템을 놓칠 우려가 있다.

교육감의 권한으로 당장 실행에 옮길수 있는 것은 주로 교원정책이다. 진보교육감들은 행정이 교육을 흔드는 왜곡된 교단을 정상화고 승진볻 교육에 매진한 교사들이 존중받게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승진제도를 개선하려니 이 역시 법률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감의 권한을 벗어난다. 교장, 교감, 그리고 교육관료들의 권한을 축소하려고 하니 저항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수많은 잘못된 규정과 관행이 난마처럼 얽혀있다.

이럴때는 시야를 좁혀 교단을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승진경쟁에 뛰어들어 교단을 아사리판으로 만든 교사들이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남다른 열정과 열의를 가진 교사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교육에만 매진한 교사들이 자신의 삶을 후회하기 시작한 순간, 교육에만 매진했던 자신의 삶이 모욕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왜곡된 승진경쟁이 시작된다. 정작 열정과 열의가 없는 교사는 그 순간 후회도 모욕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교육에만 매진한 교사의 삶을 모욕하고 후회스럽게 만드는 것들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각종관행이나 근거없는 규칙들이다. 교육감에게는 바로 이런 것들을 찾아서 모두 일소해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원 연수와 관련된 관행과 규칙들이다. 물론 전문성 계발은 교사의 의무 중 하나다. 하지만 전문성 계발이 꼭 교사가 누군가로부터 배우는 연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교사도 배울수 있고 배워야 한다. 하지만 교사를 전문직으로 인정한다면 그 배움은 기본적으로 교사 공동체의 자율적인 학습과 연구에 기반한 것이며, 연수는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에 교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라야 한다. 하지만 현재 모든 교육청이 오직 연수만을 전문성 계발로 인정하여 학점을 부여하고 있다. 교사들이 학회를 만들어 수백시간의 세미나를 해도, 수십회의 학술대회를 개최해도, 수십권의 전문 서적을 출판해도, 심지어 각종 연수에 수십시간을 강사로 출강을 해도 열 다섯시간 동안 스마트폰 쳐다보며 원격연수 들은 만큼의 학점도 인정받을수 없다. 연간 90시간 정도 연수 강의를 하는 베테랑 교사가 정작 연수를 많이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석교사 심사에 탈락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할 정도다. 이는 교육청이 교사를 스스로 연구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전문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순간 높은 전문성과 열의를 가진 교사들은 “선생이 무슨 채을 내고 강의를 하나? 그냥 가르치는 대로 듣고나 있어.”라는 관청의 고압적인 목소리를 느낀다.

높은 전문성과 열의를 가진 교사들이 모욕을 느끼는 순간은 연수뿐 아니라 각종 연수원에 강사로 출강했을 경우에도 나타난다. 각종 공공 연수원에서는 이른바 강사비 지급규정이라는 내규를 운영하고 있는데, 1급강사는 조교수 이상의 대학교원, 3급 이상 공무원, 박사학위를 소지한 4‧5급 공무원 등으로 되어 있으며, 2급 강사는 대학교의 전임강사, 4‧5급 공무원, 대기업 공사체 부장, 3년 이상 실무경력의 전문자격증 소지자로 되어있다. 교사는 최하등급인 3급강사로 분류된다. 그런데 3급 강사는 그저 6급 이하 공무원이나 기타 사례 발표자에 해당되는 등급이다. 교사에게 책무성을 요구할때만 사용되는 "교사는 전문직"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적어도 연수원에서 다른 교사들을 상대로 강의할 정도의 교사라면 경력이 20년이 넘거나 육박한다. 현행 법령으로도 그 정도 경력의 교사라면 4,5급 공무원 수준(2급강사)으로는 대우하도록 되어 있다. 게다가 그 교사가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면 1급 강사로 대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교사는 경력이 1년이건 20년이건 무조건 6급 이하 공무원, 아니 기타 사례발표자 취급이다. 이는 20년의 전문경력을 사회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 선언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다른 공공연수원뿐 아니라 교육연수원조차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안전행정부가 작성한 이 규정을 그냥 베껴서 사용하고 있다. 교사가 그 동안 계발한 전문성, 이룩한 업적과 무관하게 강사비는 교장이냐 교사냐만을 구별하고 있다. 교육에 수십년을 매진하고 전문성을 계발해도 사회가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진보교육감들에게 요청한다. 많은 것 바꿀 필요 없다. 딱 두가지만 바꾸면 된다. 연수 학점에 연수수강뿐 아니라 각종 자율적 연구활동, 저술활동 등도 포함시키라. 교원이 각종 연수에 출강할 때 강사비를 교육연수원의 경우는 교장이냐 교사냐가 아니라 교원으로서의 교육경력과 업적을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하고, 이를 다른 공공 연수원에도 요청하라. 이 둘은 교육청 규칙 혹은 연수원 내규이기 때문에 교육감 한마디면 언제든 고칠 수 있는 것이며, 교육활동에 전념해온 교사를 교육관료에 비해 결코 허술히 대하지 않음을 선언하는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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